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분신', 그 후 구미 K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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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33명 농성 중...노조 "노동운동 말살 의도" / 사측 "먼저 농성 풀고 나와야"


김준일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장이 분신(10.30)한 지 사흘, 11월 2일 저녁 구미KEC 공장을 찾았다. 기자가 도착한 7시 20분. 기온은 영상 10도였으나 초겨울 같은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공장 정문 입구 공터에서는 200여명의 노조원과 농성자 가족이 모인 가운데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준일 지부장이 분신한 다음 날부터 서울 한강성심병원과 구미KEC 두 곳에서 매일 저녁 7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구미KEC 정문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2010.11.2)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구미KEC 정문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2010.11.2)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한 노조원은 이 자리에서 “생명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경찰들이 조금이라도 알고 존중했다면 분신은 없었을 것”이라며 “용기 있게 공장안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과 김 지부장을 위해 날씨가 춥더라도 다함께 투쟁하자”고 외쳤다.

촛불집회장 주변에 농성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공장 안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농성자 가족으로 보이는 2명에게 다가가 기자 신분을 밝히고 심경을 물었으나 "인터뷰는 안 하겠다. 죄송하다"며 자리를 피했다. 행여나 인터뷰 내용이 기사화 되면 농성자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날 7시부터 박유기 전국금속노동조합 위원장이 사측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박 의원장과 사측의 대화는 밤 10시쯤 기자가 현장을 떠날 때 까지 끝나지 않았다.

정문 농성장 옆에는 지난 10월 28일 경찰헬기의 저공비행으로 무너진 구미KEC 노조 천막이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정문 옆 주차장의 농성천막 중 ‘임산부 노동자 전용 천막’이 있었다. 천막이 무너질 당시 임산부 노동자 5명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후송된 일이 있은 뒤, 또 다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해 따로 준비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30일, 저공비행하며 경고방송 하던 경찰 헬기의 바람에 못견뎌 무너진 천막...임산부 4명을 비롯한 5명이 다쳐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지난 10월 30일, 저공비행하며 경고방송 하던 경찰 헬기의 바람에 못견뎌 무너진 천막...임산부 4명을 비롯한 5명이 다쳐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구미 KEC 정문 앞 주차장에 설치된 농성천막들...맨 앞 천막은 '임산부 전용 농성장'이라고 한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구미 KEC 정문 앞 주차장에 설치된 농성천막들...맨 앞 천막은 '임산부 전용 농성장'이라고 한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KEC 공장 정문은 컨테이너로 막혀 있었으며 바로 옆 쪽문 안쪽에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10여명이 지키고 서있었다. 기자가 근처로 다가가자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회사 안에 용역직원들과 경찰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묻자 "우리들은 모른다. 회사 측에 물어봐라"며 대답을 피했다.

노조원들이 묵고 있는 농성천막은 KEC 정문 옆 주차장에 위치해 있으며, 이 주차장을 비롯한 공장 전체를 펜스가 둘러싸고 있었다. 주차장 펜스 안쪽에 4~5명씩 짝지어 두 군데를 나눠 지키고 있는 전.의경 10여명의 모습도 보였다.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한 노조원은 "1200여명까지 늘었던 경찰병력이 오늘 낮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전날 야5당 정치인들의 방문을 앞두고 최소병력만 남겨둔 채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컨테이너로 가로막힌 공장 정문 앞에는 야5당 정치인들이 이틀째 철야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날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과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이정훈 국민참여당 경상북도당 청년위원장이 자리를 지켰다. 

정치인들의 철야농성...(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 국민참여당 이정훈 경북도당 청년위원장/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정치인들의 철야농성...(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 국민참여당 이정훈 경북도당 청년위원장/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는 이 자리에서 KEC 사태 해결에 대한 정당측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나라당 빼고 모두 생각이 같다"며 "노조와 사측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태가 원만히 해결 돼야한다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재자 역할을 하며 하루빨리 KEC사태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게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내부 농성자들의 소식을 알려왔다.
박 부대표는 "농성자들이 약 10일치의 식량을 준비해 들어갔는데, 처음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함께 들어가 식량이 빨리 떨어지게 됐다"며 "현재 내부에 물을 제외한 음식이 다 떨어져가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공장 가동문제 때문에 단전.단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으나, 공장 내부가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고, 생리현상을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사측는 음식물과 생필품 반입을 일체 막고 있다. 

구미KEC 사측 관계자들도 퇴근하지 않고 밖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회사 대표전화에서는 "업무시간이 끝났다"는 멘트만 흘러나왔으나 관련 부서의 전화는 연결이 됐다.

촛불문화제가 끝난 저녁 8시 노조원들이 추위를 피해 장작불 옆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7일 예정된 전국노동자대회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많았다. 곳곳에서 "아마 강경투쟁이 될 것 같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촛불문화제를 마친 노조원들이 장작불을 피워놓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떨어진 기온데 찬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촛불문화제를 마친 노조원들이 장작불을 피워놓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떨어진 기온데 찬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8시 30분쯤, 차광호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수석부지부장을 만나 김준일 지부장의 분신 이후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김준일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장은 10월 31일 회사 교섭대표와 면담을 가졌으나, 밤 9시 40분쯤 경찰이 김 지부장의 체포를 강행하자 이에 반발해 분신을 기도했다. 분신 직후 김 지부장은 구미 차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고 경찰에 의해 대구 푸른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발로 화상전문병원인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차 수석부지부장은 "어제 김 지부장이 중환자실에서 화상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며 "목 부위의 화상이 가장 심하고 양손 중에는 오른손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분신을 하면 폐로 화기가 들어가 위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김 지부장도 연기가 목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어 계속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리의 맘 이루어질 수 있도록"...구미KEC 정문 옆 고객지원센터 벽에 붙어있는 메시지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우리의 맘 이루어질 수 있도록"...구미KEC 정문 옆 고객지원센터 벽에 붙어있는 메시지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구미KEC 노조는 임.단.협 협상에서 사측과 '타임오프제'와 '회사영업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  6월 21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후 6월 30일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7월부터 9월 사이 노조원 108명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 노사는 10월 13일부터 20일까지 4차례 실무교섭을 벌였으나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고, 10월 21일 노조원 200여명이 공장을 점거해 농성에 들어갔다. 노조원들이 조금씩 농성을 풀고 나와 공장 안에 90여명이 남아있었으나, 11월 1일 54명이 대거 빠져나와 현재 33명만이 남은 상태다.

차 수석부지장은 노조원들이 농성을 풀고 나온 경위에 대해 "어제 오전 홍영표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김영대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등 야5당 대표가 현장조사를 위해 사측과의 면담과 농성장 방문을 요청했다"며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사측 관계자와 함께 점거중인 농성장 내부로 들어가 노동자들을 설득해 54명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은 33명은 투쟁승리를 이끌기 위해 나오기를 거부하고 계속 농성 중"이라며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노조 "노동운동 말살, 의용.무노조 배경"

구미 KEC 정문 펜스 안쪽에서 방패를 딛고 서 있는 전의경...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구미 KEC 정문 펜스 안쪽에서 방패를 딛고 서 있는 전의경...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노사간 타결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민주노동운동을 탄압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차 수석지부장은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요구한 징계.고소 취하 건을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단순 피해보상 문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노동운동에 족쇄를 채우려 하는 것"이라며 "민주노동운동을 말살시키고 의용노조, 또는 무노조로 만들려고 하는 이면의 배경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KEC 근로자의 60% 이상이 여성"이라며 "만약 노조가 없어지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면 이 분들이 살아남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 "노동자와 회사가 서로 살기위해선 노동자의 권리가 최소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측 "자의적 해석일 뿐, 먼저 농성 풀고 나와야"

그러나, 사측의 이덕영 관리부장은 "노동탄압의 의도가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증거가 없는 자의적 해석"이라며 "1000여명의 사원이 있는 회사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규율과 질서가 필요하고, 지금 상황을 덮어놓고 간다면 앞으로 회사의 운영이 힘들어 지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또 "협상은 서로 평온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대화가 이뤄져야 하는 것인 만큼, 노동자들이 농성을 풀고 공장 밖으로 나온 다음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측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정치인은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
김수민 구미시의원은 "구미시도 빠른 시일 안에 교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현재 시에서 중재단 구성 논의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1월 10일 시의정질문에서 그동안 사태해결을 위해 구미시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질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인들의 천막농성장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정치인들의 천막농성장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밤 10시,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농성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공장 일대는 적막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공단의 근로자들도 대부분 퇴근해 구미공단 전체가 조용했다.

한편, 차광호 수석부지부장은 "7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해 전태일 열사 40주년을 추모하고, KEC 사태와 G2O 정상회담에 대한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서울권역과 영남권역으로 이원화 시켜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7일까지 사태가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금속노조 내부에서 총파업선포식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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