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질곡의 역사 교정에 바로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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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35주기 대구 추모제. 여정남공원 제막...문정현 신부 "계파.분열" 질타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2010.4.10 경북대 사회과학대 앞)...유가족을 비롯해 30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2010.4.10 경북대 사회과학대 앞)...유가족을 비롯해 30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벚꽃 화사한 경북대 교정, 35년 전에도 피었을 벚꽃 아래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3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4월 9일 서울 추모제에 이어 10일 오후 경북대 사회과학대 앞에서 거행된 35주기 추모제. 이 곳에는 '여정남공원 제막식'도 함께 열렸다. 1974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8명의 희생자 가운데 4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며, 당시 사형된 여정남씨와 이 사건으로 옥고를 겪은 이재문.이재형씨를 포함한 3명이 경북대 출신이다.

"아직도 그 울분 삭일 수 없다"

추모제에는 인혁당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대학생을 포함해 3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희생자 유가족인 신동숙(도예종 부인).배수자(서도원 부인).이영교(하재완 부인).김진생(송상진 부인).이정숙(이수병 부인).김재원(이재문 부인).강순희(우홍선 부인).유승옥(김용원 부인)씨도 참석했다. 추모제는 분향.헌화와 추모사, 추모공연에 이어 여정남공원 제막식 순으로 진행됐다.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 및 여정남공원 제막식'(2010.4.10 경북대 사회과학대 앞)...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8년8개월을 복역한 강창덕(83) 고문의 추도사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 및 여정남공원 제막식'(2010.4.10 경북대 사회과학대 앞)...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8년8개월을 복역한 강창덕(83) 고문의 추도사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당시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한 강창덕(6.15대경본부 고문)씨는 추도사에서 "박정희는 눈에 가시 같던 우리를 인혁당으로 엮어 여덟 분을 살해했다"며 "아직도 그 울분을 삭일 수 없다"고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류근삼 이사장도 "4월의 대학살은 자연인 몇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며 "민족민주 지도부의 상실이며 참 민주주운동의 보루를 상실한 것"이라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이미를 새겼다.

"진실이 이렇게 무섭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재)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추모사에서 '진실의 힘'과 '유가족의 고통'을 일깨웠다.

문정현 신부는 "진실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국립대에 여정남 공원을 세우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오직 진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인혁당 유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너무 생생하다"며 "심지어 민청학련 가족들조차 인혁당 가족들을 꺼려했다"고 회고했다. 문 신부는 "그 때 유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여기 오는 휴게소에서 김밥을 먹다 눈물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 분열돼 지리멸렬"

그러나,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쓴소리도 쏟아냈다. 문 신부는 "70년대 80년대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계파니 뭐니 하며 분열돼 지리멸렬하고 있다"면서 "또 분열될 걸 조직은 왜 자꾸 만드느냐"고 비판했다. 또, 인혁당 희생자들을 가리키며 "이 죽음이 무슨 의미인가, 죽음이 같은 죽음이냐"면서 "모두 결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신부는 이같은 말과 함께, "지금 정부를 보면 정말 정부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나는 지금 회의에 빠져있다"고 했다.

추모제에 이어 '여정남공원' 제막식이 열렸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숨진 경북대 출신은 여정남.이재문.이재형씨를 비롯한 3명으로, 여정남씨는 당시 사형으로 숨졌고, 이재문씨는 사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1981년 감옥에서 숨졌다. 이재형씨는 이 사건으로 20년형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한 뒤 1982년 출소해 2004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 3명 모두 경북대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다. 때문에, '여정남공원'은 이들의 모교 사회과학대 앞에 세워졌다.

"35년 기다린 역사, 다시 희망으로"

여상화
여상화
여정남씨의 조카 여상화씨는 제막식에서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한다"면서 "35년을 기다린 역사, 다시 희망으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또, "여기 계신 분들은 우리 유가족의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라며 눈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여정남공원건립위원회 이현세 상임대표는 "늦었지만 선배님들이 독재 권력에 맞서 청춘을 바쳐 투쟁했던 복현언덕에 이 공원을 세운다"면서 "조그만 공원이지만 여기에서 사색하고 꿈을 키운 우리 후배들이 민주.통일의 시대를 열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현세 상임대표는 당시 인혁당 사건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건립위원회 이부영(전 국회의원) 고문은 "여정남 열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유일한 대학생으로 사형을 받았다"면서 "독재자 말고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던 청년"이라고 추모했다.

"질곡의 역사, 굳건히 떠받치는 손"

이날 제막식을 한 조형물은 '뫼비우스띠를 받치고 있는 손' 모양(크기 3m50cm)과 여정남.이재문.이재형씨의 얼굴을 담은 조형물(가로 3m50cm, 세로 1m50cm)로, 여정남공원은 이들 조형물을 비롯해 경북대 학생운동사와 민주화운동 관련 형상과 자료들을 콜라쥬 형식으로 구성한 200여평 규모로 오는 7월이나 8월쯤 완공할 예정이다. 

여정남공원에 세워진 조형물 '뫼비우스의 띠를 받치고 있는 손'(작가 이태호) / 사진.유지웅
여정남공원에 세워진 조형물 '뫼비우스의 띠를 받치고 있는 손'(작가 이태호) / 사진.유지웅

이태호 조각가는 '뫼비우스띠를 받치는 손' 모양의 조형물에 대해 "끝없는 질곡의 역사로 인해 힘없이 쓰러져가는 뫼비우스 띠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모양"이라며 "역사변혁과 민주.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여정남공원은 여정남 유가족이 낸 기부금 3억5천만원과 모금액 6천만원을 포함해 4억1천만원으로 세웠으며, 공원 건립 외에 남은 금액은 민주.통일운동의 역사 정리와 추모.계승사업에 쓸 예정이다.

여정남공원에 세워진 경북대 출신 이재문.여정남.이재형 열사의 형상(작가 정하수)
여정남공원에 세워진 경북대 출신 이재문.여정남.이재형 열사의 형상(작가 정하수)

"그래, 떠난 이들 속에서 우뚝 / 손 흘들며 늘 돌아볼 그대. / 이 언덕의 환한 봄 그대가 지폈으니, / 우리들 한데 모여 더 크게 지피네. / 그대 이름 만으로도 밝은, 봄 / 민생민주자주통일의 꽃이 여기서 피네"(이하석 시인 기념시 '그대 이름만으도 밝은, 봄' 중에서)

한편,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지난 1974년 중앙정보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구성해 국가전복을 꾀했다"고 발표한 뒤, 이듬 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인 4월 9일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국내외 법조계에서는 이를 '사법사상 암흑의 날', '사법살인'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이 사건으로 희생된 8명 가운데 도예종.서도원.송상진(영남대), 여정남(경북대)씨를 비롯한 4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들

이 사건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통해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증거조작, 공판조서 허위 작성, 진술조서 변조, 위법한 재판 등에 의해 조작됐다"고 밝힌데 이어, 2005년 12월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도 "수사지침에 따라 고문과 가혹행위가 자행됐다"며 '사건 조작'을 인정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2005년 12월 27일 '재심 개시'를 결정한 뒤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2년 만이다. 그리고, 2007년 8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인혁당 유족을 비롯해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희생자별로 20억-30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유가족을 비롯해 30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유지웅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유가족을 비롯해 30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유지웅

4.9인혁열사에 대한 헌화 / 사진.유지웅
4.9인혁열사에 대한 헌화 / 사진.유지웅

6.15대경본부 강창덕(83) 고문의 분향과 헌화
6.15대경본부 강창덕(83) 고문의 분향과 헌화

추모제 앞줄에 앉은 유가족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추모제 앞줄에 앉은 유가족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재)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 문정현 신부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재)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 문정현 신부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대학생 2명과 고등학생 4명에게 '여정남 장학생'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사진 가운데.오른쪽) 여정남공원건립위원회 이현세 상임고문과 오택진 사무처장. / 사진. 유지웅
대학생 2명과 고등학생 4명에게 '여정남 장학생'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사진 가운데.오른쪽) 여정남공원건립위원회 이현세 상임고문과 오택진 사무처장. / 사진. 유지웅

여정남공원 제막 / 사진.유지웅
여정남공원 제막 / 사진.유지웅

성광옥 퍼포머스팀의 '여정남공원 제막 퍼포먼스' / 사진.유지웅
성광옥 퍼포머스팀의 '여정남공원 제막 퍼포먼스' / 사진.유지웅

재즈밴드 '달과함께걷다'(옛 소리타래) 추모 공연...아리랑과 찔레꽃 등을 불렀다. / 사진. 유지웅
재즈밴드 '달과함께걷다'(옛 소리타래) 추모 공연...아리랑과 찔레꽃 등을 불렀다. / 사진. 유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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