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사죄ㆍ배상받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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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김순악(82) 할머지 별세..."족두리 한번 못쓴 게 평생의 한"


김순악 할머니
김순악 할머니
또 한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경북 경산에 살던 김순악(82) 할머니가 1월 2일 새벽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밝혔다. 

빈소는 대구 곽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식은 1월 4일 아침 7시 30분 곽병원에서 대구시민사회단체장으로 거행된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09년 12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으나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숨졌다. 두 아들 가운데 큰 아들 김(60)모씨만 서울에 살고 있으며 둘째 아들은 예전에 세상을 떠났다.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김순악 할머니는, 16살이던 1944년 공장으로 돈 벌러 갔다 속아 만주로 끌려가 중국 장가구 시골마을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며 고초를 겪었다. 1945년 해방을 맞았으나 고향으로 오지 못한 채 이태원과 군산, 여수, 파주, 서울 등지를 떠돌아야 했다. 어렵게 고향 경산으로 왔으나 1953년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아들을 두고 상경했으며, 1997년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식당과 남의 집살이를 하며 어렵게 생활했다.

김순악 할머니 사진과 소개 글 /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홈페이지
김순악 할머니 사진과 소개 글 /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홈페이지

김 할머니는 2000년 1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뒤, 2003년 일본에서 '위안부' 증언강연회를, 2006년에는 경남 창원에서 '한일공동증언회'를 했으며, 2007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LA세계대회에 참가하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했다.

2008년 펴낸 할머니의 일대기
2008년 펴낸 할머니의 일대기
2008년에는 할머니의 일대기를 엮은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 카이'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끝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82살을 일기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김 할머니는 2000년 이후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하나로 시작한 원예치료가 계기가 돼 '압화'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2007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LA세계대회 기간 중 자신의 압화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으며, 2007년과 2009년에는 2년 연속 고양세계압화공예대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김 할머니는 평소 "족두리 쓰고 시집 한번 가보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이 단체 이인순 사무국장은 "성정이 매우 곧고 솔직하셨다"고 김 할머니를 떠올렸다. 또, "항상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하셨고, 옛날 기억을 아주 분명하게 기억하실만큼 굉장히 영민하셨다"면서 "굉장히 멋쟁이 할머니"라고 기억했다.

한편, 현재 국내에는 대구경북 10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88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생존해있다. 대구경북에서는 지난 2008년 4명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비롯해 지난 2000년 이후 6명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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