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 공유보다 특권 철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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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오도된 시장경제, 새로운 특권과 차별을 만들고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남길 경우에 초과이익을 중소협력업체와 나누는 제도라고 한다. 동반성장위원회 정운찬 위원장이 운을 떼자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 내에서까지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반응을 보였다. 입장에 따라 시장경제를 보는 시각이 다른 모양이다.

이기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시장경제는 이기심을 전제로 한다고들 한다. 이기심은, 어감이 좋질 않지만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기심은 자조(自助) 정신의 한 축이고, 이기적인 생존 욕구가 없다면 조물주는 무척 바쁠 것이다. 제 삶을 스스로 챙기지 않는 피조 생물을 일일이 보살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담 스미스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경제행위가 남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구성원이 이기심에 매몰되면 집단의 이익을 해친다.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타자와 집단에 협력하는 개체를 많이 보유하는 종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증거도 많다. 개체로서는 약하디 약한 개미가 종으로서는 번성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게다가, 이기적 행위는 개체를 위해서도 최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선, 이기적이라는 사회적 딱지가 붙어버리면 세상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또 평판과 무관한 경우에도 불리할 수 있다는 견해도 많다.

유명한 예로 액셀로드(Robert Axelrod)의 <협력의 진화>(The Evolution of Cooperation)를 들 수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경쟁사회에서 이기와 협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에 나중에 다시 만날 기회가 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이기적으로 대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관계를 맺는 상대라면 처음에는 일단 협력한 다음, 협력적인 상대방에게는 협력을 이기적인 상대방에게는 보복을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자유로운 선택

이처럼 집단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이기심을 자제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기심을 긍정하는 시장경제를 버리는 것이 좋을까? 아직 그렇게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시장은 이기적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질서이다. 인류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지 않는 한 시장은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을 배제하려고 애를 썼던 공산권이 결국 손을 들고 만 것이 하나의 증거다. 그렇다면 시장을 무시하거나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서 활용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 시장경제를 이기적 행위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는 제도로 보면 된다. 이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시장 이데올로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프리드먼(Milton & Rose Friedman)의 유명한 책 제목이 <자유로운 선택>(Free to Choose)이었고, 어떤 시장주의자도 자유로운 선택이 시장경제의 핵심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화된 특권부터 시정해야


강자가 약자에게 “맞고 줄래, 그냥 줄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과 거리가 멀다. 목구멍에 거미줄 칠 수 없어 저임금을 감수하는 것도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려면 대등한 지위와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시장경제가 성립하려면 적어도 제도에 의한 특권과 차별이 없어야 하고 사회보장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신분제도가 특권과 차별의 대표적 사례였지만 오늘날에는 (적어도 겉으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구실 삼아 새로운 형태의 특권과 차별이 제도화하고 있다. 자유방임을 구실로 경제적 강자의 횡포를 방치 내지 방조하며, 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인류 공동의 유산인 토지, 자원, 환경의 사유화를 당연하게 여긴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이런 정글에서 빚어지는 분배의 왜곡을 사후에 교정하는 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듯이 초과이익 공유보다 특권 철폐가 더 중요하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으로 유명한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초과이익공유제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인데, 결과도 논할 가치가 있지만 순서상으로는 [대기업의] 불법적 부분부터 일벌백계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논평했다고 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필자의 생각과 통한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상상력을

그럼, 자유로운 선택에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인 사회보장은? 흔히들 사회보장과 시장경제는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특권 이익을 환수하여 시장원리에 맞는 사회보장을 설계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상세히 다룬 적이 있으므로 혹 필요한 독자께서는 아래 기사를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진보집권플랜>에 보수도 동의할까요?)

고정관념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장과 복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김윤상 칼럼 38]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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