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의 왜곡, '매일'의 이상한 단정

평화뉴스
  • 입력 2008.10.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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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국민건강은 경기와 반비례한다!"
연합 "상관관계는?" / NYT "놀라울 정도로 뒤섞여있다"


한 국가의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면, 또 그것이 장기화될 때 전체 국민의 건강수준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게다가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한 사회보장체계마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는 국가라면? 우리가 10여 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 때의 기억들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지역의 <매일신문>은 느낌표까지 덧붙일 정도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국민건강은 경기와 반비례한다!(2008.10.11, 21면)”고 주장하며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일거에 뒤집어 버리고 있다. <매일신문>의 이런 확신은 <연합뉴스>가 인용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말 “실업률이 1% 상승하면 사망률은 0.5% 하락”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리해고를 일삼으며 실업률 상승을 부추기는 사업주들은 지탄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국민건강수준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10월 11일자 21면...연합뉴스와 달리 는 단정적인 제목을 뽑았다.
매일신문 10월 11일자 21면...연합뉴스와 달리 는 단정적인 제목을 뽑았다.

이 인용한  2008년 10월 8일자 기사와 제목
이 인용한 2008년 10월 8일자 기사와 제목


그렇다면 실지 <뉴욕 타임스>가 국민건강수준이 경기와 반비례한다고 주장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매일신문>이 인용한 것은 <뉴욕타임스> 2008. 10.7 일자 건강(Health)면에 게재된 경기와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묻는 기사(『Are Bad times Healthy?』)였다. 그런데 그 기사에는 개인의 건강(Individual's health)과 국민전체의 건강(Population's overall health)를 구분하고 있고, 국민전체의 건강수준은 장기적인 경제성장과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제기한 문제는 경기침체 국면에서 개인의 건강(Individual Health)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하는 점이었으며, 그에 대한 결론도 “놀라울 정도로 뒤섞여 있다”(surprisingly mixed)는 것이었지, “국민건강”은 물론 개인의 건강조차 경기에 반비례한다는 결론은 어디에도 없다.

경기침체국면에서 실업이 ‘개인’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제 읽고 싶었던 책도 좀 읽고, 못했던 운동이나 여행도 좀하고, 심심하면 대학에서 강의나 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많이 늘였으면 한다”라는 불황시대의 퇴임 또는 실업의 소회를 밝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거액의 퇴직금과 종신연금을 챙겨 나오는 기업의 CEO, 고급관료들, 그리고 헛발질하다 실업자가 된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무위자연과 전원생활을 찬미하며 건강을 챙길 때, 그 농촌마을에서 쫓겨나와 도시 변두리 쪽방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하는 도시빈민들의 가슴에는 대못이 박힌다.

드물게 실업에 따른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긴 하다. 그들의 건강수준은 실업 이전보다 더 좋아졌을 것이란 점은 얼마든지 추정가능 하다. 하지만 이런,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은 사례들을 긁어모아 불황기에 오히려 건강수준이 향상된다는 증거로 삼는 것은 학자라는 명함을 가진 사람들이 차마 할 짓이 못 된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학자들은 보건학자라기 보다는 경제학자들이다. 게다가 그들이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학자들이라면 무슨 소리를 못할까?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쇠고기”를 먹으면 한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국민건강수준도 향상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한국의 경제학자들 아닌가?

<뉴욕타임스>가 불황기에 개인의 건강수준이 오히려 향상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인용한 이유는 앞으로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올 월가의 실업자들을 격려, 위로하려는 충정도 있지 않았나 싶다. 정작 뉴욕타임스가 강조하는 대목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1980년대 페루의 경제위기, 1990년대 일본의 경제위기 때 그 국가에 심각한 공중보건상의 위기가 있었던 사실을 예로 들면서, 미국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의료보장체제(National Health Plan)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4,600만 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이 없고, 4년 전에 비해 의료보험료는 두 배 이상 상승했다. 그래서 의료보험을 가진 1억 7천 9백만 명의 미국인들조차 단 한 차례만이라도 중증질환( A single health crisis)에 걸리게 되면 7명 중에 1명꼴로 파산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대란에 따른 파산 행렬에 이어 의료대란에 따른 파산행렬까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불황으로 오히려 국민건강 수준이 향상된다며, 느낌표까지 찍을 만큼 흥분한 대목은 어디에도 없고, 사회안전망이 없는 미국사회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이 기사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가? 미국에서부터 불어오는 불황의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을 허무는 의료민영화, 의료산업화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주무부서의 장관은 “감세도 복지의 일환”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고, 차관은 고대광실에 들어앉아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농사직불금까지 호주머니에 챙겨 넣고 있다. 여기에 제동을 걸고 대안을 제시해야할 언론은 외신을 왜곡하면서까지 불황이 깊을수록 국민건강은 더 좋아진다는, 썰렁한 농담이나 하고 있으니...정말 숨통이 턱턱 막히는, 농담 같은 세월이 너무 더디게 지나가고 있다.

[김진국 칼럼 18]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이 글은, 2008년 10월 6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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