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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할머니, 새가 되어 하늘로 떠나다

기사승인 2010.12.06  10: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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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83) 할머니 별세..."내가 살아 일본 사죄 꼭 봐야 하는데.."


'꽃 할머니'로 불리던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83) 할머니가 5일 세상을 떠났다.

심달연 할머니는 2010년 12월 5일 저녁 7시 50분 간암으로 치료받던 대구 곽병원에서 운명했다고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밝혔다. 심 할머니는 지난 6월부터 간암으로 입원해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은 할머니의 조카와 조카손자,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켰다.

할머니의 빈소는 곽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식은 12월 7일 오전 10시 이 장례식장에서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장'으로 거행된다. 또, 할머니의 유해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화장을 한 뒤 영천 은해사의 수림장에 안장된다. 이 곳에는 올 1월 먼저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악 할머니가 잠들어 있다.

 
 
▲ 심달연 할머니... / 사진.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홈페이지

지난 1927년 7월 5일 경북 칠곡군에서 태어난 심 할머니는 열두세 살 무렵 언니와 함께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 일본군에 잡혀 대만의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모진 고통을 겪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심하게 앓고 있던 중 할머니의 여동생이 말도 제대로 못하던 언니를 알아보고 집으로 데려와 간호했다. 할머니는 이후에도 '위안부' 피해의 후유증으로 자궁경부암을 비롯해 여러 질환을 앓았고 끝내 간암으로 한 많은 삶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참석한 심달연 할머니... / 사진 제공.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심 할머니는 그러나, 자신의 빼앗긴 명예와 인권을 되찾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의 비도덕성을 알려내기 위해 제 61차 유엔인권위원회의 본회의와 국제 NGP포럼에서 증언했고,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에게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국내외 20만여명의 서명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지난 11월 25일에는 '일본군 위안부문제 입법해결'을 촉구하는 우리 국민 42만명의 서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서명지는 일본 정부에 전해졌고, 이 서명운동은 심 할머니의 마지막 활동으로 남게 됐다.

 
 
▲ 유엔인권위원회 본회의에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김기금' 문제를 증언하는 심달연 할머니...(2005.스위스) / 사진 제공.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심 할머니는 이런 활동 틈틈이 원예치료수업을 받으면서 "꽃을 사랑하는 심달연", "꽃 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불리시면서 플로리스트로도 활동했다. 4차례나  원예작품전시회를 열었다. 2007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LA세계대회 기간 중에 미국UCLA대학에서 전시회를 열어 전 세계 활동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원예작품집으로 '할매,사랑에 빠지다' 두 권도 남겼다.

특히, 심 할머니는 2010년 6월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시리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꽃 할머니』(권윤덕 작,돌베개)의 실제 주인공이다. 권윤덕 작가의 요청으로 헌정식『다시는 세상에 이런 일 없어야지』를 열기도 했는데, 인세의 일부를 대구지역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기금으로 후원했으며 그 후원은 할머니가 떠난 이후에도 계속된다.

"다시는 전쟁으로 나 같은 고통 없도록..."

심 할머니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간난 아기 때부터 키워 온 조카 손자와 함께 대구 산격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할머니는 모든 꽃을 좋아하셔서 집 곳곳에 꽃이 많았다"며 "할머니가 웃으시면 꽃처럼 예쁘고 너무 귀여우셨다"고 시민모임 이인순 사무국장은 기억했다.

또, "남에게 어떤 나쁜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도와주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라며 "이웃 할머니의 빨래도 해주시고 음식도 나눠드시며 언제나 밝게 생활하셨다"고 전했다. 이 국장은 "할머니에게는 너무 고통스런 기억일텐데, 우리 회원이나 학생들이 찾아가면 언제나 환하게 맞아주시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면서 "여러분이 잘해야지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늘 당부했다"고 할머니를 추모했다.

심 할머니는 생전에 "다시는 전쟁으로 나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 줄 것"을 항상 당부하셨다고 한다. 또, 병상에서는  "남들같이 살아보지도 못하고...너무 억울하다. 내가 살아 일본정부가 사죄하는 것을 꼭 봐야하는데...하시며 삶의 애착을 보였다"고 시민모임은 전했다.

심 할머니의 별세로 현재 위안부 할머니는 대구 5명과 경북 4명을 비롯해 전국 81명으로 줄었다. 대구경북에서는 지난 1월 김순악 할머니를 비롯해 2000년 이후 7명이 세상을 떠났다.

 
 
▲ 심달연 할머니 원예작품(2007.4)

심 할머니는 2007년 꽃으로 수놓은 작품에 "내가 새가 된다면 날아가고 싶다 천리 만리"라는 글을 남겼다. "너무 억울하다"는 말처럼 생전에 끝내 '일본 사죄'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꽃 할머니'의 아픔이 먼 하늘에서라도 훌훌 씻기고 평화를 바라는 그 소망이 천리 만리 울려퍼지길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심달연 할머니 원예작품...(위) 전쟁, 없어져야 한다2 / (아래) 나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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