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대구서 이토 저격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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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식 / "황제에 대한 예...지금 예를 갖춰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100년 전 대구를 찾아왔던 순종, 당시 대구역과 북성로, 달성공원 등을 걸었던 ‘순종 어가길’에 대한 취재 중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이 아닌 대구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는 그보다 10개월 전인 1월 7일 이토히로부미가 순종과 함께 대구를 방문했을 당시 거사(擧事)를 꿈꿨지만 단 하나의 이유로 꿈을 접어야 했다.

안중근 의사는 대구 거사를 실행하지 않은 이유를 일본 검찰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검찰관] "올 봄 한국 황제 행차 때 이토 공이 호종(護從)했는데 그때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실행할 기회는 없었는가"
[안응칠] "그때 나는 함경도 갑산에서 이토를 죽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총기도 준비 안 됐고, 먼 길일뿐만 아니라 호위병도 많았으며, 또 한국 황제께서도 일행에 계셨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황제(순종)에 대한 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쓰러져가는 왕조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필자가 2010년 1월부터 4월까지 데일리안대구경북(www.dailian.co.kr/dg)에 연재한 '황제 대구를 걷다' 시리즈. 이 기사는 최근 타블로이드 판형 20쪽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필자가 2010년 1월부터 4월까지 데일리안대구경북(www.dailian.co.kr/dg)에 연재한 '황제 대구를 걷다' 시리즈. 이 기사는 최근 타블로이드 판형 20쪽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임금에게 예를 지킨다는 것은 참 쉬운 일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망국(亡國)이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조선과 대한제국은 쓰러져가는 왕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쓰러져가는 왕조에 예를 지키기보다 일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안위를 지키려 했던 사람은 바로 이 땅에서 아직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친일파들이 아닐까? 

광복을 맞은 민족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 놓았던 선열들에게 제대로 예를 지켜 왔을까?

친일파 청산은 1947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제헌국회에서 설치돼 활동을 시작했으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새로운 정부구성을 위해 친일파와 손잡을 수밖에 없었고,  친일파 청산은 실효성 없이 끝나 버린다. 실패였다.

이후 친일파들은 대한민국에서 지배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참 아쉽고, 가슴 아픈 역사의 반복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열들에 대한 예가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50년이 훨씬 지나 노무현 정권에 들어와서야 친일파 청산은 어느 정도 진행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너무 많은 세월 속에 묻혀 버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최근 대구시도 예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대구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 보존을 위해 시민의 혈세를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를 지키는 것과 전직 대통령으로 인해 아픈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예를 지켜주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 2010년 8월 3일자 12면(지역)
<한겨레> 2010년 8월 3일자 12면(지역)

1년 열 두 달 중에 가장 재미있는 달이 8월인 것 같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온다는 입추라는 절기도 있고, 최고의 더위를 자랑하는 말복도 함께 있으니 말이다. 우리 역사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다.

100년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것이 8월이었고, 35년 뒤 해방을 맞이한 것 역시 8월이다. 또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도 8월이다. 굴욕과 감격의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 대한민국 역사는 모두 8월에 이뤄진 것이다. 낮에는 매미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하고 밤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무더위를 깨워주는 8월이다. 한번쯤 뒤를 돌아보고 꼭 예를 갖춰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말에세이]
최용식 / 데일리안대구경북 기자


'황제 대구를 걷다' 시리즈 중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사
'황제 대구를 걷다' 시리즈 중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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