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영유권 주장에는 천황제가 있다

평화뉴스
  • 입력 2008.08.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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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1990년 1월 일본 나가사키 시장 모토지마 히토시가 총탄테러를 당했다. 가해측은 우익단체였다. 가슴에 중상을 입었다. 히토시의 시의회 답변이 우익단체를 격분시켰던 것이다. 천황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1년여 전인 1988년말 히토시는 시의회에서 공산당 의원의 질문에 “천황에게 태평양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말았던 것이다. 극히 상식적인 발언이었다. 태평양전쟁 때 군인들은 황군의 이름으로 전장에 나갔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싸웠고, 그러다가 패했으니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은 전세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에서는 알고 있더라도 말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그해(1988년) 8월 히로히토 천황이 위독했다.(여기서는 우리 표기 대로 ‘일왕’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 표기 대로 ‘천황’이라고 한다. 일왕보다 천황이라는 표현이 이해를 도울 것이다.) 많은 시민이 황거를 찾아 쾌유를 빌었다. 내각도, 언론도, 국민도 모든 일에 ‘자숙’했다. 나가사키 시도 매년 열던 축제행사를 중단했다. 그 시의원이 그 전 해에 많은 사상자를 낸 수해때에도 중단하지 않았던 행사를 왜 중단하느냐, 천황 때문이 아니냐, 천황이 태평양전쟁에 책임이 있는게 아니냐,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의 집요한 유도질문에 축제행사를 중단한 시장이 그만 말려든 것이다. 우익단체는 히토시를 규탄하며 “천벌을 받으라”고 폭언만 한 게 아니었다. 히토시는 시장공관에서 나오지를 못했었다.

히로히토 천황은 89년 1월 사망했다. 비록 패전이후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긴 했어도 일본에서는 아직도 천황은 신이다. 그런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천황에 대한 비판적인 글은 쓰지 못한다. 언론도 황궁의 자료 이외에는 보도하지 않는다. 황궁이 제공하는 보도자료 이외에는 모두가 금기이다. 다르게 생각하거나 표현할 자유가 없는 것이다.

요즘 연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글들이 신문지상을 메우고 있다. 지난 2005년 시마네현이 조례를 제정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했을 때에도 일본의 야욕을 규탄하는 글들이 신문지상을 메웠다. 그래도 일본은 주춤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을 꾸며왔다. 이번의 중학 교과서 해설서에 이어, 고등 교과서, 초등 교과서 해설서도 이미 예고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말이 안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우리들의 생각이다. 그런데도 계속 우리는 우리의 상식으로만 생각하고 대처하고 있을 뿐이다. 상식 아닌 억지에 대해 우리가 표하는 ‘유감’, ‘실망’, ‘안타까움’, '벼르장머리 운운' 도 우리의 상식 범주에 속하는 반응일 뿐이다.

일본에 대해 우리는 너무 모른다고 해야 옳다. 그때그때 감정적인 비난만 했지 그들의 틀짓기(프레이밍,framing)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독도에 찾아가서 한복 입고 태극기 들고 규탄하고, 우리가 할 일을 다했다는 식으로 끝내고 돌아오면, 일본은 기다렸다가 다음의 일을 추진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와는 다른 천황의 나라라는 허구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기원전 660년 태양신의 후예라는 1대 진무천황부터 1990년 11월 즉위한 125대 아키히토 현 천황까지 만세일계로 내려온 천황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틀(프레임,frame)아래 움직인다. 그것이 사실이건 전설이건 신화이건 중요하지 않다. 한 번 그렇게 각인되면 그게 그들에겐 진실이고 역사이다. 감히 천황을 부인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물론 극소수의 일본인은 천황제를 반대한다. 앞으로 나올 여성천황제도 반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반대하다가는, 비난하다가는 결정적일때 나가사키 시장처럼 테러를 당한다.

그들은 섬에 갇혀 지냈으므로 대륙 컴플렉스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극복하면 되는데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그 일례가 그들이 만든 신공황후의 전설이다. 신공황후가 서기로 해서 200년쯤 신라를 정벌했다고 일본서기에 적어놓고 믿는 연습을 해오다가 기정사실로 굳힌 지 역사가 너무 오래됐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신공황후가 남장을 하고 신라를 정벌하러 갔을 때 겁먹은 신라왕은 투항하였고, 이를 전해들은 고구려와 백제도 조공을 약속하였다’는 내용이다.

'신공황후, 신라정벌'이란 '일본서기'의 틀짓기는 사마천의 '사기'의 틀짓기보다 몇 수 위이다. 처음에는 대륙에 대한 갈망을 꿈 속에서 넋두리하다 희망사항으로 적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은 비몽사몽 속에서 그 ‘꿈’을 ‘현실’로 이룩해가는 집요함을 보여왔다. 그리고는 꿈을 깨우는 모든 생각은 일본 안에서는 금기가 되는 것이다. 패전이후 소위 평화헌법의 테두리에 갇혀있던 일본 우익은 패전 50주년이후 노골적인 행동에 돌입해,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하면서 지난 날 침략 행위 등 비판적인 시각을 자학사관에 입각한 잘못된 역사 진술이라고 탄식하면서 새로운 역사, 그것이 허구이건 아니건 역시 중요하지 않은, 지금과 다른 새로운 역사 창조에 뛰어든 것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도 허구다. 일본이 무장하고 침탈하지 않는 한 독도는 일본 영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신공황후의 신라정벌도 만들어낸 일본이기에 일본으로서는 허구 자체가 허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천황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일본은 천황을 신으로 받들면서 대륙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살아갈 운명적인 나라이다. 다시 천년이 흐른 뒤 어떤 궤변으로 등장할 지 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나라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해결책은 그들이 허구로 만든 천황제라는 틀(프레임)속에 들어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 그들이 어디에서 갔겠는가, 섬에 들어가서 살다보면 그렇게 되는지도 연구문제이기도 하다.


<유영철 칼럼 10>

유영철(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편집장 ycyoo17@naver.com)



(이 글은, 2008년 7월 21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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