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기어가는 형상이라는 사행천 내성천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경북 영주시 수도리 무섬마을과 바로 그 상류에 들어서고 있는 영주댐 공사현장을 지난 3월 초 두차례에 걸쳐 둘러보고 왔습니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착공되고 있는 영주댐 공사로 인해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금모래의 강 내성천이 지금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무모한 사업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사업인지를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현장 소식을 전해 봅니다. - 필자
사행천 내성천과 무섬마을
뱀이 기어가는 형상이라는 사행천(蛇行川). 그 사행천의 전형을 보여주는 강이 바로 내성천이다. 사행천인 내성천은 뱀과 같이 구불구불 기어가면서 봉화와 영주, 예천 일대 곳곳에 금모래밭을 펼쳐놓는다.
그 내성천의 진면목을 대면해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수도리 무섬마을이다. 그 유명한 회룡포와 같이 물길이 거의 360도 휘돌아가는 이 무섬마을의 강바닥에 낮게 드리운 외나무다리에 서보면 내성천은 한마디로 자연이 내린 축복이다.
수도리(水島里), 즉 물 위의 섬 마을이라 하여 무섬마을(물섬마을)이 했다. 내성천이 마을의 3면을 감싸며 휘돌아가고 있는 이 무섬마을에 들어서면 절로 시심(詩心)이 우러난다. 특히 무섬마을의 명물중의 명물인 외나무다리에서 서서 금모래의 강 내성천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가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래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처가인 이곳 무섬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별리’(別離)라는 명시를 남긴 것이리라.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 나즉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 /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 / 말 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 방울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님아
무섬마을의 명물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은 강과 마을이 서로 조화를 이룬 강마을 문화의 전형을 느껴볼 수 있는 강마을 중의 강마을이다. 하회마을에 비해서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이 무섬마을은 그래서 내성천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다.
오히려 마을은 강의 한 부속풍경으로 자리 잡을 뿐 무섬마을의 주인공은 내성천이고, 그 위에 놓인 통나무를 잘라 만든 외나무다릿길이다. 높이 60센티에 폭 30센티인 강 위에 놓인 이 구불구불한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 정도로 이곳 무섬마을의 명물이다.
잠시 이 마을의 자랑인 외나무다리의 이력을 살펴보자. 건교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 이 외나무다릿길에 이력은 다음과 같다.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고가(古家)가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로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의 3면을 감싸듯 흐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섬(島)처럼 떠 있는 육지 속 섬마을이다. 30년 전만 해도 마을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내성천을 건너 뭍의 밭으로 일하러 갔으며,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았다.
현재의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 간 마을과 뭍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로 길이는 약 150m이다. 1979년 현대적 교량(무섬교)이 설치되면서 사라지게 된 이 다리는 마을 주민과 출향민들이 힘을 모아 예전 모습으로 재현시켜 놓았다”
이 아름다운 외나무다릿길을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영혼을 정화시키는 듯 졸졸졸 흐르는 내성천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내성천과의 완전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외나무다릿길이다.
그런데 저 멀리 이 멋진 길을 대신해 놓인 콘크리트다리인 무섬교가 눈에 들어온다. 외나무다리에서 보는 무섬교는 너무 낯설고도 이질적으로 보인다. 두 다리 중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란 물음에 문명인의 역설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나는 어느 길을 택할까? 스스로에 던지게 되는 화두다.
무섬마을의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4대강사업
그런데 이 무섬마을의 아름다움도 그 빛깔을 잃게 생겼다. 이 아름다운 마을의 주된 풍광을 이루던 이 금모래강의 금빛이 탈색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 무섬마을 바로 위에 들어서는 엄청난 규모의 영주댐 공사 때문에 말이다.
4대강 토목사업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이 영주댐이 완공이 되면 이 무섬마을에 금빛을 더해주던 저 금모래가 더이상 공급이 되지 않고, 물길 또한 줄어들어 이곳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른다.
낙동강 본류의 과도한 준설과 이미 시작된 영주댐 공사로 그 상실의 조짐은 벌써부터 시작된다. 저 내성천 모래밭 위로 드러난 무섬교의 다릿발은 마치 대재앙의 징조처럼 보인다. 저 여주 신진교의 붕괴를 초래한 ‘역행침식’(하류의 과도한 준설로 유속이 빨라져 모래가 유실되고, 그로 인해 교각 등이 붕괴되는 현상으로 자연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믿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이란 현상이 이곳 내성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일은 8000억원이 넘게 들어가는 이 영주댐의 용도가 오리무중이란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낙동강의 들어서는 8개 대형댐으로 물이 남아돌게 되는데, 식수원 영주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상식적인 해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 무모한 사업을 위해 내성천의 저 아름다운 물길을 막고, 400년 된 안동장씨 집성촌인 금강마을을 수장시키고, 주민들을 내쫓고, 수도리 무섬마을의 아름다움을 앗아가게 생겼다. 그 어떤 자산과도 맞바꿀 수 없는 이 시적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아픈 시대에 영주댐이 놓여있고, 그 위에 4대강사업이 놓여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업이란 말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기고] 정수근 /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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