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헬기에 폭죽까지, 한 평생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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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헬기 소음피해 대책위> 차태봉(70) 위원장
"소음에 신경안정제로 견뎌...주택 주변에 '헬리패드' 설치하면 목숨 걸고 투쟁할 것"


대구 '캠프워커' 미군기지 인근에 살며 60년간 헬기 소음으로 피해를 겪은 <미군기지 소음피해 대책위원회> 차태봉(70) 위원장. 20일 오후, 남구 대명5동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그는 얼마 전 미군기지 내에서 터트린 불꽃놀이용 폭죽파편과 그동안 적어온 일기장, 정부로부터 받은 답변서류 등을 직접 보여주며 1시간 반 동안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대구 캠프워커 미군기지는 지난 해 10월 27일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위원회 서명'을 통해 동편활주로와 헬기장 부지 반환 및 이전이 확정되었으나, 사업비용 확보문제로 인해 현재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밤낮 없는 헬기 소음...20년간 정부.미군에 민원

이웃집 옥상에서 미군부대 활주로와 헬기장을 설명하고 있는 차태봉(70)씨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이웃집 옥상에서 미군부대 활주로와 헬기장을 설명하고 있는 차태봉(70)씨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차 위원장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10살이 되던 해 이곳 대명5동으로 옮겨 60년 동안 살아왔다. 흘러간 세월의 흔적들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었다. 캠프워커 미군기지도 차씨가 이사 올 당시에 설립되었다. "캠프워커 이전에는 일본군 부대가 이 자리에 있었고, 6.25가 발발했을 당시 일본군이 떠난 이 자리에 캠프워커가 들어왔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이 캠프워커 미군기지 담벼락과 맞닿아 있어, 헬기 이.착륙 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으로 많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겪었다. 또 고도제한구역으로 개발이 되지 않아, 아직도 슬레이트 판넬이나 양철판을 지붕으로 쓰고 있는 집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를 비롯한 대책위 위원들이 20년간 정부와 미군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 해 지금은 헬기 이.착륙이 많이 줄어든 편. 그러나 지금도 헬기로 인해 피해를 계속 받고 있다. 차 위원장은 "평소에는 헬기 이.착륙이 거의 없지만, 훈련 때는 밤낮없이 헬기가 뜨고 진다"며 "그때마다 너무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타 지역으로 이전 된 치누크헬기 부대가 이곳 캠프워커에 주둔 했을 당시, "대형 헬기로 인한 소음과 진동이 지금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차씨는 “치누크헬기가 편대비행을 할 때면 마을 주택의 지붕이 날아가기도 하여, 지붕 조각에 맞아 머리가 찢어진 주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신경안정제 장기간 복용...탈장수술에 척추골절

미군 헬기와 폭죽 소음 피해를 겪은 차태봉(70)씨. 작년 1월 받은 탈장수술 때문에 바른 자세로 앉기 힘들다고 한다 /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미군 헬기와 폭죽 소음 피해를 겪은 차태봉(70)씨. 작년 1월 받은 탈장수술 때문에 바른 자세로 앉기 힘들다고 한다 /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헬기가 뜨고 지면 머리가 아프고, 신경안정제를 먹으면 속이 아파"
그는 작년 5월과 올해 1월 각각 탈장과 척추골절로 병원 신세를 졌다. 탈장수술로 인해 아직도 차씨는 바른 자세로 앉지 못한다.  장이 얇아지고 약해져 작년 5월에 탈장수술을 받았고, 병원에서는 신경안정제를 오랫동안 먹어서 소화기관이 약해졌다고 한다.

차 위원장은 헬기 소음과 진동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탓에 오랜 기간 동안 신경안정제를 복용해 왔다. 올해 1월. 간밤에 잠을 잔 후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해 병원을 찾은 차씨는 척추골절 판정을 받았다. 부딪히거나 넘어진 적이 없었던 차씨는 이번에도 의사로부터 "신경안정제를 장기간 복용 한 탓에 뼈에 칼슘이 부족해 골절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23살 때부터 운영해온 작은 슈퍼마켓(안동상회)도 이러한 건강악화로 인해 지난 6월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왜 하필 민가 주변에서"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후 마을로 날아온 폭죽 파편과 타고 남은 화약 잔여물 /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후 마을로 날아온 폭죽 파편과 타고 남은 화약 잔여물 /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얼마 전 미국 독립기념일(7.4)에는 미군부대 측에서 불꽃놀이를 해 터진 폭죽의 파편이 지붕위로 날아오고, 임산부가 폭죽소리에 놀라 병원에 가기도 했다. 또 이웃집 개가 유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직접 모아 놓은 폭죽 파편조각을 보여주었다. 폭죽 파편의 크기로 보아 큰 행사에 쓰이는 대형 폭죽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 위원장은 "미국의 기념일이라 폭죽놀이를 할 수도 있지만 왜 하필 민가 주변에서 폭죽을 터트려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느냐"며 "다음부터는 미군부대 안쪽 골프장.운동장 부지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밝혔다. 

미군기지 일부 반환에도 소음 피해 여지

차  위원장은 1990년 마을주민 30여명과 함께 ‘미군헬기 소음피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20여년 간 정부와 미군을 상대로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다. 제기한 민원서류와 해당 기관에서 받은 답변만 해도 라면박스 2개 분량이 될 정도.

미군부대 활주로...(사진 왼쪽) 차태봉씨 이웃집 옥상에서 바라 본 서편 활주로. 담벼락이 민가와 맞닿아 있다. 오른쪽 사진은 헬기장과 동편 활주로. 이곳에서 현재 헬기 이.착륙이 이루어진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미군부대 활주로...(사진 왼쪽) 차태봉씨 이웃집 옥상에서 바라 본 서편 활주로. 담벼락이 민가와 맞닿아 있다. 오른쪽 사진은 헬기장과 동편 활주로. 이곳에서 현재 헬기 이.착륙이 이루어진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대책위에서 민원을 제기 한 결과 미군부대 측에서 "저공비행 금지와 비행 횟수를 줄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 1996년에는 치누크 헬기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가장 큰 성과는 작년 미군부대 내 동편 활주로와 헬기장을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비행시설이 없어진다면 마을주민들은 더 이상 소음피해 없이 편안하게 살 수가 있다. 또 고도제한이 풀려 그동안 낙후되었던 마을이 개발 될 수도 있다. 

사령관.환자용 '헬리패드'..."주택 주변에는 절대 안돼"

그러나 한 가지 문제점이 아직도 남아있다. "헬기장과 비행시설을 이전하는 대신 사령관 용.환자수송용 헬리패드를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가로세로 50미터의 소규모 헬기 이.착륙 시설인 이 헬리패드의 위치 선정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다.  "헬리패드를 인근 마을 주택가 바로 옆 서편 활주로에 짓겠다는 말이 있다. 그럼 기지이전이 아무소용이 없다. 헬기 소음 피해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헬리패드로 인해 또다시 헬기소음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차 위원장을 비롯한 인근 마을주민들은 "헬리패드를 마을과 가까운 쪽이 아닌 미군기지 안쪽에 설치해야 더 이상 헬기소음피해가 없을 것"이라며 "만약 주택 주변에 설치가 된다면 또다시 목숨을 걸고 투쟁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무시당한 한 많은 인생...더 이상 피해 없기를"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기념 불꽃놀이 후 마을로 날아온 폭죽 파편과 타고 남은 화약 잔여물을 보여주는 차태봉씨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기념 불꽃놀이 후 마을로 날아온 폭죽 파편과 타고 남은 화약 잔여물을 보여주는 차태봉씨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차 위원장은 "미국은 한국의 우방국으로 우리를 도와주러 온 것은 사실"이라며 "고마운 것은 고마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사령관이 주민들을 부대로 초청해 고충을 듣고 명절 때 마다 주민들에게 선물을 준 일, 마을 주민들이 사령관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 일을 예로 들며, "유대관계가 원만해야 일이 잘 풀릴 수 있다"며 "서로 이해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흐름세월 한 세월. 피해의 희생양이 되어 일절 무시당한 채 한 많은 인생을 살다 가는 것 같다"며 "이제 헬리패드 문제만 잘 해결되어 더 이상 헬기소음피해 없이 편안하게 살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한편, 남구 출신의 한나라당 배영식 국회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구 캠프워커 H-805헬기장 및 A-3활주로 부지반환 착오 없이 추진" 공지(7.19)를 통해 "최근 논란이 된 헬리패드가 미군부대 안쪽 골프장 부지에 설치되기로 잠정 결정되어 헬기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우려사항이 해결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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