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희망?..권력 틀어쥔 '서울'부터 따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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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희망 빼앗긴 사람들, 성급한 희망보다 마음 속 패배의식부터 털어내자"

 참 고단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지난 봄 도시의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촛불들도 몇 남지 않은 채 애처로이 하늘거리고 있는데,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절대권력의 드잡이가 광폭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어느 곳 하나 의지하며 기댈만 한 곳이 없다. 이 나라의 법은 만인의 평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힘있는 자들의 전유물이요 전리품이란 사실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로는 확실히 증명이 되었다.

 경제마저 나락으로 곤두박질 친 탓인지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데, 사람들의 마음까지 꽁꽁 얼어 붙어 있는 것 같다. 이미 길거리로 내몰려 있는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의 자리에 어렵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위태롭기 그지없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뜯어내기가 두려울 정도로 내일의 전망을 가질 수 없는 요즘, 다가올 또 한 해는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오려는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은 흉흉하기 짝이 없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올해처럼 공허하다 못해 시끄럽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희망이 없는 삶은 절망을 넘어 죽음과도 같다. 그래도 사람들은 쉬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어느 한 구석에 깊숙이 숨어있는 희망 한 쪽을 찾으려 발버둥을 친다. 그런 애처로운 마음을 달래려는 듯 ‘희망’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렇다. 사람만이 희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인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희망을 빼앗아간 사람들인가? 사람값이 개값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사람의 쓰임새가 일회용 반창고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이 시대에,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무너진 이 시대를 버티어 내기에는 너무 한가한 선문답이다.

 “지역이 희망이다” 지역에서 희망을 찾으라고?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시대로부터 오늘 이 순간에도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든 지역에 흘러넘치는 희망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눈 뜬 봉사들이었던가?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지방정치의 부패는 갈수록 심해지는 반면, 시민사회의 견제력은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 그 책임을 지역주민들이 전적으로 감당하라 요구하려면 수도권과 중앙정부,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수도권 시민들이 틀어쥐고 있는 권력과 힘이 너무 크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들은 하나 둘씩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고 있는데, “지역에서 희망을 찾으라”는 서울 사람의 고상한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에게는 뜬금없다 못해 가혹하기까지한 이야기다. 썩어빠진 이 나라의 교육제도가 개혁되지 않고서는 지역에서 희망의 싹이 한 뼘이라도 자라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광역 대도시의 대학들마저 휘청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서울 사람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알 턱이 있겠는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수도권규제완화’를 반대한다는 수도권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역이 희망”이란 이야기는 희망을 빼앗긴 지역사람들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라 수도권 사람들을 향해 던져야 할 메시지다.  ‘지역이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서울이 문제’임을 먼저 부각시키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청계천에서 솟아 오른 괴물이 용인지, 이무기인지, 용가리인지 침묵이 강요되는 시대인지라 사람들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괴물을 만들어낸 것 또한 바로 ‘우리’들이요, 우리들의 ‘희망’때문이었다. 그 희망이 망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희망은 권력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깨닫게 해 준 한 해였다.

고단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성급한 희망을 이야기하기 전에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패배의식을 털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김진국 칼럼 19]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의사.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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