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게 거부할 줄 아는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8.01.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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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사회 잘잘못 비판하는 기자, '언론사주'에게도 쓴소리 해야"


신문기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돼먹지 않은 사람으로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자들 대부분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직한 사람들이다.

막스 베버(Marx Weber.1864-1920)도 저널리스트에 대해 언급하면서 앞에선 환대받고 뒤에선 경멸받는 어려움 속에서도 훌륭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국외자들이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가 말한 20세기 초반인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을 것 같다.

기자생활 27년을 한 내가 볼 적에 기자들은 착하고 순수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꺼내 적선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기자이기에 기자정신도 지니고 있다.


"기자는 기사를 거르는 1차 게이트키퍼"

바르고 착하고 능력있는 그러한 기자들이 만드는 신문은 당연히 옳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하지 못하다. 언론의 정도(正道)와는 거리가 먼 신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다. 기사거리가 있으면 정보 제공자의 의도성이 있는지, 사실유무를 확인하고, 이 기사로 인한 수혜자는 누구인지, 피해를 입는 사람은 없는지 다각도로 살펴보고 비판할 땐 비판하면서 기사를 작성하여야 하는 게 정도다. 그러나 거두절미 침소봉대로 폄훼하는 기사가 판치더니, 이제는 맹목적인 무비판의 기사가 지면 곳곳을 메우고 있다.

왜 그런가. 똑똑하고 정직한 기자들이 만드는 신문의 기사가 왜 이렇게 돼버렸는가.
그 이유는 신문조직에서 찾을 수 있다. 신문기사는 신문기자가 작성한다. 기사거리가 있으면 기사가 되는지 안 되는지 기자가 ‘가치’를 판단한다. 기자가 기사를 거르는 1차적인 게이트키퍼(gatekeeper)이다. 그러나 신문조직에는 기사를 걸러주는 게이트키퍼가 많다. 담당데스크와 부국장, 국장, 그리고 최종 게이트키퍼는 사주다. 신문은 또 광고주의 영향을 크게 받으므로 광고주는 외부의 게이트키퍼에 속한다.


"언론정도 벗어난 사주의 영향력 행사...'알아서' 수행하는 기자"

이처럼 하나의 기사는 몇 단계의 게이트키핑을 거쳐 게재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는 1차 단계인 신문기자 선에서 거의 이루어지므로 이 같은 단계를 거치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최종단계의 게이트키퍼가 상업주의 경영방침에 따라 언론정도에 벗어나는 영향력 행사를 하는 데에 있고, 1차적인 게이트키퍼도 관행에 젖어 '알아서' 수행하는 데에 있다. 불경기일수록, 신문경영이 어려울수록 사주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진다. 부수 확장과 광고 수주는 사주가 행사하기 좋은 메뉴다. 그래서 기자들은 부수를 늘려야하고 직접 광고는 수주하지 않더라도 광고주에 대한 사주의 인식을 공유해야하는 구조 속에서 바쁘게 그날의 기사를 쓰다보면 신문이 바르게 가고 있는 줄 착각하게 된다.

미국의 신문에 바탕을 둔 매스커뮤니케이션 선전이론은, 사회지배층은 신문을 이용, 지배층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선전캠페인도 벌이고 지배이데올로기를 자연스레 반영하고 반대되는 의견이나 주장이 개입될 여지를 봉쇄, 신문이 사회지배층의 구미에 맞게 제작되게 한다는 여론조작에 관한 이론이다. 선전이론의 기사 여과장치에는 신문기업의 소유주와 수익지향성, 광고주, 정부나 기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신문의 보도는 사주와 재계 광고주, 정부 기관 등 국가권력, 정부나 기업에 예속된 전문가 집단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상업주의신문이 주류를 이루면서 선전이론을 그대로 입증하고 있는 미국처럼 우리나라의 신문도 상업주의를 택한 사주와 광고주의 영향력 차원에서 이 이론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되자마자 '대운하'로 달려간 신문, 너무 가볍다"

사주가 어느 후보 쪽이면 기자까지 그 후보 편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한 경향은 선거후에도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신문은 낙동강대운하로 달려갔다. 대운하를 기정사실로 하고 특집연재를 시작하였다.

공약은 후보 때의 일이다. 선거 공약은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내건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당선된 후보는 자신을 찍지 않은 유권자, 곧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는 유권자의 심중도 헤아려야 한다. 그런데 그런 헤아림도 있기 전에, 인수위의 활동이 착수되기도 전에, 인수위조차 검토하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하는데도, 대운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데도 이를 접어두고 1면을 비롯하여 주요 면을 대운하 관련 건설경기 지역경기 활성화 계기 등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대운하 건설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이 같은 제작 태도는 너무 가볍다. 기자가 가벼운지 사주가 가벼운지 아무튼 신문이 그러하다.


"옳은 신문 되면 사주에게도 큰 영예...사주에게 쓴소리 할 수 있어야"

신문기자는 매우 바쁜 직업이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보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러나 전체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여유를 갖고 내가 쓰는 기사의 가치를 음미하여 보아야 한다. 내가 판단한 뉴스가치의 가치도 한번 저울에 달아보아야 한다. 내가 쓰는 기사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치인인지, 관료인지, 광고주인지, 독자인지, 서민인지. 기사거리가 생기면 일단 그기에 대한 의문부터 갖는 게 기자의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사주에게 거부할 줄 아는 기자가 되어야 한다. 신문에 대해 잘 모르는 사주는 몰라서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신문을 몰아갈 수 있다. 사주가 잘못하면 기자들은 그 잘못을 지적하여야 한다. 사회의 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 아닌가. 그러한 기자가 사주의 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편향이고 모순이다. 사주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기자가 있어야 신문이 산다. 그래야 옳은 신문이 된다. 옳은 신문이 되면 사주에게도 더 큰 영예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유영철 칼럼 7>
유영철(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cyoo17@naver.com)
유영철 전 편집국장은, 1978년 영남일보에 입사해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8년동안 매일신문에서 근무했으며, 1989년 복간된 영남일보로 돌아와 사회부장과 편집부국장 등을 거쳐 2005년 5월까지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이 글은, 2008년 1월 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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