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에 대한 단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동희 칼럼]


1997년, 대통령선거 첫투표를 했다. 처음 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선택한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IMF 체제가 시작되었고,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 정리해고라는 서슬이 몰아쳤다. 사회초년생이었고 아직 뚜렷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시기였는데,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시절 못지않게 더 많이 더 자주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현장에 나갈 때마다 노동자들의 절규와 처절한 고통의 목소리를 들었고, 거리에서 공권력의 탄압과 폭력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내 손으로 직접 뽑은 정권에서 겪은 세상이었지만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만큼 자책과 후회를 할 겨를은 없었다. 대통령의 통치에 기대를 걸기보다 현장에서 투쟁하고 싸우는 것에 더 열성적이던 시절이었고, 당시에는 그 대통령 말고는 다른 선택지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나의 첫 대통령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은 지금까지 유일하게 내가 선택해서 당선된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2002년, 나에게 두 번째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 해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목숨을 잃은 미선이,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시작된 촛불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인권변호사로 훌륭한 삶을 살아온 강단있는 사람이었고,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당선된 새로운 대통령에게 호감이 가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촛불을 들게 되었다.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을 파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노동운동 탄압과 비정규직 양산으로 버거워진 노동자의 곁에서 싸우고, 한미FTA에 반대하며 농민들과 함께 추운 거리에 서 있기도 했다. 그의 삶의 이력이 보여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조금은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무언가 제대로 변하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사진 출처.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사진 출처.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2007년, 새로운 대통령이 또 선출되었다. BBK 조작 연루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치가라기보다 기업가로서 나라를 잘 써먹을 것 같았던 사람이 당선되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그에게 표를 던졌고 기어이 대통령이 되고야 말았다. 취임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맞서 거의 날마다 촛불을 들어야 했고, 전 국토를 말아먹는 4대강 사업을 막기 위해 또 내내 시위를 해야 했다. 5년 임기 내도록 대통령 때문에 내 일상이, 내 삶이 너무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나는 울었다. 지난 정권 내내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으니, 그녀가 대통령이 될 리가 없다고 믿었나 보다. 그 시절을 겪고도 또 보수정당의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하니 그를 뽑아준 국민들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미운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결국 무능하고 자질없는 대통령 때문에 국정은 어이없는 자들에 의해 농락되었고, 무엇보다 눈앞에서 아이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봐야하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2017년,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치룬 선거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치가 성장하는 변곡점을 정치인도 시민도 함께 경험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대통령의 통치에 거는 기대감과 대한민국의 정치가 이전과는 달라지리라는 희망이었는데, 희망은 현실로 오지 않고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선출된 대통령은 내가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았던 막강한 권력과 권한을 행사했고, 1997년 처음으로 대통령선거의 유권자가 된 후 25년을 두 정당이 서로 정권을 주고 받는 모습만 보았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통령선거도 이전과 다름없는 양상이다. 거대양당의 유력후보들의 세력모으기에 집중되어 군소정당의 다양한 색깔과 낮은 목소리들이 지워지고, 정치교체냐 정권재창출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정치구도가 반복되고 있다.

내일이 지나고 나면 그 중 누군가는 대통령이 되어 정치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정치가 닿지 않거나 외면한 자리에서 서서 또 싸우고 외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목소리를, 그 외침을 투표에 담아야 한다. 우리의 투표는 대통령이 될 사람을 뽑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닿지 않거나 외면한 목소리를 더 크게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어떤 정치가도, 어떤 정권도 내가 원하는 세상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어떤 정치가도 모두가 원하는 완벽한 세상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는 그의 위치에서 권한을 행사할 것이고 시민은 그 권한을 통제하고 견인하면서 시민의 책무를 다 할 것이다. 결국 변화하는 세상은 권력자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권력에 항거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질기게 이어지고 퍼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져 왔다.

불평등과 차별을 허물어가기 위한 여정에 우리는 오래 서 있었고, 또 오래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거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한 명의 대통령이라기보다 불평등과 차별을 허물기 위한 비전과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신동희 칼럼 3]
신동희 / 꿈꾸는마을도서관 도토리 관장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