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골 진실 반드시 밝혀야"

평화뉴스
  • 입력 2008.07.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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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시민회관, 중부署, 가창골, 현대공원 등 돌며 '민주주의 역사 탐방'

전교조 대구지부가 주최한 민주주의 역사 유적지 탐방(7.25 달성군 가창계곡)
전교조 대구지부가 주최한 민주주의 역사 유적지 탐방(7.25 달성군 가창계곡)
"억울한 민간인들의 한이 서린 이 가창골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전교조 대구지부 주최, 4.9인혁재단(가칭) 주관, 대구지역 민주주의 역사 유적지 탐방 행사가 25일 열렸다.

함종호 집행위원장
함종호 집행위원장
함종호 4.9인혁재단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있었으나 10월 항쟁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4.19 운동, 인혁당 사건 등 지역 주요 민중운동이 일어난 현장 곳곳을 직접 찾아가 교육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대구지역 교사를 대상으로 열렸으며, 예산은 민주화사업기념회에서 지원했다. 이날 교사 13명과 4.9인혁재단 관계자, 지역 원로 통일.민주인사 등 23명이 참여했다.







교사들은 대구 시민회관, 전매청 건물, 북성로, 중부경찰서(옛 대구경찰서), 경상감영공원(옛 경북도청 자리) 등 10월 항쟁 당시 군중이 모였던 대구도심 일원과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가창계곡, 칠곡 현대공원묘지 등을 돌며 민주주의 운동 관련자와 그 유족들의 현장증언을 들었다.

특히, 강창덕(81) 민족자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의 고문과 박두포(86) 전 경일대 교수,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고 도예종씨의 부인인 신동숙(79)씨, 이광달(66.화가) 한국전쟁피학살자유족회 고문, 임구호(59)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등 지역 원로 통일.민주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증언과 체험담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1946년 10월 항쟁 당시 경찰 발포로 시민 2명이 숨졌을 때, 100m 정도 앞에 있었습니다. 이 시민회관 일대가 전평(전국노동조합평의회) 경북도평의회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이날 오전 10시경, 강창덕 고문은 시민회관 인근에 이르자 이같이 증언했다.

10월 항쟁은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적 봉기로 이어진 대규모 민중항쟁이다. 미군정의 식량정책 실패에 항의하면서 친일파 청산 등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섰다. 대구를 시작으로 영천과 선산을 비롯한 경북 전역, 경남, 전남 등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10월 항쟁은 '대구 10월 폭동'으로 불리어졌으며, 학계에서는 '10월 사건'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강창덕 고문
강창덕 고문
강 고문은 중부경찰서 앞에서 "당시에 나는 대구상고 야간부 학생이었는데 학생복을 입고 지금의 중부경찰서인 대구경찰서 앞으로 가서 미군정의 실정에 항의했다"면서 "특히 대구의전(현 경북대 의대) 대학생 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도 시위에 합류해 대구경찰서 앞은 학생과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 1만5천여명이 집결했었다"고 회고했다.

강창덕 고문은 1956년 영남일보 공채 1기로 입사해 정치부 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딛은 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1960년 사회당 경북도당 선전.조직위원장을 시작으로, 67년 '반독재 재야민주세력단일후보 추진위원회' 활동과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대구경북상임공동의장, 93년 경산민우회 초대회장을 지내며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특히 이같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무려 7차례 투옥돼 12년을 복역하기도 했다.

이어 일행은 한국전쟁 당시 1천여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된 곳으로 추정되는 달성군 가창면 가창계곡으로 이동했다.

버스로 이동 중에 원로들은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검찰청과 법원은 지금 2.28기념중앙공원에서 한일극장으로 통하는 골목에 있었지. 또 대구형무소 사형장은 지금 빌딩과 고급주택가가 들어섰고..."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전 11시 30분경. 가창계곡.

"이 가창골과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 일대에서 민간인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3천500여명이 무고하게 학살됐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전쟁당시 미군정의 묵인 하에 국군의 손으로 우리 동족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이 한 많은 가창 골짜기에서 우리 국민들이 우리 국군에게 무고하게 학살된 것입니다. 우리 어머님도 여기서 학살당하셨습니다..."

가창계곡에서 진행된 한국전쟁피학살자 사건에 대한 설명과 증언에는 이광달 한국전쟁피학살자유족회 고문이 나섰다. 이 고문은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광달 고문
이광달 고문
"학살자 중에는 소년들도 포함됐습니다. 당시 가창국민학교에 아이들을 모아 작대기로 동그라미를 그리게 한 뒤 잘 그리는 학생은 모조리 학살했다고 합니다. 왜? 잘 그린 아이는 똑똑하다, 좌익사상이 있다는 이유로 전부 죽였습니다. 이런 일이 어딨습니까. 이 천인공노할 이승만 정권과 5.16 군사 정권은 유족들까지 탄압했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이 가창골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이 고문이 격한 감정으로 증언을 이어가자 교사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 이 고문은 "하늘도 그 때의 한을 아는지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이어 칠곡 현대공원묘지로 이동해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희생자들에게 참배와 헌화를 했다.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1974년 중앙정보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구성, 국가전복을 꾀했다"고 발표한 뒤, 이듬 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인 4월 9일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이를 두고 '사법사상 암흑의 날', '사법살인'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이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8명 가운데 도예종.서도원.송상진(영남대), 여정남(경북대)씨를 비롯한 4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이 사건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통해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증거조작, 공판조서 허위 작성, 진술조서 변조, 위법한 재판 등에 의해 조작됐다"고 밝힌데 이어, 2005년 12월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도 "수사지침에 따라 고문과 가혹행위가 자행됐다"며 '사건 조작'을 인정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이 2005년 12월 27일 '재심 개시'를 결정한 뒤 지난해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2년 만이다.

그리고 지난해 8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유족을 비롯해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희생자별로 20~30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교육에 참가한 한 교사는 "왜곡된 역사와 진실을 아이들에게 바르게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뜻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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