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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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순..."둘째 아이 돌, 부모님께 감사패를 드렸습니다"

서미순씨와 어머니...
서미순씨와 어머니...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 잠들어 있던 DNA를 떨게 했던 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되었다. 갓 돌이 지난 아이와 세 살배기 아이다.

엄마 라는 자리는 참 벅차다.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리는 날들도 있지만 하루가 1년처럼 긴 나날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가 엄마 엄마 하며 웃을 땐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이유도 없이 울 때는 쥐어박고 싶다. ‘엄마’의 이름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좋은 엄마’의 이름은 그래서 어렵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게 아닌가보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대쪽 같은 성격의 아버지를 만나 칠십 평생을 살면서 육남매를 키우셨다. 냉정한 아버지에 반해 엄마는 정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낙천적인 사람이다. 나에겐 아직도 밑반찬이며 쇠고기국, 추어탕, 나물국 따위를 1인분씩 포장해 냉동고에 넣어주시고, 콩이며 배추, 무, 시래기, 참기름에 갖은 양념까지 게다가 감기가 잦다며 대추며 모과를 썰어서 꿀에 재우고 몇 년 심어서 묵은 도라지도 말려서 가져오신다. 뿐만 아니라 철철이 갖은 약초로 만든 단술이며 매실, 과실주, 홍삼도 보내주신다.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탓인지 아직도 내가 아프면 엄마도 함께 아프시다.
어김없이 다음 날이면 전화를 하신다. 새가 되어 하루에도 수없이 내가 있는 곳으로 몇 번 다녀가시곤 하신다며 너스레를 치신다. 손끝이 갈라지고 허리가 휘어져 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걱정을 하시며 제 철 음식이 최고라며 텃밭을 일구며 고집을 하신다.

결혼 전에는 그랬다. 생선뼈 갈라서 숟가락에 얻어 주면 나는 그냥 받아먹었다. 엄마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라고... 내가 결혼을 하고서 아이를 키우며 엄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엄마라는 단어는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일 것이다.

며칠 전 둘째 아들의 돌이었다. 식구들과 한식집에서 오붓하게 보내며 양쪽 부모님께 감사패를 만들어 드렸다. 마음을 담아 쓴 글을 패에 새겨 드린 것 뿐인데도 불구하고 눈시울부터 붉히신다.

둘째 아이 돌, 부모님께 드린 감사패...
둘째 아이 돌, 부모님께 드린 감사패...

이제 내가 엄마의 자리에 섰다.
과연 나는 두 아들에게 우리 엄마처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도 없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위로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지만 그건 거짓말일 게다. 우리 엄마 같을 자신이 없는 거다.

엄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꽃 중에 무슨 꽃이 제일 이쁜 줄 아나?”
“무슨 꽃인데?”
“그건 인(人)꽃이다. 자고 일어나면 이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피고, 평생을 봐도 이쁜꽃이다”

이런 엄마의 딸로 태어난 나는 행복하다.
꽃따운 나이에 시집온 엄마는 처음에는 큰 풍랑을 만났을 지언정 지금은 그 풍랑을 이겨내는 어부가 되어있다.

이제 우리 아들이 벼가 자라듯 쑥쑥 자란다.
"고물 삽니다". 세 살배기 아들 녀석은 언제부터인가 시골만 갔다 오면 사투리를 배워온다. 그 말이 귀엽기도 해서 그냥 두었더니 이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날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엄마보다 외할머니를 더 따르는 우리 아들을 보며 난 웃고 있다. 내가 엄마이기에.

[주말 에세이] 서미순
*. 서미순씨는 참길회와 여러 곳에 봉사와 후원을 하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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