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좀 다를 뿐 똑같은 사랑입니다”

평화뉴스
  • 입력 2005.11.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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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성(性) 소수자 인권모임] 첫 만남...
“차별이 아닌 '차이'로 봐 주세요”

대구경북지역에 사는 ‘성(性) 소수자’들이 ‘인권’을 주제로 만났다.
11월 28일 저녁, 대구시 중구 공평동에 있는 인권단체 [한국인권행동] 사무실.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던 '성(性) 소수자' 8명과 활동가 등 10여명이 [대구경북 성(性) 소수자 인권모임]을 꾸렸다. 어색함도 잠시. 그들은 스스로 동성애자(同姓愛者)라 밝히며 이 모임에 오게 된 이유를 말했다.

지난 6월 인터넷 다음(daum) 카페를 통해 온라인 모임을 가져오다 처음으로 만났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비롯해 성(性)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첫 만남을 시작으로 토론이나 캠페인을 통해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벽을 허물어 가기로 뜻을 모았다. 대구에도 ‘성 소수자’ 모임이 여럿 있지만, 대부분 친교를 나눌 뿐 성 소수자의 ‘인권’을 주제로 한 모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남녀. 쉽지 않을텐데, 그들은 자신의 ‘사랑’에 당당하다.
그들은 “사랑의 차이일 뿐, 차별받을 이유는 없다”며 성 소수자의 인권을 말한다.

[성 소수자 인권모임] 모노(21) 대표
[성 소수자 인권모임] 모노(21) 대표
처음 생긴 [대구경북 성(性) 소수자 인권모임] 대표 모노(21.여)씨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모노(mono)는 인터넷 카페에 쓰는 닉네임으로, 실명을 쓰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벽’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과 성 정체성이 알려졌을 때, 아직은 그 파장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노씨는 경북대 05학번으로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충북 제천이 고향인 모노씨는 어릴 때부터 여자 동성(同姓)에 호기심이 조금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한 여자 후배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냥 좋다는 뜻으로 생각했지만, 이듬 해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동성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성 정체성을 확인한 시기였다.
“동성애에 대한 성 정체성을 사춘기 때 확인했죠. 처음엔 어색하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차츰 스스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아버지가 좀 가부장적이어서 어머니가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가정이 남다르지는 않다.
“아직 부모님께는 (동성애를)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눈치 채고 계시는 것 같은데...”

모노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2005년 다시 경북대에 입학했다.
지금은 애인이 있다. “애인은 서울에 있는데, 사귄 지 2년쯤 됐고 저보다 2살 많아요”

떨어져 있어 보고싶지 않느냐는 말에, “애인이 저 보러 한달에 몇 번씩 대구에 찾아와요”
모노씨는 “그 애인이 저보다 조금 더 여성스러운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좋아요”하며 웃는다.

남다른(?) 사랑을 하는 탓에 힘들 것도 같은데...
“학교 친구들이 남자 친구나 애인 얘기할 때 저는 할 말이 없죠. 그래서 많이 친해지기가 좀...”

만약 지금 애인보다 더 멋진 ‘남자’를 만나게 되면 좋아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남자는 절대 사귈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동성애는 아니구요. 글쎄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그냥 (여자)애인이 좋아요”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동성애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이성애를 느낄 수 있고, 다만 동성애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더 클 뿐이라고 한다.

모노씨는 ‘교사’가 꿈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교사가 되고 제가 ‘동성애자’라는 게 알려졌을 때,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해요.
이런 걸 동료 교사나 학부모, 학생들한테 어떻게 설명할 지, 학교에서 안쫓겨나고 제대로 붙어있을 수나 있을지...”
모노씨는 그래서, 가능하면 ‘공립학교’에 가고 싶다고 솔직히 말한다. ‘사립학교’보다는 ‘쫓겨날’ 위험이 조금은 덜하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싸늘한 냉대 뿐.
“고3 수능시험 치고 정말 친한 친구에게 처음 말을 했는데...그 친구도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있겠죠”

성 소수자 인권모임, 왜 필요한지 물었다.
“동성애라 하면, 에이즈에 걸린다거나 더럽다거나 하는 잘못된 인식이 많아요. 그래서 차별도 많구요...
'차별'이 아니라 단지 ‘차이’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차별하는 건 나쁜 거잖아요”

이 모임을 통해 활동하면 자신이 공개될 수도 있는데, 괜찮은 지...
“언젠가는 알려지겠죠. 그건 두렵지 않지만, 아직 모르시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받을 충격이 걱정돼...”

모노씨는 지금 사귀는 애인과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아직은 동성애자로서 어떠한 차별도 받은 것이 없지만, ‘결혼’을 생각하면 적잖은 어려움이 걱정된다.
현행 법에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조항이 없지만, ‘결혼’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할 제도적 벽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성 소수자 인권모임] 발족식...한 20대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대구경북 성 소수자 인권모임] 발족식...한 20대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모노씨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스스로 ‘치우치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도 치우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옳다고, 우리를 꼭 이해해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죠. 단지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날 첫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20대 초반. 여자 5명에 남자가 3명이다.
이들은 앞으로, ‘성 소수자’에 대해 더 고민하며 토론하려고 한다. 그리고,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 실태를 알아보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그런 사례에 대해 상담활동도 펴기로 했다. 가능하면 대구 도심에서 ‘캠페인’도 하려고 한다. 과거 ’90년대 초.중반에도 대구에 ‘성 소수자 모임’이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 모임을 지키며 ‘성 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려고 한다.

첫 모임에 이어 뒷자리가 마련됐다. 모노씨를 비롯한 여러 참석자들과 ‘동성애’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묻기도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고민, 성행위 같은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놨다. 아직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coming out)하지 못한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사랑을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를 뿐이지, 동성애도 똑같은 사랑이잖아요. 그냥 사랑의 한 모습으로 봐주면 좋겠어요. 이성간의 사랑이든 동성간의 사랑이든...”
20대 앳된 얼굴들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들은 밝게 웃었고 사랑이 묻어 났다.

’80년대 이전, 중증장애인들도 집 밖에 잘 못나오고 손가락질 받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도 자식이 장애인이란 걸 쉬쉬해야 했다. 장애를 이해받기도 어려웠고 편견도 심했다.

‘인권’이란 말로 첫 걸음을 내딛는 이들.
10년이든 그 훗날이든 지금보다 더 당당한 날이 오지 않을까.
적어도, 그들의 사랑에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할 수는 있는 사회’가 되길 그들은 바라고 있다.

(대구경북성소수자인권행동(cafe.daum.net/DGLGBT) / 문의 053-428-2114 hrkorea@hrkorea.org)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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