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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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교 / 『망명과 자긍심』(일라이 클레어 지음 | 전혜은, 제이 옮김 | 2020)


새벽부터 갑자기 바람이 세지더니 올 겨울 들어서 제일 추운 날씨같다. ‘걱정이네..내일 국회 앞 차별금지법제정 농성 천막 지킴이 해야되는데...’ 누군가가 롱패딩은 인권이라 했나. 챙겨입어야겠다. 겨울답게 추운 날씨가 시작되는건 한 해가 곧 끝나간다는 신호이고 새로운 한 해가 또 시작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읽으면 좋을 책,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 부제로는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이다.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
퀴어, 장애, 페미니즘, 환경, 계급으로 연결되는 교차성.
책을 두르고 있는 노란띠에 적힌 이 말이 너무 멋지기도 하고, 어느 해보다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투쟁과 평등을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크기에 더 와닿기도 해서 겁도 없이 집어들었다.
 
『망명과 자긍심』(일라이 클레어 지음 | 전혜은, 제이 옮김 | 2020)
『망명과 자긍심』(일라이 클레어 지음 | 전혜은, 제이 옮김 | 2020)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습니까?”
19대,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에 "동성애에 반대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도 충분하다,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으므로 나중에 고려해보겠다"고 한 말에 성소수자 활동가가 던진 질문이었고 청중들은 "나중에"를 외치며 입을 막았다.

이런 질문은 훨씬 오래전인 1851년에도 똑같이 있었다.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외쳤던 흑인 여성 소저너 트루스다.
차별은 두 집단을 비교하는 이분법으로 보이지만, 그 이분법을 여러 자리에서 보게되면 켜켜이 쌓여있는 정체성들을 발견하게되고 그것들이 모여 비로소 한 사람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여성은 여성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계급, 나이, 장애여부, 젠더 정체성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차별과 억압을 경험한다.

『망명과 자긍심』은 아홉 편의 서로 연결된 에세이들로 퀴어와 장애만이 아니라 계급, 인종, 도시와 지방의 구분, 젠더 정체성, 성적 학대, 환경 파괴, 그리고 집의 의미까지 탐구함으로써 범주화에 저항한다.

일라이 클레어가 자기고백하듯 말하는 사연을 들을 때, 나는 나의 지난 역사들이 자주 떠올랐다. 중첩되는 정체성은 물론이고, 젠더 질서를 교란하면서 받게 되는 혐오와 편견 그리고 불편한 질문과 시선들..

"우리는 매일매일 그 단어들의 위력을 마주한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내 떨리는 손을 멍하니 바라볼 때, 거리에서 사람들이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아내려고 빤히 쳐다볼 때"

나는 대구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13년간 해오면서 수많은 혐오와 불편한 시선들을 경험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권력이구나... 성소수자의 축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싫기 때문이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광장에 있는 것도 싫고, 즐겁게 축제를 즐기는 것도 마뜩찮으며, 보는 것도 언짢다. 사람들은 쉽게 누군가를 싫어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감정까지 사회가 간섭하는 건 과도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싫은 건 싫다고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누구나 어디서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있는 자리와 나의 위치에 따라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한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들이 방송에서 “저는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제13회 대구퀴어문화축제, 무지개 행진(2021.1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13회 대구퀴어문화축제, 무지개 행진(2021.1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제 망명으로 되돌아보자. 이는 중요한 단어이자, 어려운 단어이다. 이 단어는 상실의 의미뿐만 아니라, 뒤에 남겨두고 온 장소에 대한 애정 어린 소속감과 연결감의 의미도 품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양가적인 것이라 해도 말이다. 그곳을 잘 벗어났다는 태도라기 보다는 애도하는 태도인 것이다. 망명은 또한 쫓겨나고 강제로 떠난다는 감각을 담고 있다. 그렇다. 내게 집의 상실은 내가 퀴어로 존재하기 위해선 익명성, 고립, 안전, 그리고 더 혼란스럽게 뒤섞인 것에 관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퀴어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러한 상실, 이러한 망명의 일부분이다. 나머지 일부는 학대다.”

일라이 클레어에게 성행위는 폭력이었다. 어린 시절과 성장기 내내,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에게 성적 학대는 물론이고 폭력으로도 심하게 학대를 당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던 아버지는 더 이상 그 곳에 살지 않지만 아직도 몇몇의 어른들은 살고 있다. 일라이는 그 곳을 떠나 오래동안 되돌아 갈 수 없었다. 공동체에 대한 욕망, 물리적 안전에 대한 욕망, 감정적으로 행복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라이를 떠나게 만들었다. 퀴어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러한 상실이고 이러한 망명의 일부분이라고 했다.

“나는 일종의 망명 중이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선 국토를 가로지르다 중간에 만나는 작은 도시의 익명성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내 아버지를 모르는 곳, 나에게 가해진 학대에 아주 약간이든 중심적으로든 참여한 인간이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도시 말이다.”

일라이 클레어는 퀴어의 정체성은 대체로 도시적이라고 말한다. 신나는 곳, 이벤트, 대화, 강력한 공동체, 저널, 잡지, 서점, 퀴어조직, 퀴어운동 모두가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도시에서도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등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퀴어 정체성과 문화를 정의하는 사람과 기관들은 도시적이라는 것이다.

"도시의 익명성...버스에서 내옆에 앉은 누군가가 '퀴어'라고 속삭이고 내 쪽으로 침을 뱉는다면, 나는 필요한 방법은 무엇이든 동원해서 나를 지킬 거다. 내가 다시는 이 남자들과 마주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편협함과 폭력에 직면했을 때 익명성은 어느 정도의 보호를 제공한다."

나 역시도 '도시의 익명성'이 나를 성소수자 활동가로 이끌었다. 너무 단순히도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 지역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과 고향에서는 흔히들 ‘그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고 서로가 친밀하게 개입되고 연결되어 있지만 도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일라이의 말처럼, 오늘 만난 사람들이 내일 또 만날 일은 거의 없고, 나를 부정하거나 편견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차별에는 행동으로 저항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지켜나가고 있으니 이런 용기들은 일라이가 말하는 ‘도시의 익명성’ 덕분이겠다.

특히나 이 책은 저자인 일라이 클레어의 위치성이 다양하다. 그는 노동계급 마을 출신이고 선천적인 뇌병변을 가졌다. 또한 가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젠더퀴어의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로 살아왔다. 저자를 둘러싼 수많은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자신의 몸에 대해 성찰한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 지역, 장애유무, 학력,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위치와 손을 잡고 연대하고 투쟁해 나가는 것이다.

"운동은 어떻게 서로 적대하게 되는가?
 세상의 모든 복잡다단함을 반영하기 위하여"

수치심과 고립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떻게 공동체와 자긍심을 창출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발견 할 수 있게 되는가?
일라이 클레어는 서로 맞물린 권력 구조를 폭로하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선 단일 쟁점 정치에 매몰되지 말고 과범위한 교차성 정치로, 다중 쟁점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클레어는 각기 다른 주제로 투쟁하는 운동끼리의 연대와 제휴가 어떻게 가능하고 왜 반드시 필요한지, 아군과 적 혹은 옳고 그름을 절대적으로 나누는 대신 복잡한 결을 살피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각도로 설득한다. 클레어에게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의 모든 복잡다단함을 반영하는 정치를 구축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나는 떨리는 내 몸으로 돌을 품어 올리고 싶다. 뇌병변으로 인해 떨리고, 욕망으로 떨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공포로 떨리고, 이게 내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떨리는 이 손으로. 그리고 내 체온으로 부드럽게 돌을 데워주고 싶다. 내가 전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함부로 다루고 싶지 않다. 나는 소녀도 소년도 아닌 트랜스젠더 부치로서 세상에 들어가고 싶다.
 
 부치 여성과, 펨 다이크와, 여성스러운 남성과, 근육질 호모와, 급진적 요정들과, 드랙퀸이나 드랙킹과, 여자나 남자가 되는 것 이상은 원하지 않는 트랜스섹슈얼과, 인터섹스와, 트랜스젠더와, 팬젠더와, 바이젠더와, 폴리젠더와, 젠더가 없는 사람들과, 안드로진과,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자. 웃고 울고 이야기하자. 도둑맞은 몸과 더 이상은 여기 없는 몸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나누자. 잘못된 이미지와 우리를 고갈시키는 거짓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에 관한 분노케하는 이야기를 나누자. 우리 몸을 되찾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한 무모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나누자."

 
 
 






[책 속의 길] 185
배진교 /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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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n.or.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code=SRN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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