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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기사승인 2005.12.01  02: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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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 칼럼 63] 김진국...
“생명.윤리, 인기나 여론으로 덮을 문제가 아니다”


 
 
끝없이 증폭되고 있는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연구윤리 시비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뚤어진 애국주의”라며 우려의 뜻을 밝히기도 하였지만, 한번 타오른 여론의 불길이 쉽게 잡힐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과학자에 대한 국내 인기나 여론에 따라 국제사회의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의학연구에 있어 연구 당사자가 지켜야 할 윤리문제는 여론이나 과학자의 대중적 인기와도 무관한 것임을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

줄기세포 연구 뿐 아니라 모든 의학연구나 실험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과, 또 그 대상이 된 인간이 모든 위험을 부담해야한다는 점 때문에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충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학연구는 ‘인류 행복의 증진’이라는 너무나 선명한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험자가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있고, 난치병 환자의 경우 스스로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기를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의학연구에 필요한 피험자들이 고아, 정신지체자, 수형자, 저소득층과 같이 주로 한 사회의 취약계층이거나 권리주장을 할 능력이 없는 사회의 약자들에게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의학연구에 있어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최초의 생명윤리라고 할 수 있는 뉴른베르그 강령이 만들어지게 된 것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의 의사들이 의학연구라는 명분으로 저질렀던 처참한 인권유린의 역사에 그 배경이 있다.

하지만 생명윤리나 의료윤리는 어디까지나 선언적인 의미이기도 하고, 윤리선언이라는 것이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의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제정된다는 점에서 구속력이 약한 반면,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연구자의 속성상 윤리조항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자제력을 발휘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물론 실정법이 있긴 하지만 의학연구의 피험자나 의료행위의 수단으로 이용된 인격체의 피해를 보호하는 법의 기능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예컨대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 뇌사자의 장기를 이용한 장기이식은 분명 형법상 살인에 해당하는 중죄임에도 단 한 건도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 또 의료윤리에서 절대 금하고 있는 것이 살아 있는 수형자의 장기적출인데 몇 해전 대구에서는 살아있는 수형자의 장기제공 사례가 있었고, 언론(<매일신문> 2003. 9.30 『법보다 생명이 우선이죠』)은 이를 검찰이 행한 미담의 한 사례로 보도한 적도 있다. 검찰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사한 경우를 대비해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수형자가 장기기증의사만 밝히면 형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윤리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인식수준을 드러낸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가난한 흑인과 라틴계 고아 대상으로 임상실험...내부 고발과 언론 탐사보도로 알려졌다”

의학연구는 그 특성상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대학병원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한편, 경쟁관계에 있는 연구자를 의식하여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실상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론이 의학연구에 대해 무한정 관대하고 우호적인 것만 아니다. 1998년 우리나라에서 영아원 원생들을 대상으로 수입신약에 대한 임상실험이 있었던 사실을 한 국회의원이 폭로하자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했다.

한 신문(1998. 5. 15 <동아일보> 사설, 『영아원생 임상실험』)은 이 사건에 대해 임상실험 과정에 금품이 오고갔다는 주장(연구비로 추정되지만)을 근거로 의학연구가 아니라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다”고 혹평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자 결국 의사협회도 어쩔 수 없이 해명성 성명을 내놓아야만 했다(<의협신보> 1998 6.11 『임상시험에 대한 의협의 입장』)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의학연구가 윤리문제에 있어 우리보다 투명하다고 할 수도 없다. 미국에서 의학연구 피험자 보호를 위한 벨몬트 보고서가 나오게 된 계기가 가난한 흑인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80%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터스키지 매독연구사건 때문이었고, 지난 해에는 흑인과 라틴계 고아들을 대상으로 AIDS 치료제의 임상실험을 강제 실시한 사례(<한겨레신문> 2004년 4월 6일, 『미, 어린이에 에이즈 임상실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이 의료기관의 자체심사기능에 의해 드러난 것이 아니라 내부고발이나 언론의 탐사보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팀의 윤리문제에 대해 탐사보도를 했던 우리나라 방송( )은 여론의 몰매를 받고 광고중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고 있다.

임상실험의 비윤리적 실태가 드러났을 때 세상의 공분을 사는 이유는 실험대상자가 비록 사회 취약계층이긴 하지만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인격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생명공학분야에서 난자.정자.수정란.배아.태아 같은 실험재료나 대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뒤섞여 있어 이들을 권리의 주체나 인격체 또는 생명체로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래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논쟁의 틈새에서 생명공학자들은 난자나 수정란, 배아, 태아를 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인간의 몸과는 철저하게 분리시킨 채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로 지금 “그까짓 난자”라는 끔찍한 말이 아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난자 기증자들이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난자가 여성들이 핸드백 속에 수북히 넣고 다니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쉽게 빼 쓰면서 남에게 선의로 얼마든지 줄 수도 있는 물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연 외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시선들이 우리가 금이야 옥이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국익’에 과연 얼마나 보탬이 될까?

“생명윤리에 더 엄격해야 할 의사들...황우석 연구팀 의사들은 왜 아무런 말이 없나”

황우석 박사 연구팀이 안고 있는 윤리 문제는 “그까짓 난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몸과 여성이라는 인격체를 어떤 방식으로 취급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과 여성의 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국내의 인기투표나 여론몰이로 덮여 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 보다 한발 빠른 결과를 내려는 의학연구자들의 속성과 문화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세계의 의사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학술지에서조차 연구결과의 절차와 방법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의학연구 앞에 ‘인간의 존엄’이란 말은 거추장스런 수식어가 되고 만다.

황우석 박사 연구윤리 논란은 황우석 박사의 논문이 게재되었던 외국의 학술지가 제일 먼저 제기한 문제였고, 여기에 황우석 박사가 거짓으로 답을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과학계 전체가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표적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 황우석 박사 연구팀에게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정부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정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고 여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강대국의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황우석박사 연구팀의 윤리 문제를 취재했던 방송사 프로그램에 대해 “짜증스럽다”는 표현을 했다. 네티즌들이 제기한 공직자의 “윤리문제”로 여러 차례 자신의 인사권에 흠집이 생긴 대통령으로서 또 다시 “윤리문제”를 거론하는 언론이 짜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윤리문제”를 거론한 언론을 “그 까짓 윤리가 대수냐”며 네티즌들이 나서 퇴출시키려는 분위기다. 극에서 극을 넘나드는 이 기막힌 군중심리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생명윤리는 어떤 면에서 수의사였던 황우석 박사보다는 의사들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규범이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 연구팀에 소속되었던 의사들은 지금 아무런 말이 없다. 소속 회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윤리규범을 어긴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의사협회도 아무런 말이 없다. 난자 채취가 정말 “그 까짓 것”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런 한국을 외국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Dynamic Korea? 과도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혼란?

그렇다면 이 혼란을 수습해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내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수많은 시선들이 우리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결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김진국(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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