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사회

평화뉴스
  • 입력 2008.08.0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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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검찰의 [PD수첩] 수사, 태산 울리다 쥐 한마리 잡았나?"

몇 해전 황우석 박사의 사기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책임마저 끝내 검찰의 손아귀로 넘어갈 즈음에 서울의대의 어느 교수는 그 사건을 두고 “한국 과학계의 국치일”이라고 해도 좋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언론관련 시민단체는 우리사회 “주류언론의 국치일”이라고도 했다. 황우석 박사의 거짓신화를 만들내는 데 일등공신이었으면서도, 황우석 박사의 사기행각을 철저하게 파헤쳐 냈던 MBC [PD수첩]을 향해 독설을 퍼부어대던 우리사회의 주류언론, 즉 <조.중.동>을 겨냥했던 표현이다.

세월이 흘렀으나 똑 같은 일은 거듭 반복되고 있다. 해방이후 민족과 민중의 이익에 반하는 처신을 한 지식인의 부역행위나 정책책임자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그래서 염치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사회이니만큼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황우석' 때와 다른 검찰
미국산쇠고기의 본질을 파헤친 [PD수첩]에 대해 정부와 <조중동>이 앞장서서 독설을 퍼부어대고, 이들의 주문을 받아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모양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황우석 사건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광고압박을 받는 것이 [PD수첩]이 아니라 <조중동>이고, 그런 <조중동>의 사익(私益)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이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완력으로 제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건때 광고압박을 받던 MBC를 보호하기 위해 검찰이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그런데 [PD수첩]의 가공할만한 ‘범죄행위(?)’를 가공할만한 수사력을 가진 한국의 검찰이 내놓은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한마디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그 자체였다. 피고발자로 수사를 받고 있던 [PD수첩]이 해명할 가치조차 없다고 할 정도면 수사결과 내용 속에서 검찰이 [PD수첩]의 위법성을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신 놀라운 것은 검찰이 ‘진단학’의 새로운 가이드 라인(Guide line)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의권 수호' 외치던 의사협회, 쇠고기 '시식'이나..

이 쯤 되면 의사협회는 한국 의료계의 국치일이라고 선언해야 될 정도인데, 그 무렵 의사협회의 집행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면서 미국산쇠고기를 구워 먹는 시범을 보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의사가 담배를 피우면 담배가 전혀 무해한 기호품이 되나? 의사가 폭탄주 시범을 보이면 폭탄주가 건강식품이 되나? 지난 정권 10년 동안 ‘의권 수호’를 목 놓아 외치던 그 용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40쪽이나 되는 검찰의 수사보고서 중에 코미디 수준의 이야기 두어 가지를 정리해보자.


'이런 소'와 '젓소'

먼저 검찰은 젖소(dairy cow)라고 번역해야할 부분을 주저앉는 소가 등장하는 화면과 함께 ‘이런 소’ 라고 번역하여 시청자들에게 미국산쇠고기의 위험성을 과장했다고 판단하고, [PD수첩]에 대해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면 ‘이런 소’를 ‘젖소’로 번역하면 상황은 달라질까? 오히려 미국산쇠고기에 대한 위험성은 더 증폭된다.

광우병의 위험은 젖소에서 시작된다. 영국에서도 초기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젖소였다. 육우와 젖소는 사육목적이 다르다. 고기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육우는 대부분 어린 나이에 도축되지만, 우유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젖소는 우유생산이 중단되는 나이까지 사육되게 된다. 똑 같이 동물성 사료를 먹이더라도 젖소가 동물성 사료를 먹는 양이 훨씬 많게 되고, 각종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리고 프라이온 병은 프라이온에 감염되면 곧장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긴 잠복기를 거치면서 뇌와 신경계를 비롯한 주요 조직에 축적이 되면서 서서히 증상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도축되는 육우와, 육우보다 훨씬 오래 생존해 있는 젖소 중 어느 소가 광우병에 노출될 위험성이 더 높을까? ‘이런 소’를 ‘젖소’로 바꾸어 놓았다면 시청자들의 우려는 미국산 젖소 고기는 물론 젖소가 생산한 유제품에까지 확산되었을 것이다.


'임상적 진단'과 '병리학적 최종진단'

또 검찰은 아레산 빈슨이 앓았던 병에 대해 미국의 의사들은 의심된다고(suspect) 했는데, [PD수첩]은 걸렸다고 번역했음을 지적했다. 일견 타당해보이는 지적이지만 이는 검찰이 ‘임상적 진단’과 ‘병리학적 최종진단’의 차이를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만약 검찰이 제시한 진단학 가이드라인(Guide line)을 따르자면, 한국은 알쯔하이머병의 청정구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알쯔하이머병 역시 뇌조직 부검을 통해 확진되는 병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뇌조직 검사를 하기 어렵고 사후에도 한국에서 부검을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유족들이 부검으로 얻는 실익이 없고, 시신훼손에 대한 완강한 거부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알쯔하이머병으로 진단되는 환자는 거의가 최종 병리학적 진단이 뒷받침되지 않는 임상적 진단만을 받은 알쯔하이머병 의심(suspect) 환자들이다. 이런 환자를 임상의사들이 알쯔하이머병에 “걸렸다”라고 한다 해서 오진으로 처벌받았다는 사례는 없다. 아레사 빈슨을 담당했던 의사 역시 임상의사였지 병리학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vCJD'와 'CJD'
마지막으로 검찰은 CJD와 vCJD를 전혀 별개의 병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CJD와 vCJD는 별개의 병인가? 영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한 뒤 영국정부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인간 광우병이 소 사육에 있어 동물성사료를 사용한 것 외에도 도축방식과 관계있음을 밝혀냈다. 이 때 영국의 언론은 CJD와 vCJD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Leicester Mercury] 2001.3.22 1면 “CJD is linked to Butchers, “Butchers' work that spread CJD”). vCJD를 CJD와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다고 이 신문이 수사 받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힘까지 쥐고 흔들어대고 있다. 그러니 온 나라가 염치없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출범 6개월 만에 백골단 뒤에 숨어 연명해가야하는 정권... 4년 6개월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검찰과 경찰이 휘두르는 물리력에 촛불이 주춤하니 안도감을 느끼는 모양이나 원래 숨어있는 불씨가 더 무서운 걸 모르는 모양이다.

[김진국 칼럼 16]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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