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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는 믿음과 실천으로는...

기사승인 2011.03.18  10: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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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숙 /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미쳐 날뛰는 세상에, 미치지 않는 믿음과 실천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
                   
 
 
▲ 이명희 저| 열림원 | 2007.03.28
마흔이 넘은 어느 날,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벗어 던지고 닥치는 대로 저질러 보고 싶었던 그런 날이었다. 정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 미쳐버리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억누르던 그 때 이 책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제목에 꽂혀서 샀고 신나게 읽으면서 무지하게 즐거웠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쳐있는 그녀’들을 만나면서 나누었던 대화들을 정리해 놓은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미쳐있는 그녀’들에게 반했었다.

미치고 싶었던 내 욕구가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면서 동시에 치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이후로 한 동안은 미친 듯이 살아보고자 노력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쉽지 않다.


 나름 민주적이셨던 아버지는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력, 긍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다만 예의와 규범, 사회적 가치와 상식이라는 사회적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이로운지를 몸소 강조하심으로써 어느 순간 지나치게 과잉사회화된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셨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랬다. 초등학교 때 금지된 롤러스케이트장, 중학교 때 금지된 빵집, 고등학교 때 금지된 음악다방 등등.. 금지된 곳은 가본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왜?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세월을 돌릴 수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도 여전히 시도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은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두려운가? 두려움은 미숙한 준비에서 오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기꺼이 미친년이 되려면 완벽한 준비로 부딪치는 상황을 즐겨야 한다"(p41)

 부당한 일에 맞서 싸워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어쩌면 대충대충 세상을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어쩌면 그런 일들을 통해 상처 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거기에 덧붙여 아직도 착한 딸, 며느리, 엄마, 동료, 선생이 되고 싶어 하는 나를 볼 때면 그놈의 ‘착한 콤플렉스’는 여전히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 인생을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보다 우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인지 더 이를 악물기도 하고 끝까지 가보자고 다짐해보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끝없는 싸움이 나를 세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쁜 여자로 사는 법-착한 딸 신드롬에서 벗어나기』(만프레드 셰르만, 베아테르 셰르만 게르슈테터 지음, 2007)는 착한 딸이 되려는 강박증에 빠진 아이들이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선택보다 다른 사람의 선택과 판단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을테지만 아직도 많은 여자들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존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해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자녀양육과 교육을 위해 시간제 노동을 선택하고 취업과 성공을 위해 성형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렇게 답한다.

"근본적인 여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 여자는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다. 둘 간의 유일한 차이는 생명을 생산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 여성의 역할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내가 누구인가가 문제일 뿐이다"(p77)

 내 딸아이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땅이 되기를 고대한다. ‘여자라서’라는 이유로 가진 뜻이 꺾이지 않기를 소망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희망한다. 그런고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다. 당신이 없으면 이 세상도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이다. 당신의 눈과 귀로 느끼고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라. 당신의 몸과 뇌가 느끼고 지각하여 옳다고 생각한다면, 몸이 부서져도 나가보는 거다. 인생, 별것 있는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래서 마침내 행복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말하고 그리고 실천하는 것이다. 행동하라... 미쳐 날뛰는 세상에, 미치지 않는 믿음과 실천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p138-139)

 그리고 언젠간 혹은 나중에 또는 다음에가 아니라
"바로 지금을 360도 미쳐 살아라"(p220)여야만 한다.

 아직도 나는 싸움에서 지는 날이 이기는 날 보다 많고, 두려움에 싸워 보지도 못하고 또 간혹 싸우기도 전에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지만 여전히 진화 중이다. 
 
 
 





[책 속의 길] ⑨
정혜숙 /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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