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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항쟁, 자식으로서 아버지 명예는..."

기사승인 2009.12.03  02: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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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10월 항쟁 유족회' 결성..."특별법 만들어 진실과 명예회복을"


"자식으로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명예는 회복시켜드려야 하지 않겠나"
대구에서 '10월 항쟁 유족회' 결성을 준비하고 있는 나정태(63) 조직국장의 말이다.

나 국장의 부친(나윤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된 '10월 항쟁' 당시 대구역에 근무하며 철도노조 간부를 맡고 있었다. 항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구속돼 1949년 석방됐으나 다시 '예비검속'으로 붙들여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1950년 7월 30일 경산코발트에서 눈이 가려진 채 목숨을 잃었다. 이 사실은 당시 한 교도관의 진술로 확인됐다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유족에게 알려왔다.

광복 이듬 해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항의하며 '10월 항쟁'은 대구 도심에서 시작해 12월 중순까지 전국적 항쟁으로 퍼져나갔다. 전국에서 230여만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 경북도협의회> 간사를 맡고 있던 이일재(85) 선생은 "대구에서만 5천여명이 파업에 참가했고 적어도 200여명이 숨졌으며, 대구.영천을 비롯한 경북지역에서 15-2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기억했다. 또, 당시 대구상고 학생이던 강창덕(82) 선생은 "대학생 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시위에 참가해 대구경찰서(현 중부경찰서) 앞에는 1만5천여명이 집결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미군정은 이들을 '좌익'으로 몰고 우익청년단체들을 동원해 탄압했으며,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을 만들어 6.25한국전쟁 때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 때는 물론, 박정희에 이은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에 '유족'이라고 말하지도 못한 채 희생자 가족들은 숨 죽이며 지내야 했다.

나정태 조직국장은 "아직도 자기 아버지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유족들이 많다"면서 "적어도 자식으로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는 회복시켜드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유족회 창립 뜻을 밝혔다.

 
 
▲ "폭동이 아니라 항쟁이었다"고 말하는 이일재(85) 선생 / <10월 항쟁 60주년 추모제> 2006.10.1. 대구 경상감영공원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10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대구에서 '10월 항쟁 유족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결성된다. 항쟁 63년 만이다.

유족회는 정정웅(68).채영희(65살) 공동회장과 나정태 조직국장을 비롯해 유족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오는 12월 4일 오후 2시 대구가톨릭근로회관에서 유족을 비롯해 지역 재야인사와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결성식을 갖는다. 유족회 사무실은 대구시 중구 봉산동에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을 같이 쓴다.

정정웅 회장의 부친(정시명)은 10월 항쟁 당시 영천에서 인민위원장을 맡고 있다 희생됐고, 채영희 회장의 부친(채병기)은 대구에서 10월 항쟁에 가담했다 곧바로 행방불명돼 소식이 끊겼다.

10월 항쟁 유족회는 결성식에 이어, 항쟁이 일어난 10월 1일을 상징하는 뜻으로 매월 1일 정기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진실규명 운동에 나선다. 특히, 유족회는 '10월항쟁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운동에 힘을 쏟기로 했다. 그동안 과거사 문제를 다뤄오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2010년 4월로 막을 내리기 때문에 10월 항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나정태 조직국장은 "대구의 실제 유족은 70명이 넘지만 유족들이 아직까지 불이익을 걱정해 30명만 우선 참여하게 됐다"면서 "유족들에게는 박정희 때 피해의식이 아직 크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또, "유족회는 2년전부터 준비해왔으나 이런 우려 때문에 대외적으로 밝히기 어려웠다"면서 "이제 유족회를 정식으로 결성하며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대외적인 활동에 나서게 됐다"고 결성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10월 항쟁은 미군정의 식량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국민저항권적 성격의 민중항쟁이지만, 미군정과 정치세력들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면서 "벌써 60년이 더 지났지만,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 그 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억울하게 희생자된 이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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