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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2030 청년' 김경민 수성구의원 후보..."N포세대 아닌 희망의 세대되길"

기사승인 2022.05.13  19: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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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지방선거-대구 2030 청년후보⑤] 국민의힘 김경민(26) 수성구의원 후보
특성화고 졸업 후 용접공, 대학 진학해 총학생회장 '등록금 반환' 300km 도보
청년플랫폼 '스케치' 만들어..."아동·청소년 지원조례, 청년 공간대여·멘토링"


딱 20대 중반. 김경민(26) 스케치 대표는 6.1지방선거 대구 국민의힘 최연소 기초의원 후보다. 수성구마 선거구(수성1가동, 수성2·3가동, 수성4가동, 중동, 상동, 두산동)에 도전장을 냈다. 

넥타이에 검은 정장을 갖춰 입었지만 앳된 얼굴 때문인지 청년의 패기가 느껴진다. 어떤 질문에든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는 자신감도 보인다. 보라색 '스케치' 명함을 내밀며 먼저 대화를 주도한다. 

'왜 국민의힘인가?'란 질문에 "대구에서 활동하다보니 그쪽 사람들과 많이 일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며 "친구들도 '왜 국민의힘에 들어갔어?'라고 많이 물었는데 이젠 거의 없다"고 답하며 웃었다. 
 
 
 
▲ 국민의힘 김경민(26.수성구마) 대구 기초의원 후보(2022.5.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진보 정치'에 대한 실망감도 국민의힘 선택 이유다. 그는 "촛불정부가 탄생했는데 '조국 사태' 등 불합리함을 느꼈다. 본인들도 카르텔이 된 건 아니나. 그래서 합리적인 보수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당신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울산에서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며 취업한 일,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용접공 노동자로 일한 일, 본인이 일하던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에 사람이 다쳐 '폴리스라인'이 쳐진 산업재해 현장을 보며 출근한 일. 그의 말은 과거로 흘러갔다. 

불과 7~8년 전. 평범한 20대가 겪지 못한 경험이 입에서 줄줄 나왔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18살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남동생을 돌보기도 했다. 생활력과 책임감은 환경으로 인해 길러졌다. '긍정적·추진력' 본인 성향이기도 하다. 

빨리 자립해 생계에 도움이 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만19세에 노동자가 됐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월급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몇달의 공장생활, 돈이 전부가 되어주진 못했다. 
 
 
 
▲ 김 후보가 대표로 있는 청년플랫폼 '스케치' 보라색 명함(2022.5.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새벽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생활이 길어지며 고민이 생겼다. 산재로 인해 사람이 다치는 일을 목격하고 취업한 뒤 겪은 부당함에 사회 문제에 눈을 떴다. '고졸 노동자'는 기자를 꿈꿨다. 공장을 그만뒀다. 인생의 길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구의 한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그 사이 지역 방송국에서 카메라기자 보조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어깨너머로 언론 세계를 봤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기자들의 세계가 원래 저런가?" 의구심을 가졌다. 4년제 대학에서 언론을 더 공부하고 싶었다. 아직 고등학교 성적을 쓸 수 있었다.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입학했다.
 
 
 
▲ '키다리 청년'이라고 적힌 선거 피켓을 들고 유세를 펼치는 김 후보 / 사진 제공.김경민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공부를 병행했다. 이제는 대학의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든 적극적인 성격 탓에 총학생회 문을 두드렸다. 한김에 총학생회장까지 도전했고 당선됐다. 대학 총학은 지역사회, 대학, 학우, 지역 상권 등 여러 주체들의 문제가 복잡하게 뒤얽힌 '정치'의 영역이었다.

'코로나19'는 큰 난관이었다. 대학을 못가는 사이 강의는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강의 질은 천차만별이었다. 성의 없는 강의, 과제에 납득 못할 행정 처리가 이어졌다. 대학과 교육부는 수백만원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들을 방치했다. 다른 대학 총학과 '등록금 반환'을 촉구했다. 서울까지 300km 도보투쟁을 했다. 그 결과 대구대는 대구권 대학 중 유일하게 등록금의 '10%'를 반환했다. 

올해 2월 청년플랫폼 '스케치'를 만들어 청년 진로상담을 하고 있다. 대구지역 청년들이 바라는 주거, 일자리, 문화 등의 정책을 만드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리고 바람은 지방선거 후보 출마로 이어졌다. 그의 적극성은 이번에도 발휘됐다. 본인이 거주하는 동네가 '수성구을' 지역이다보니 이곳 기초의원부터 도전장을 냈다.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 전세집을 구해 기초의원 후보로 동네를 누비고 있다. 명함을 받은 유권자들로부터 "이렇게 어리냐"는 말을 듣지만 기죽는 일은 없다. 기초의원에 당선되면 아동과 청년에 대한 지원 조례를 만들고 청년들에 대한 공간 대여나 멘토링을 하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 "안녕하세요. 뽑아주세요"...유권자들에게 인사하는 김 후보의 모습 / 사진 제공.김경민

김 후보와의 일문일답이다. 
 
-'스케치'는 어떤 단체인가?
=청년 진로단체다. 청년들의 진로와 관련해서 봉사활동, 교육사업 한다. 모델링 잡은 게 '대학내일'과 '피키캐스트' 커뮤니티 사업이다. 대구경북 대학생 친구들이 모여있다. 현재 200~300여명 유료회원이 있다. 청도군과 경북청년봉사단과 미나리 특급배송 서비스 등 했다. 그리고 청년공동체 사업으로 지역 청년들의 고민을 가지고 영화 제작, 교육 등 여러 활동을 했다.  

-왜 '국민의힘'에 입당했나?
=특정 정치색을 갖고 보지 않았다. 지난 몇년 동안의 정부 정책들이 급진보적인 게 많았다. 어떤 변화와 혁신을 앞두고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비해 거부감 들 정도로 바뀌어서 혁신 아니라 강압적으로 느껴졌다. 사회분열 조장 원인이 됐다. '촛불정부' 탄생했는데 막상 코로나 시국에 대학 등록금 여러 문제에 대해서 제가 생각한 진보의 색깔이 아니었다. 합리적인 진보가 아니었다. '조국 사태' 등 불합리한 상황을 보며 본인들 역시 '카르텔'을 형성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진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합리적인 보수가 되고 싶었다. 우리 당에서 과격한 표현을 쓰는 몇몇 정치인들어 있어 그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지만 이 안에서 해보자고 생각했다.

-김경민은 어떤 사람인가?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 직장 때문에 울산으로 갔다. 특성화고 나와서 공장 갔다가 전문대 갔다가 군대 갔다가 대학에 17학번으로 들어가. 대학에 늦게 간 케이스다.   

-특성화고에 간 이유는?
=돈을 벌려고 갔다.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되려고 취업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내내 책상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19세에 공장에 던져졌다. 어리기 때문에 오는 환경적 거부감 있었다. 단순 노동이 많았다. 미래가 불투명했다. 3개월 일했다. 출퇴근만 2시간 걸렸다. 현대중공업 하청 용접공으로 일했는데, 새벽 6시 30분 출근해서 일했다. 용접 방진 1급 마스크 쓰고 밥 먹을 때 벗으면 얼굴에 철가루가  다 묻었다. 노동에 대해서 다 인정 못 받는 느낌이 있었다. 

-공장은 왜 퇴사했나?
=젊음 다 바쳐서 일해도 몸이 고장나면 버려지겠구나. 나는 톱니바퀴 중 하나겠구나 느꼈다. 또 산업재해가 일어난 공장이었다. 프레스기, 철을 누르는 기계에 사람이 눌려서 죽어서 '폴리스라인'이 있었다. 피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무서웠다. 얼마 안가 공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정시로 계명문화대에 갔다. 언론에 관심 많았다. 대학에 있다가 군대에 갔다. 전역하니 22살 1월이었다. 

-생계는 어떻게 책임졌나?
=안해본 일이 없다. 카드, 보험, 자동차 생산, 카페, 택배 상하차부터 해서 많은 일을 했다.  가정도 챙기고 동생도 챙겨야 했다. 그 때 방송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제가 벌어서 대학에 다녔다. 

-다시 대학에 간 이유는?
=방송국에서 비정규직 보조노동자로 일하면서 4년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비정규직이 기자가 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며 본 언론은 내가 생각한 언론과 달랐다. 실망한 일도 있었다. 그때 방송에서 수시광고를 보고 대구대에 도전했고 저널리즘을 공부하게 됐다. 

-'등록금 반환투쟁', 300km 왜 걸었나?
=등록금 문제로 대구경북 총학생회를 만났다. 평화적으로 시위하고 싶었다. 그래서 걸었다. 집념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다. 대학생은 대학에서 교육의 소비자 입장인데, 돈을 냈는데 학교에서 서비스 제대로 하지 않았다. 강의 상태 말이 아니었다. 대화를 단절했다. 여지도 없었다. 단발성 조치만 나왔다. 교육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 교수님들이 줌을 잘 못쓰니까 인강보다 강의 질 떨어졌다. 학교도 교육부도 대책은 없었고, 비싼 등록금만 내서 분노했다. 

-청년, 왜 정치해야 하나?
=소위 N포세대라는 말을 한다. 또래 친구들 중 꿈 없는 친구도 많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내가 그랬다. 소모되는 청년 이슈가 아니라 대안을 갖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진 세대가 되고 싶다. 네 옆에 정치가 있다, 그리고 너의 생각이 정책이 된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정치권에서 청년을 찾는게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청년도 하나의 카르텔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경계해야 한다. 청년의 패기, 기성세대 경험을 합쳐야 한다. 우리 당의 방향성도 긍정적으로 만들고 싶다. 

-가족과 친구들은 정치를 한다고 하면 걱정하지 않나?
부모님 당연히 걱정한다. 친구들은 '왜 네가 국민의힘, 빨간색에 있냐'며 놀란다. '넌 파란색인데 왜?' 맞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였기도 하고, 그쪽 색깔인데...친구들도 고졸·대졸 친구들 많다. 친구들은 '너 한명이 말 한다고 바꿀 수 있는게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 기초의원에 출마했나?
=대구는 청년센터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수성동은 제가 살아본 동네다. 이 두개를 합치고 싶었다. 수성동에 있는 수성못에 청년을 지원하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그리고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데 '수성을지역'은 원주민 많이 살고 조금 낙후한 곳이다. 동네에서 생활민원을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그걸 해결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수성구의원이 되고 싶다. 

-만약 당선된다면 하고 싶은 정책은?
=첫번째 '아동·청소년' 정책에 관심 많다. 학군이 좋은 동네라서 오히려 소외되는 아동과 청소년이 많다. 저도 지역아동센터를 다녔다. 이곳에는 교육에서 방치되거나 끼니조차 못 때우는 아이들이 많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아동·청소년 지원 조례'를 만들고 싶다. 두 번째 '문화가 있는 수성못'을 만들고 싶다. 관광성만 있는게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를 곁들이고 싶다. 뭔가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자원과 오랜 전통을 되살린 문화가 있는 도시재생 사업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구시에 있는 기존 청년 임대료 지원이나 조례가 아쉽다. 이를 변화시키고 싶다. 단순히 수당이나 활동비를 받으면 좋은데, 현물성 지원에 그치고 있다. 지원 기준도 까다롭다. 문을 넓혀야 한다.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 대한 공간 대여, 프로젝트 멘토링 등을 해주고 싶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청년' 표심에 호소했습니다. 대선에 곧이어 치러지는 6.1지방선거는 어떨까요? 평화뉴스는 대구에 출마한 청년 후보들의 의지와 고민을 듣기 위해 <6.1지방선거 - 대구 2030 청년후보>를 기획하고 그들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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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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