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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없는, 그들의 법

기사승인 2009.03.22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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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국 칼럼] "총칼에 힘을 실어 준, 그들 만이 휘두를 수 있는 법"

산산조각 난 믿음, '역사의 진보'

다산의 <목민심서>에 실려있는 애절양(哀絶陽)은 자식 때문에 당할 군액(軍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물(陽物)까지 칼로 잘라내야 했던 조선조후기 백성들의 참담했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7언시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차별은 봉건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온 인류의 해묵은 과제이긴 하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양물(陽物)까지 잘라야 한다거나, 아무리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길로틴이나 망나니의 칼로 죄수의 목을 처 날리는 나라는 없다. 그래서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된다고는 하지만 더디더라도 언젠가는 하나둘씩 개선되어 나가더라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우리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게 된다.

  1970년대 조세희 선생이 쓴 '난장이' 마을의 이야기 역시 불과 30여년 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분명 지나간 시대의 가슴 아프고도 슬픈 이야기이고, 그리고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그런 이야기여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 달리 저항할 수단이 없는 그런 끔찍한 상황은 지난 시대의 아픈 ‘기록으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70년대 난장이 마을의 슬픈 이야기가 21세기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더 끔찍하게, 더 잔인하게, 더 큰 규모로 되풀이되고 있다. 용산 참사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70대의 노인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둔갑시키는 공권력의 무지막지함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아예 산산조각 내버렸다.

  흔히 우리 사회의 7-80년대를 총칼이 지배하던 시대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진실이 아니다. 그 당시 국민들을 겁박하는 상징물인 총칼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법이었고, 그래서 군부독재라고는 하지만 실지로는 ‘법치’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공수부대의 광주학살이 가능했던 것도 비상계엄에 관한 ‘법’이 있었기 때문이고, 대학생들을 줄줄이 감옥에 가두어둘 수 있었던 것도 긴급조치에 관한 '법', 국가보안에 관한 '법',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정도, 표정도 없는 '법관'

 조세희 선생은 <난장이> 연작을 발표한 이후 1985년에 짧디짧은 소설(『푸른 풀밭』) 하나를 새로 발표한다(80년대 대표소설선/황석영 김정환 편 1985. 5 <지양사>). 난장이의 아들 딸, 영수.영희를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공돌이.공순이'라 빈정대면서 대학을 다녔던, 그리고는 졸업 한 뒤에는 사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반응으로 안락한 가정을 지켜온 서울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그 소설은 조세희 선생이 그해 9월에 펴낸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열화당> 1985. 9)에 다시 실린다.

 주인공 한영식은 법관이 되려 했으나 연거푸 시험에 실패하던 중 먼저 법관이 된 친구의 약혼식에 들렀다가 친구 약혼녀의 들러리로 참석한 은영과 눈이 맞아 깊은 사랑에 빠져든다. 혼외정사로 은영이 아이를 가지게 되자 영식은 은영과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취직을 한다. 영식이 취직한 회사는 난장이 딸 영희가 "줄 끊어진 기타를 치며" 놀던 방죽 아래로 시커먼 폐수를 흘려보내던 '은강그룹'이었다.  

영식은 "성공은 도덕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 틈에서", "하루에 열두 시간씩", 때로는 "스물 세시간", 어떤 때는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마흔 여덟 시간을 내리 일에만 매달린" 끝에 정확하게 "십일년 팔개월 이십삼일 만에 냉방기가 달린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은강그룹의 이사가 된다.

 법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영식과 달리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 법관이 된 영식의 친구는 아무 감정도 표정도 없는 인물로 변한다. 그 친구는 "일본인이 지어 놓은 오래된 건물에서, 표정없는 얼굴로 앉아 줄지어 서 있는 어린 후배들을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몇 개의 관절만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안하면 누군가 하는!" 그 일을 열심히 사명감을 가지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대법관 역시 “내가 안하면 누군가 하는!" 그 일을 열심히 사명감을 가지고 했을 뿐일 터인데, 아마 몹시도 억울할 것이다.

무소불위, 그들 만이 아는 법

  십일 년 만에 이사 자리에 오른 영식은 지금쯤은 적어도 그룹 계열사 사장쯤은 되어 있을 것이고, “표정없던” 영식의 친구는 부장판사, 법원장을 거쳐 사법부의 최고위직에 올라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적 이해와 동질적 요소, 그리고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통점 때문에 늘 단결한" 채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고 있을 것이다. 그 힘은 총칼이 아닌 바로 그들만이 아는, 그들만이 휘두를 수 있는 '법'이다.

 조세희 선생은 자신이 쓴 『푸른소설』에 대해 "이 짧은 소설에 무슨 힘이 있겠느냐"며 장 탄식을 늘어놓고 있다(『침묵의 뿌리』 80쪽). 그러나 지금 더 슬프고 더 안타까운 것은 단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과 공명(共鳴)하는 짧은 소설 한편, 짧은 시 한 구절, 짧은 노래 한 자락 얻어 듣기가 힘든 시절이란 거다. 대신 온 천지 사방팔방에 "표정 없는" 그들의 법만 설쳐대고 있고,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아예 산산조각 나버렸다. 무섭다.

 
 
 





[김진국 칼럼 22]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의사. 신경과 전문의)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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