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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 못다 한 수업

기사승인 2010.03.19  09: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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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주사> 이은정 / "사춘기 그 녀석, 그리고 배창환 선생님의 곡주사"


곡주사는 나의 ‘사춘기’와 같다.
솜털이 뽀송한 고등학생 1학년 때부터 그곳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는 시를 쓴답시고 ‘문학교류’를 핑계 삼아 남자애들과 곡주사에 들락거렸다.
물론! 막걸리도 마셨다. 주로 시문학동인회를 졸업한 남자선배들이 잘 알아먹지도 못할 데모이야기, 문학이야기를 쏟아냈고 우리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하고 무겁고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곡주사에서 술을 마시거나 민중가요를 꽥꽥 불러대는 것만으로도 마치 민주투사인 양 행세하는 건 참 보기 싫었다. 특히 시간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는데에는 질려버렸다.

그렇지만, 어느 학교에서 가을전시회가 끝나면 뒷풀이 장소는 꼭 곡주사였다.
안주를 시키지 않고도, 외상으로도 이모는 술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아예 냉장고에 들어있는 막걸리를 주전자에 따라 갖다 마셨다. 이모한테 시키기 미안해서. 뒷풀이를 가면 잔이나 수저나 반찬을 직접 차렸다. 곡주사에서는 꼭 그렇게 해야하는 줄 알았다.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도 곡주사였다. 얼굴이 유난히 뽀얗고 점잖아서 대학생인줄 알았다. 처음부터 그 애가 마음에 들었다. 변성기를 지난, 울리듯 낮은 녀석의 목소리는 가난하지만 기품있는 조선시대 선비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곡주사를 오가며 편지를 주고받았고, 곡주사 담벼락에 붙어있는 YMCA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 시쓰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연애할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사귄다’는 의미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 배창환 선생님
배창환 선생님은 유난히 곡주사를 좋아하셨다.
선생님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입한 시문학동인회에서 만났다. 볼우물을 보이며 환히 웃는 선생님은 당시 총각이었고 내 생애 처음 만난 시인이었다. 당연히 선생님은 곧 나의 우상이 되었다.

의식있는 국어 교사였던 선생님은 내가 입학한 바로 그 해에 중학교로 쫓겨났지만, 학교 몰래 우리 시문학동인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문학지도를 해주셨다.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시내 찻집에서 열리는 시낭송회나 문학강좌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는데, 행사가 끝나면 선생님은 곡주사에 가서 밥을 사주곤 하셨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언제나 배창환 선생님의 ‘수제자’ 또는 ‘애제자’임을 자처하고 다녔고, 나 역시 곡주사에 사람들을 끌고 다녔다. 데모가 잦았던 90년대에도 쫓고 쫓기는 시내집회가 끝나면 곡주사 막걸리로 목에 낀 최루탄을 씻어냈다.

 
 
▲ 2006년, 곡주사에서 열린 배창환 선생님의 '출판기념회'...사춘기 소녀에서 중년이 된 옛 제자들 / 사진.이은정

2006년, 선생님의 다섯 번째 시집[겨울 가야산]이 출간됐을 때, 선생님은 옛날 제자들과 함께 곡주사에서 출판기념회를 하고 싶어하셨고 그 임무를 내가 맡았다. 행사준비를 위해 간만에 들른 곡주사에서 선생님을 만날 때만 해도 이모가 환하게 반겨주어서 고향에 간 기분이었다.

그해 겨울, ‘배창환 5시집[겨울 가야산]출판기념회’는 매우 특별했다.
곡주사에서, 중년이 된 50여명의 옛날 제자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야했기 때문이다. 첫 부임지에서 첫 제자들과 아프게 헤어진 상처가 선생님께는 늘 죄의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선생님은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수업 준비를 해 오신 것이었다.

아픈 시대의 매듭, 젊은 날의 못다 한 사랑, 못다 한 말들, 못다 한 수업, 그리고 곡주사...
‘못다 한 나의 수업 : 나의 시와 노래와 삶에 대한 보고서’란 제목의 수업은 지금도 찡한 감동으로 내 가슴을 울린다.

그것이 곡주사의 마지막이었다.
‘성주식당’이란 간판을 두고도 언제나 ‘곡주사’였던 그 곳.
쓸쓸하고 외로울 때면 꼭 생각나는 거기. 이젠 옛 자취도, 이모도 없는 텅 빈 곡주사.
아, 그리운 곡주사... 이모...

 
 
 





이은정 / 평화뉴스 객원기자



<박창원의 인(人)> 첫 순서로 <곡주사 이모>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구 염매시장 대폿집 곡주사. 아픈 시절 그 이모와 애뜻한 사연 가지신 분들,
그리고 곡주사 외상장부에 이름 올리신 분들, 곡주사의 추억 간직한 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053-421-6151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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