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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문화의 문제? 문화의 문제!

기사승인 2010.02.21  14: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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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국 칼럼] "폭력 문화, 청산하고 바꿀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경기도 어느 중학교의  선후배 사이에서 일어났던 "막장 졸업식 뒤풀이"로 세상이 떠들썩할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이 나설 일"이 아닌, "문화의 문제"로 평가한 것은 정말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본 명쾌한 진단이라 평가할 만하다.

피해자들의 부모들이 가해자를 형사 고소한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경찰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한 칼에 잘라 버리려는 듯한 발언에는 문제가 있지만, 학교폭력이 경찰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 MBC뉴스데스크(2010.2.17)
그런데 "문화의 문제"로 진단은 하였으나, 학교폭력이 어떤 문화에 뿌리를 둔 것인지 그리고 해결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바람에 대통령이 모처럼만에 내린 명쾌한 진단이 썰렁한 립서어비스가 되어 버렸다.

모든 학교에 영어를 공용화하고, 전국의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달이 일제고사를 치르고 개개인의 성적을 만천하에 낱낱이 공개하면 학교문화는 선진화되고, 학교폭력은 자취를 감추게 될까?

 우리 사회에서 학교폭력은 요즘의 어린 학생들이 새롭게 창조해낸 낯선 문화가 아니라  진화 · 발전하면서 나날이 참신한 모습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역사와 뿌리를 가진 생명체나 마찬가지다.

70년대 학교 폭력, 교사의 폭력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교폭력, 특히 교사에 의한 폭력은 당연히! 그래야 하고, 마땅히 받아야 하는 교육 그 자체였다. 교사의 폭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조차 없었고, 그런 사람도 없었다. 선착순 달리기에서 맨 끝에 매달려 들어와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데, 얼굴에 땀이 없다며 그래서 일부러 슬슬 뛴 거 아니냐며 내 등짝을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 대던 그 교사의 표독스런 얼굴을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70년대 쌀이 부족하여 혼분식을 장려하면서 중고등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검열하던 시절, 점심 도시락에 보릿쌀이 부족하다면서 그 도시락을 들어 내 얼굴에 처박던 사람도 교사였다. 아들에게 쌀밥을 먹이고 싶어 도시락 윗부분에만 보리쌀을 살짝 발라 놓은 모성애가 화근이었다. 사람이 먹을 밥을 사람을 두들겨 패는 몽둥이로 휘저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 시절 윗학년 선배들이 군기 잡는다면서 휘두르는 폭력은 오히려 애교에 가까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내가 밀가루를 뒤집어 쓴 건 아니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3년 동안 내 까까머리를 짓눌러 왔던 따깨비(그 시절, 우리는 교모를 따깨비라 불렀다)를 도루코(문구용 칼)로 난도질하여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던 기억이 있다. 그 따개비는 우리가 학생임을 상징하는 징표라기보다는 매질의 꼬투리였다. 모자를 삐뚤게 썼다고, 모자를 안 써고 왔다고, 모자를 너무 푹 눌러 썼다고, 모자 밑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너무 길다고.. 이유도 참 가지가지였다.

가혹한 내면의 폭력 세계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나? 교사들에 의한 폭력은 현저히 줄어든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교육계의 각성 탓일까? 나는 아마도, 인터넷과 극성 부모의 영향이 더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각을 했다고 한참에 200대를 두들겨 패는 교사... 인터넷이 없었다면 그 교사는 오늘 이 순간에도 현직에서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겉으로 드러난 폭력이 줄어드는 대신 폭력은 은밀하게 더 가혹하게 학생들의 내면 세계로 파고들고 있다. 지금 학교는 서울대를 가는 학생과 못가는 학생, 수도권대학을 가는 학생과 못가는 학생으로 구분하여 차별한다. 급식비를 내는 학생과 못내는 학생이 확연히 구분이 된다. 학원을 갈 수 있는 학생과 못가는 학생의 수준차이, 미국연수를 다녀온 학생과 다녀올 수 없는 학생의 수준차이는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 사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매울 수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조용히 잘도 돌아간다.  매질도 매질도 이런 매질이 있나?  그러나 이 시대의 학생들은 이런 매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순응하고 있다. 어른들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보다 더 무서운 폭력이 또 있을까?

청산하지 못한 잔재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겪었던 학교폭력의 뿌리를 나는 70여년 전 내 아버지의 학교 졸업사진에서 본다. 교복인지 군복인지를 구분하기 힘든 복장의 학생들이 도열해있는 한가운데, 콧수염을 기른 늙수그레한 군인이 땅바닥에 세운 긴 칼을 두손으로 잡은 채 앉아 있는 사진이다. 아마도 일본인 담임교사였던 모양이고, 그 담임의 권위는 칼에서 왔을 것이다. 일본제국주의는 물러갔으나 우리 아버지 세대는 안타깝게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군부가 일본 제국주의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에 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교 교정에 총검술 소리와 충성소리가 요란했고, 우리는 군복과 교복을 번갈아 입어가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 시절 교사의 권위는 몽둥이에서 나왔다.

 그 뒤 군부세력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으나 30년 군사독재가 심어놓은 문화적 잔재를 우리 세대는 청산치를 못했다. 군대식 서열의식과 위계질서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었고, "한번 선배면 영원한 선배"라는 말도 안되는 기득권을 놓치려 들지도 않았으며, 패거리문화를 청산할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무대뽀 삽질 정신은 오늘 이 시간,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계획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청산의 기회, 선거

 일찌감치 청산되었어야 할 그 문화가 직장과 대학, 고등학교를 넘어 중등, 초등학교로 까지 내려가고 있고, 경기도 어느 중학교 "막장 졸업식 뒷풀이"는 그런 문화현상의 하나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뿌리 깊은 문화의 문제인데 경찰이 나서 누구를 처벌하고, 또 누구를 탓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 맞다!

 이런 문화를 청산하고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바로 선거다! 100일 앞으로 또 선거가 다가온다. 선거가 다가오니 생각나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능력과는 어울리지 않은 완장을 찬 탓에 들뜬 나머지 마구잡이 칼장난을 즐기다가 엉뚱하게 국가기관의 장을 두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으면서도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재미있"다고 한 유인촌 장관... 2008년 10월, 문방위 국정감사장에서 사진기자들에게 내뱉은 유장관의 말이 이번 선거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XX 찍지 마! 찍지 마! 씨..... 성질 뻗쳐서 정말..."

 
 
▲ <한겨레> 2008년 10월 27일자 6면


[김진국 칼럼 31]
김진국 / 의사. 신경과 전문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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