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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없이 살아 보기

기사승인 2022.01.25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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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동 칼럼]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여러 카톡방이나 밴드 같은 가상공간에서의 모임에 가입되어 있다.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하는 모임이 아닌 곳에서는 대부분 임박한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의견을 밝히거나 이에 관한 자료를 올리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고 있다.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고 반대 입장의 회원들이 탈퇴하는 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적인 모임들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전제를 하고 만나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만나서 괜히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지는 말자는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중요한 정치 일정을 눈앞에 두고서도 이를 대화나 토론의 금기로 삼는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는 정치적인 입장의 분열이 심하여 감정적인 대립으로까지 번져 합리적인 토론이 어려운 지경이 된 탓으로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옹호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생각을 비난하는 데에 몰두하고 그 비난이 보편성을 얻지 못하는 일방적인 것이어서 늘 대화는 겉돌기 마련이다.

 이는 수준이 낮은 정치인들이나 언론의 탓이기도 하겠지만, 믿음직하지 않은 선정적인 뉴스들을 확대재생산하는 유투버들이나 이런 당파성을 이용하여 이용자들의 중독성을 높이는 SNS의 등장으로 더 심화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 유투버들에게는 이런 ‘거짓’들이 수지가 맞는 사업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SNS들이 참여를 높이기 위하여 개개 이용자들의 정치적 입장에 맞는 소식들을 더 빈번하게 노출시키는 알고리즘을 채택함으로써 분열을 더욱 조장하고 온건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점점 더 극단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여러 조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 사진 출처. KBS <질문하는 기자들 Q> '유튜브 알고리즘 미디어환경에 미치는 영향 / VR 저널리즘의 새로운 미래'(2022.1.9) 방송 캡처

 정치는 과잉인데 토론은 기피한다.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다보니 점점 더 과격해지고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서는 더 모르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냥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지성이나 인격에서 덜떨어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망치는 사회의 적(敵)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또한 사안에 따라 깊이 생각하고 입장을 정하는 온건한 중도는 그 비율이 더 줄어들었다.  

 현대의 경쟁사회에서는 친구보다는 이겨야 할 적을 만드는 것을 권하기도 하고 적을 설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네 적이 누군가를 말해주면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증오하는 것은 그나 그들을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움은 상상력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시인 김수영은 ‘적(敵)’이란 시에서, ‘적을 운산(運算)하고 있으면/ 아무데에도 적은 없고’라고 말하였다. 수학에서 객관적인 규칙에 따라 수를 세듯이 생각해 본다면 적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金海東 - 그놈은 항상 약삭빠른 놈이지만
언제나
部下를 사랑했다.

鄭炳一 - 그놈은 內心과 정반대되는 행동만을 해왔고,
그것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
   
더운 날
敵을 運算하고 있으면
아무데에도 적은 없고,

  (.....)

나의 적은 아직도 늘비하지만
어제의 敵은 없고,
더운 날처럼 어제의 敵은 없고..."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의사를 표출하는 건전하고 성숙한 시민들을 전제로 한다. 나치의 등장과 집권으로 독일 문명이 몰락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 본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은 “독일의 불행 가운데 상당수가 교양을 갖춘 인간이 비정치적일 수 있다는 그릇된 관념에서 우러나왔다.”고 하였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관심을 거두는 것은 곧 저열한 인간들이 득세하는 것을 돕는 꼴이 된다는 말이겠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정신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관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현대 사회의 추세는 점점 더 민주주의에 적합한 인간형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는 어떤 한 개인이 나라의 일에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나는 국민의 힘으로 현행 헌법을 쟁취한 1987년 이후로 우리 민주주의가 되돌릴 수 없게 발전하였다고 믿는다. 그 믿음으로 나의 정치적 입장이나 선호가 반대되는 사람들에게 대한 미움으로까지 번지지 않을 정도에서 멈추기로 했다. 이는 과도한 정치적 열정의 분위기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현대사의 격동에서 정치적 논쟁에 몰두하는 학교 친구들에게 백 년 전에 했다는 말은 마치 오늘의 나에게 일러주는 것 같다.
"그저 너 자신을 개선시켜라. 그것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이재동 칼럼 22]
이재동 / 변호사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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