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말해야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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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원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대화』(리영희 대담 : 임헌영 | 한길사 | 2005)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1년 학업을 위해 대구에 왔는데, 나는 꽤 진보적인 사회의식을 가진 학생이라는 어설픈 자존감이 대단했던 대학 초년생이었다. 나는 1979년 부마항쟁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목도했고, 불온서적이라 불리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조세희,1978),『어둠의 자식들』(황석영, 1980)과 같은 책을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몰래 읽었다. 이런 경험들이 나를 약간의 영웅심리에 젖게 만들었고, 지식인의 역할을 꽤 고민하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치기어린 청춘이었다.

 81년 4월, 동아리의 독서 토론 소모임에서 선배들이 읽기를 강요(?)하며 건 낸 책이 리영희 선생의『전환시대의 논리』였다. 멀쩡한 책이 아니라 원래의 책을 4~5부분으로 나눈 복사본이었는데, 이 책이 판금서적이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몰래 읽어야 한다며 건냈다. 금서를 접한다는 묘한 스릴감이 리영희 선생을 만난 첫 인연의 느낌이다. 선생의 글은 전기에 감전된 것과 같은 충격으로 나에게 왔다. 선생의 많은 글들을 읽어 보았지만 너무 완고해서 융통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선생님의 삶을 모두 좋아하진 않는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치열하게 분석하고 철저하게 과학적이고자 한 선생의 글쓰기는 나의 글쓰기를 좌절시켜 버렸다.

 사람이 나이 들면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이력과 의식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고 했던가! 리영희 선생의 얼굴은 집요할만치 고집스러운 그의 글과 꼭 닮았다. 융통성 없는 것까지도. 격동의 현장이었던 7,8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리영희 선생은 ‘인식의 우물’이었지만, 나를 비롯한 시국사범들이 진술서에 빠지지 않고 가장 영향을 준 사람과 책으로 그의 이름과 저서를 적었을테니 위정자들에게는 불온사상의 근원지였고, 원흉이었다. 선생이 겪은 고초 가운데 많은 부분이 본의의 의지와 무관하게 덤탱이가 씌워졌고, 나 또한 그의 가해자였다는 것은 흔들리는 역사가 그에게 준 불행한 운명이었으리라!

 선생의 글과 말이 모두 옳은 것만은 아니었고,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고 정확한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사료를 모으고, 분석하여 합리적인 이성이란 틀 속에서 치밀하게 논증하는 그의 글쓰기는 ‘진실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이다. 또한 역사 앞에서 지식인의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의 삶은 ‘진실을 어떻게 말하여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리영희 선생의『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는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자서전이다.

 

리영희 저 | 임헌영 역 | 한길사 | 2005.03
리영희 저 | 임헌영 역 | 한길사 | 2005.03
자서전의 통상적 형식인 일인칭 서술이 아니라 ‘대화’ 형식인 까닭은, 개인사적 사실 내용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뱀띠 띠동갑 임헌영 선생의 질문을 통한 비판적 토론 방법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자서전이 아니라 한국현대사를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책이라는 점이다. 또한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일화는 완고하고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선생의 이미지를 반전시켜주어 읽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을 통해 리영희 선생도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고, 가족에게 미안해하고, 자식에게 문제제기를 받으면서 고민하는 아버지이기도 하였던 인간적인 선생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선생은 자신이 우상에 사로 잡혀 있는 오류는 없는지 끊임없이 경계하고 성찰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우상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세, 선생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이것일 것이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책, 675쪽. 『우상과 이성』서문, 1977.)   

  리영희 선생은 그 자체가 한국현대사의 한 축의 히스토리가 되었다. 이 책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화자의 몸으로 체험한 자서전이므로 한국 현대사를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읽어 보기를 강요하는 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의미는 역사 앞에서 치열하게 살아 온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통해 ‘진실의 구성’과 진실을 구성하는 주체의 의무에 대해 겸허하게 성찰하도록 만드는 책이라는 것이다.

 

 
 

 

 

 

 

 

[책 속의 길] 25
윤정원 / (사)대구여성인권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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