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접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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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장지(葬地)를 다녀와서"

접시 닦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닦다가 깨면 문책을 받지만 닦지 않으면 깰 일도 없고 문책 받을 일도 없다. 그래서 접시 닦는 일을 하지 않는다. 공무원사회에서 회자되는 ‘접시이론’이다. 답답한 나머지 모 단체장은 접시를 닦다가 접시를 깨더라도 문책하지 않겠다며 독려하였다. 하지만 접시 닦는 일에 뛰어들지 않는다. 

 지난 18일 일요일 아침에 겨울비가 내렸다. 소한 대한인데도 날씨가 춥지 않아 다행이군. 그런데 눈이 안 된 비는 내리면서 얼었던 것이다. 경사진 곳과 응달진 곳이 더했던 것이다. 그러한 줄도 모르고 그날 아침 나는 장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대구에서 출발하여 군위군에 있는 공원묘지로 가는 중이었다. 간간이 내리는 비가 고인의 넋을 추모하였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는 천천히 달렸다. 그래도 빠르면 오전 10시 이전에 장지에 다다를 것 같았다. 군위I.C도 지났다. 톨게이트에서 잠깐 정차하였을 때 창쪽으로 고속도로변을 보게 되었다. 우리가 지나온 군위I.C이후부터 고속도로는 길게 정체되어 있었다. 차가 밀리는 모양이군. 버스는 장지 쪽인 음지로 접어들었다. 버스를 뒤따라오던 너댓 대의 승용차에서 10여명의 조문객이 내렸다. 그들은 버스에 동승했다. 길이 미끄러워요. 또 우회전. 공원묘지는 6킬로미터, 팻말이 보였다.

서행으로 몇 분 갔을까. 버스가 흔들리며 정지했다. 모두 내려야 합니다. 버스는 아스팔트 도로변 수로에 오른쪽 뒷바퀴 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버스 뒷바퀴의 한 쪽은 두개씩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계속 아스팔트를 얼음처리 하고 있었다. 젊은 층은 농가에서 빌린 삽으로 밭흙을 퍼서 뿌렸다. 더 이상 가기 어렵습니다. 내렸던 조문객은 미끄러운 도로의 가장자리에 돋아난 풀길을 따라 앞으로 향했다. 두 시간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구두를 신었고 우의도 없었다. 관을 실은 세단차도 젊은 조문객들이 뿌려주는 밭흙에 힘입어 앞서가다 결국 멈춰 섰다. 더 이상 가기 어렵습니다. 공원관리사무소의 트럭이 모래를 뿌리며 내려왔다고 말했다. 트럭 뒷칸에 관을 실었다. 유족도 함께 타고 먼저 출발하였다.

 조문객 간의 격차도 벌어졌다. 경차 하나가 수로에 빠져 있었다. 커브길을 돌았다. 승합차가 수로 위쪽 담벽에 범퍼를 대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었다. 장지로 가다가 미끄러졌어요. 동네청년들이 갖고 온 밭흙을 승합차 주위에 뿌리고 있었다. 일행을 놓친 나는 그와 동네슈퍼 가판대에서 커피를 한 잔 빼먹고 있었다. 그 사이에 한 중형차가 미끄러지면서 수로에 바퀴를 빠뜨렸다. 장지로 뒤늦게 온 아는 조문객이었다. 승용차 하나가 이어서 다가오다 중형차 옆 자리를 메우듯 빨려 들어갔다. 기울어진 차에서 빠져나오다가 넘어지기도 하였다.

이 동네 사람이었다. 수로에 빠진 차들이 수도 없어요. 방송에서는 중앙고속도로 군위I.C부근에서 수십 대가 연쇄추돌 했다고 합디다. 레카차를 불러도 워낙 사고가 많아 오지 않아요.         

 ‘겨울철에 비가 온다. 영상 1-2도에서는 응달의 경우에 도로에 닿기 무섭게 얼게 된다. 노면이 얼면 운행 차량은 미끄러진다. 연쇄추돌사고가 발생한다.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도로공사의 관리대상은 고속도로이다. 차량의 안전운행도 관리종목일 것이다. 이 정도 비가 오면 노면이 결빙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것이다. 지점별로 응달길이고, 커브길이고, 내리막길임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사전에 결빙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르고 달리다가는 대형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이런 날 아침 사고가 날 것이 뻔한데 도로공사는 이날 무엇을 하였는가. 미리 모래를 뿌리거나, 염화칼슘을 살포하거나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사정도 모르고 달리는 차량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정을 아는 도로공사가 했어야 하지 않는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 편에 서서 그들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사전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을까.’

 ‘지방의 국도 지방도 곳곳이 결빙하여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지방자치단체는 무엇을 했는가. 일요일은 휴무이다. 그러나 밤샘을 하는 당직은 있을 게 아닌가. 당직은 무엇을 하는가. 자치단체의 당직은 자치단체 곳곳의 안전에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당직이 미리 이 같은 기상상황에 대비,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는가. 뒤늦게라도 사고소식이 알려지면 읍면동별로 비상을 걸 수는 없는가. 마을별로 확성기를 통해 마을 앞 응달진 도로에 밭흙을 뿌리는 봉사 작업을 할 수는 없었는가. 우리 지역을 찾은 사람들이 사고 없이 편안하게 용무를 보고 갈 수 있게...’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들에 젖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 위험한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그리고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도로공사는 그렇게 한가한 곳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도 그렇게 자상한 곳이 아니다. 비상을 걸 수는 있다. 비상에 걸려 휴일 아침에 차를 몰고 나오다가 결빙노면에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그러니 비상을 걸지 않는 게 낫다. 동네 마을에 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노인들이 농촌을 지키고 있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가.’

 ‘우리나라는 국민이 알아서 하는 나라이다. 그만큼 교육수준도 높지 않는가. 멀리갈 일이 있든지, 장지에 갈 일이 있으면 전날 밤 기상예보 잘 듣고 결빙 유무를 예상하고, 고속도로에서는 어떻게 하고, 지방도의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하고 조심하여 운행하는 게 너무나 마땅하고 당연한 국민의 의무가 아닌가 말이다.’

 조문객들도 끝까지 가지 못했다. 유족들만 트럭을 타고 장지에 갔다가 장례를 치르고 내려왔다. 마을회관에서 조문객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날 참석했던 사람들 누구도 도로공사나 지자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말하고는 대구로 향했다. 이런 영상들이 떠올랐다.

 왜란 때 궐기한 의병장이 전쟁 후 모반혐의로 고초를 겪는 모습, 선조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떠나는 모습, 대한민국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6.25발발 후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내려와 서울에서 하는 양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는 내용의 방송을 하는 모습.





<유영철 칼럼 11>
유영철(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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