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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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저 | 용경식 역 | 문학동네 | 2003)



자신을 열 살이라 알고 있는 열네 살 소년 모모가 있다. 그러나 모모는 결코 사랑스러운 아이는 아니다. 모모는 부모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

모모는 프랑스 슬럼가에서 버린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산다.
‘빌어먹을 인생’으로 태어난 모모는 다른 하류인생들처럼 담배를 피우고 도둑질을 하면서 세상을 원망하지만,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행복’을 얻기 위해 마약을 하진 않는다. 행복은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헛된 꿈을 꾸면 안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만큼 모모는 영악한 아이였다.
 
에밀 아자르 저 | 용경식 역 | 문학동네 | 2003
에밀 아자르 저 | 용경식 역 | 문학동네 | 2003
지지리 복도 없고 운도 없는 주인공의 피눈물 나는 성장소설은 흔하디 흔하다. 그러나 소설 「자기 앞의 생」이 빛나는 건, 바로 진흙구덩이와 같은 삶 속에서 연꽃처럼 고고히 피어나는 사랑이야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랑’아닌 다른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늙고 병든 유태인 할머니와 ‘뭘 하기에 너무 어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열네 살 모모의 사랑을.

미래를 꿈꿀 수도, 그렇다고 진흙탕 속에 뒹굴 수도 없었던 모모는 누구나 그렇듯이 먼 세계로 떠나고 싶다. 한번은 하밀 할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낙원 ‘니스’를 찾아 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로자 아줌마 곁에 있기 위해서.


모모는 그 어두운 나날동안 스스로에게 얼마나 다그쳐 물었을 것인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울먹이며 다짐하듯이 몇 번이나. 그렇게 순결한 영혼은 로자 아줌마에 대한 사랑을 통해 스스로 구원받는다. 이제 모모는 철부지가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심장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아픔이 저절로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승화된 느낌에 머릿속이 게운해진다. 그건 ‘생에 대한 의욕’이 주는 충만감 때문이다. 사는 게 힘들 때 외로울 때 생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책, 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한마디로 그런 책이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프랑스 소설가 로댕 가리(1914-80) / 사진 출처. 서울신문 2010.6.26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프랑스 소설가 로댕 가리(1914-80) / 사진 출처. 서울신문 2010.6.26
이 책을 이야기할 때 작가 로맹 가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1975년에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 없는 작가의 작품으로 발표되어 프랑스 콩쿠르상을 수상할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사실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가 ‘로맹 가리’의 다른 필명이었다. 로맹 가리가 얼마나 괴짜였는고 하니, 그가 권총자살을 한 뒤 유서처럼 남겨진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소책자가 출간될 때까지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동일인물임을 그 누구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름이 다른 두 인물 행세를 하면서, 두 인물의 전혀 다른 문학작품을 줄줄이 내놓으면서 로맹 가리는 그렇게 평단을 비웃고 또 비웃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성장한 로맹 가리의 남다른 이력을 보면, 「자기 앞의 생」이 어쩌면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낳게 한다. 뜨겁고 깊고 쓸쓸한 로맹 가리의 얼굴은 작가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을 이 노래는 1978년 제1회 광주전일방송 대학가요제 대상곡이다.
 
가수 김만준 앨범 '모모'
가수 김만준 앨범 '모모'
당시 대학생이었을 김만준이란 가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시꺼먼 뿔테안경을 쓰고 혼자서 통기타를 치며 별다른 표정없이 노래를 불렀었다.

오래된 이 노래가 내 입에서 잊히지 않고 가사까지 정확하게 불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반복되는 리듬과 노랫말 덕분일 테지만, 노랫말이 담고 있는 사뭇 이국적이면서 철학적인 내용이 흥미롭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이 1975년에 발표된 것을 감안하면, 당시 창작된 이 노래는 시대의 지성을 대표할만하다.


이제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상상하는 무지를 깼다.
가슴이 알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아아아~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아~”
 
 
 





[책 속의 길] 12
이은정 / 평화뉴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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