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실' 알리려다 '빨갱이' 몰린 대구 대학생들...42년 만에 "무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2.05.18 17: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북대·영남대 학생 5명, '두레서점'서 진실 알리려다 강제구금·고문
재심 재판부, '반공법' 위반 등 무죄 선고 "영장 없는 체포·증거 없다"
피해자들 "빨갱이 누명 벗어...광주의 역사적 아픔 반복되지 않길"


대구에서 1980년 5.18 민주항쟁 진실을 알리려다가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한 지역의 대학생들이, 5.18 42주년인 오늘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아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부장판사 이상오)는 18일, 지난 1980년 '반공법·계엄령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은 당시 경북대학교 학생 고(故) 정상용(당시 두레서점 경영자), 서원배(66), 신중섭(63), 이동열(65), 영남대 학생 이상국(69.당시 가톨릭농민회 홍보부장)씨 등 5명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고인 정상용씨는 부인이 대신 재심을 신청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1980년 대구에서 '5.18 민주항쟁' 진실을 알리려다가 경찰에 끌려가 고문 피해를 당한 대구지역 피해자들이 42년 만에 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 받았다.(2022.5.18.대구지방법원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80년 대구에서 '5.18 민주항쟁' 진실을 알리려다가 경찰에 끌려가 고문 피해를 당한 대구지역 피해자들이 42년 만에 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 받았다.(2022.5.18.대구지방법원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재판부는 계엄령법 위반에 대해 "국내 정치·사회 상황을 봤을 때 '계엄포고를 군사상 필요할 때로 한정한다'고 규정했음에도, 계엄 상황으로 보기 어려운데 계엄을 포고했다"고 했다. 또 "명확성 원칙과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되게 체포·구금했다"며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 역시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때문에 "계엄포고가 당초부터 위헌과 위법해 무효"라고 했다. 반공법 위반에 대해서는 "검사가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진술했다"면서 "피고인 모두 무죄"라고 했다. 

이상오 재판장은 "오늘 광주 5.18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이야기 했듯 5.18은 아직 살아있는 역사"라며 "앞으로 자유 민주주의, 인권과 관련해 하나의 이념이 될 법한 사례"라고 했다. 이어 "역사의 과정에서 안타깝게 재판 받은 점은 유감"이라며 "형사보상 청구를 통해 위로를 받길 바란다"고 판결했다.

42년 만에 누명을 벗은 이들은 기뻐했다. 서원배씨는 "한 맺힌 세월, 40년 만에 빨갱이 누명을 벗었다"며 "광주의 슬픔은 광주 만의 것이 아니라 대구에서도 함께 하려던 사람이 있었다. 대구에서 5.18 유공자로 살며 힘들었는데 세상이 바뀌어 오늘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대구에서도 같은 아픔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광주의 역사적 아픔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20대 청춘들이 60대가 돼 오늘로서 고통 받은 세월을 잊게 됐다"며 "광주 영령 앞에 정치인들이 말한 것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심 무죄 선고를 받은 두레서점 피해자들은 곧 국가를 상대로 형사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농촌운동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양서보급...대구 '두레서점' 정관 / 자료 제공.서원배씨
농촌운동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양서보급...대구 '두레서점' 정관 / 자료 제공.서원배씨

고 정상용씨와 서원배, 신중섭, 이동렬, 이상국씨 등은 1978년 9월 대구지역 사회과학 교양도서 보급을 위해 '두레양서조합'을 만들어 대구에서 '두레서점'을 운영했다. 이들은 1980년 5월 18일 '전남농정대회'에 참가하려다가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당일 광주 일정을 취소했다. 이어 5월 20일 대구경북 가톨릭농민회 총무로부터 광주항쟁에 대한 상황을 전해 들었다. 5월 22일 5.18 진실을 알리려고 대책협의를 열었다. '민주시민에게 고함'이라는 5,000부 유인물을 제작해 동성로에 배포하고 시위를 결의했다. 하지만 5월 27일 5.18항쟁이 끝나며 대책회의를 해산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경찰이 이 사실을 알고 이들을 연행했다. 이른바 '두레서점 사건'이다. 

'대구북부경찰서 경북지구계엄분소 합동수사단'이 작성한 당시 경찰 송치 수사기록을 보면, 경찰은 이들을 '반체제 인사'로 규정했다. 5.18과 관련해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유인물을 만들어 유포하는 등 정부 번복을 모의하는 불법집회를 감행하고, 학원소요 사태를 배후에서 선동하는 자들이라고 기록했다. 

14명이 영장도 없이 체포됐고 강제 연행돼 원대동 경북도경 대공분실 안가에서 한 달 가량 불법 구금됐다. 이 과정에서 구타와 고문이 자행됐다. 1980년 10월이 돼서야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경북지구계엄보통군법회의는 1980년 12월 재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고 정상용씨는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나머지도 징역 10월 또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2002년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 받았고 피해자 3명은 이미 숨졌다. 2명은 5.18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