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댐, 답을 찾으려는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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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화 / 『인문학을 만나다』(김재현.정승원 씀 | 한티재 | 2010.12)


대구에서 살게 된 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대구’에 대해서 가졌던 막연하고도 강력한 편견들은 ‘대구의 비밀 혹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흥미진진한 재미로 곧 변환되었던 것 같다. 이제와 누군가 대구에 대해 무얼 알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존심이 높은 대구 사람들은 퍽 대구를 즐기며 살아간다고 대답할 것 같다. 자랑하듯이 ‘한 번도 대구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강조하는 이들을 여럿 만날 때마다, 답답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대구를 어떻게 색칠해나갈까’ 라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신기해하곤 했었다.      

지난해 12월 도서출판 한티재에서 펴낸 『인문학을 만나다』는 그렇게 대구에서 즐겁게 살아온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대구경북지역의 자생적 인문학커뮤니티의 운영자들을 직접 만나 나눈 대화의 기록으로서 이러한 만남과 인터뷰를 책으로 엮는 기획을 한 이들은 김재현, 정승원이라는 젊은 인문학연구자들이다. 
 

『인문학을 만나다』속에는 짧게는 9년 길게는 95년이 된 총 8개의 인문학커뮤니티들이 소개되어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자생적 인문학 커뮤니티를 찾아서...
대구경북지역의 자생적 인문학 커뮤니티를 찾아서...

화이트헤드, 들뢰즈, 프로이드, 라캉 등 서구 지성사에 깊고 넓은 물길을 낸 학자들의 세계에 탐닉한 사람들, 세상 이치를 밝혀보고자 한문문학을 통해 옛 선인들과 쉼없이 대화해온 사람들, 연극비평으로 대구 연극계의 지형을 함께 그려온 사람들, 인문학적인 성서읽기를 통해 세계 속에 살아 숨쉬는 성서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들, 위대한 저서를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12년간의 긴 여정을 기꺼운 마음으로 나선 사람들.  

이렇게 지속되어 온 인문학커뮤니티들의 내공에 놀라는 기획자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운영자들은 매우 담담하게 모임을 소개하고 있다. 모든 모임이 각자에게 각별한 공동체임에 틀림없을 테지만, 그것이 세상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저 마음이 동하여 한 자리에 모여든 이들이 시간을 잊은 채 읽고 말하고 듣고 쓰는 일에 맛 들이고 또한 지속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덮고 기억하게 되는 것도 이들 인문학커뮤니티들의 독창성이나 연구 성과보다는 그들의 ‘답을 찾으려는 열망’ 혹은 ‘공부하는 자세’ 그것이었다.    

놀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낄 만큼 공부강박에 시달리는 청소년, 대학생들에게 ‘시험’이 끝나도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당혹해하곤 한다. 이미 ‘공부’란 그런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직을 위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학위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공부. 그런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지속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부. 나는 얼마나 하고 있을까? 어두웠던 것이 밝아지는 기쁨에 몸을 떠는 지적 열정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가? 하고 읽는 내내 자문해야 했다. 

‘자생적’이기도 하고 ‘지속적’이기도 한 이들 모임들. 무엇이 이토록 끈질기게 서로를 붙들어 매었을까? 책을 다 읽어도 사실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바 없는 깊은 맛과 색깔의 세계. 그리고 다만 그 세계로 향한 ‘문’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문이 바로 대구사람들이라면 쉽게 두드려볼 수 있는 가까이에 있다고 귀띔해주는. 아마 그 문 안 쪽은 이미 ‘대구’인지 ‘서울’인지의 구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공간일테지만 말이다.    

자신의 세계관이 확장되면 보다 넓은 집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인문학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꿈틀댐, 의욕, 살아있음에 대한 환희와 기쁨을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증가하고 키워가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과정사상연구소 이태호)
 

 

<인문학을 만나다> 목차 중 일부
<인문학을 만나다> 목차 중 일부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8개의 인문학커뮤니티들이 공히 맞닥뜨리고 있는 인문지식인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탐구는 부족해 보인다.

돈줄을 쥐고선 지식인들의 연구 활동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학술진흥재단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날로 연구의 기능을 잃어가는 대학과는 어떻게 관계 맺어 왔는지, 인문학전공자들과 비전공자들 간의 소통과 공유의 가능성과 필요성은 무엇인지, 각자 공부모임이 갖고자 하는 실천의 영역과 에너지는 무엇인지, 유행하는 서구사상을 재빠르게 쫓아가는 것 이상의 주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 학문공동체가 대구사회의 저변으로서 뿌리를 내려나감에 있어 더 깊이 다뤄졌으면 하는 질문들이 얼핏 설핏 스쳐만 지나갔다. 


개별적인 탐방 보고만으로는 다 드러내기 어려운 주제일수도 있다. 기쁘게도 기획자들의 탐방후기 속에는 그러한 문제의식과 더욱 다양한 과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인문학커뮤니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어 두 청년의 다음 기획도 기대하게 된다. 

내가 짧게나마 살아본 대구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대구는 대구만큼의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10년 넘게 살았던 서울과 비교해본다면 대구는 쉽게 무엇인가 시작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인가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런 마음을 전하면, 누군가 그것을 또 재미있어 하는 사람을 소개해준다. 그렇게 뜻을 확인한 몇 명의 만남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나눈 천진한 눈빛이 끈끈한 네트워크가 되면, 그것은 곧 그전에는 없던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시공간이 공존하며 대구를 그득히 채운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지 몰라! 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곧바로 대구의 살아있는 문화가 된다.

서울과 대구를 비교하며 굳이 ‘대구사람들도 이 정도 공부를 해’ 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그런 것에 진지하게 관심 갖는 이를 나는 서울에서도 대구에서도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대구는 서울이 저렇게 모든 상징을 독차지 해버리기 전부터, 그리고 사람들이 밥벌이 빼고는 다 필요 없다고 내팽개치기 전부터 묵묵히 자신과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내고자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사람들이 자존심을 갖고 지켜온 곳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문우관창건기를 인용하며 참으로 얕고 개인적인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 대구부는 한 도의 본보기가 되는 으뜸가는 지역이나, 낙육재(樂育齋)와 양사재(養士齋)는 지금 폐허가 되어서 선비들이 갈 곳을 잃어 돌아가 의지할 장소가 없는데 오직 이 문우관만이 높이 서서 혼미한 길에 방향을 알리는 표준이 되었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옛 말에 이르기를, “이루기는 쉽지만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였으니, 후일에 이 문우관을 지키는 이가 부질없이 파당을 이루어 공연히 아무 일 없는 곳에 일을 만들어 스스로 서로 어긋나게 되면 어려운 것이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마음을 합하고 의견을 모아 한결같이 예전의 규약을 따라 후학을 권장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어려운 것이 도리어 쉽게 되어, 장차 몇 천백년까지라도 지키고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로써 경계하고 기다리겠다. (문우관창건기文友觀創建記, 채헌식 1918년)

 

 
 





[책 속의 길] ①
황정화 / 청소년인문학파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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