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님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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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칼럼] "야만의 시대를 이성의 눈으로 비추었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


인간의 마음에 고통을 잊는 작용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잊지는 못하지만, 그 경험에 대한 느낌을 언제까지나 실재처럼 간직하지는 못한다. 고통을 원래의 생생함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사소한 기억들을 지워버리지 못하고 짐처럼 떠안고 살아간다면 그 삶은 정말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실’을 잊지 못한다.

상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중요한 장소나 물건을 잃었을 경우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 새로운 세계에 다시 적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재란 더 큰 현존이다. 가족들 중에 우리로부터 중요한 사람이 없어진 빈 틈, 혹은 우리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사라진 빈 틈은 그 전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때문에 사별이나 이혼, 직장과 가족을 잃는 것과 같은 주요한 상실은 지독히 쓰리고 아픈 경험이다. 특히 이런 일은 잔인하리마치 갑작스럽게 일어남으로써 세계에 대한 믿음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와 같은 다른 것들도 상실하게 한다.

리영희 선생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리영희 선생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우리는 지난 새벽에 이 시대 '사상의 은사'를 상실하고 말았다. 우리 시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었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5일 오전 0시 30분께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81세로 눈을 감았다.

그는 평생을 시대의 야만과 반지성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의 무기는 ‘추상적 관념’이 아닌 ‘과학적 사실’이었고, ‘사변적 이론’이 아닌 ‘구체적 실천’이었다.

그의 글쓰기는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였으며, 오로지 진실과 균형의 날개로 이념적 도그마에 저항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평생을 언론과 민주주의, 후학 양성에 바친 진보적 사상가이자 언론학자로 남을 수 있었다.


5·16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글을 외국 언론에 기고했던 1961년부터 그의 야만과의 투쟁은 시작되었다. 1964년에는 유엔의 남북한 동시 초청을 기사화했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고, 1972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부임했지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각각 4년간 해직되는 고통을 겪었다. 기자 생활 때 2번의 해직까지 합치면 4번의 해직이라는 아픔을 경험한다. 1977년 저서 『8억인과의 대화』에서 중국공산당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었고, 1989년에는 한겨레신문의 방북 취재를 기획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또다시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해직과 구속이 반복된 고통스러운 삶은 결국 2000년 뇌졸중으로 그를 쓰러트렸다. 이후 저술 활동은 자제했지만 사회참여와 진보적 발언은 계속됐다.

『전환시대의 논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우상과 이성』 『베트남 전쟁』 『자유인ㆍ자유인』과 같은 저서는 70∼80년대 대학을 다닌 대학생들이 필독서로 여겼던 자유와 비판의 저수통이었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그의 저서를 읽고 야만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특히 1974년 출간한 대표작 『전환시대의 논리』는 반공주의의 철가면을 벗겨 내고 중국, 일본, 미국, 베트남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무장 해제시켰다. 붉은 공산주의 국가로만 치부되던 중국의 혁명사를 역사적 사실과 논리에 따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베트남전은 제국주의와 반민중적 권력에 맞선 베트남 인민의 투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당시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낱낱이 고발했다.

한국의 현대사를 생생히 지켜보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후세들에게 물려주려 했던 그는 떠났지만 숱한 저서와 강연을 통해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글을 쓰는 그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글쓰기는 오직 진실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했고 그것에서 그쳤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했고,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시대의 나침반, 故 리영희 선생" / 미디어오늘 만평(2010.12.5)
"시대의 나침반, 故 리영희 선생" / 미디어오늘 만평(2010.12.5)

선생은 우상을 파괴하는 이성의 행위가 고통에서 피는 꽃임을 자신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신조로 검소한 생활(simple life)과 높은 이념적 사고(high thinking)를 말했다. 세속적 자기방기를 거부하고 검소하게 생활할 때에만 사유의 도덕적·논리적 수준을 높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삶에 대한 특별한 자세와 사유방식은 ‘자유’와 ‘책임’이라는 근본이념에서 연유한다.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선생은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신조로서의 삶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바로 그것이 형벌이었다. 이성이나 지성은커녕 상식조차 범죄로 규정됐던 대한민국에서랴.” 이런 불법적 대한민국에서 그의 정신은 계몽적 비판가의 모습으로 최후의 순간까지도 쉴 수가 없었다.

2006년 인터뷰 때 선생은 “미국이 장차 동북아에서 강대해지는 중국과, 과거 소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전쟁을 하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으로선 그 때문에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필요하고 남한은 거기에 ‘0.5 군사국가’로 덧붙이려 한다. 특히 강대국으로 행세했던 일본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지극히 강하다. 지금의 이런 동북아 상황은 1930년대 초와 아주 흡사하다”고 말했다. 만일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의 엄청난 적자로 쏟아낸 달러 가치 하락을 한반도 전쟁을 통해 달러의 가치 상승이라는 안전자산 선호로 흑자의 꿈을 선택한다면, 만일 일본이 한국의 산업시설이 초토화됨에 따라, 한국과의 경쟁으로 어려움에 빠진 수출 산업을 부흥시켜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경제를 일시에 회복시키는 이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반도에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를 전쟁의 화마로 이끌고 있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의 한반도 정세인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이성의 눈으로 비추었던 사상의 은사를 떠나보냈다. 선생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고통을 지탱했던 것은 그만이 가진 자유였고 타인에 대한 책임이었다. 비록 그는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우리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삶이 상실이며, 사랑도 상실이고,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으려는 갈망도 상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사실을 용기 있게 인정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땀과 고통을 치르며 쌓은 것을 하루아침에 상실하는 일은 삶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14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페트라르카의 말이다. 리영희 선생님이 남긴 모든 흔적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자유와 책임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야할 시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재성 칼럼 23]
이재성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실장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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