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2차 희망버스, 그 현장과 언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미옥 / "스머프 놀이, 해동병원...'합의' 안된 노사합의와 보도"


# 1. 스머프 놀이

‘스머프’. 10일 새벽, 2차 희망버스 행사가 열렸던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앞 교차로 한 켠에서, 경찰이 뿌린 파란색 최류액에 뒤범벅이 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온몸이 화끈거리고 따끔한데다 앉을 경우 살이 닿아 후끈거림의 정도가 더해 무지 괴로웠지만, 서로를 바라 보면서 ‘파란색 스머프’(누군가는 슈렉이라고도 합니다)라고 놀리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185일째 고공농성중인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9일 대구를 출발한 희망버스는 3대, 장대비속에서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120여명이 출발했고,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역광장의 문화행사에 삼삼오오 모였기 때문에 역시 서로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구 팀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기준점은 ‘희망버스 대구’라는 깃발 뿐이었습니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지만 따까움과 화끈거림은 꽤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옥빈의 페이스 북.
사진 속에서 웃고 있지만 따까움과 화끈거림은 꽤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옥빈의 페이스 북.
이 깃발을 책임 진 깔깔이와 날날이(희망버스 준비주체를 이렇게 부릅니다)였던 박인규(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과 한상훈(대구 민예총 사무처장)은 봉래동 경찰 방화벽 앞쪽 즉 시위대열 거의 앞쪽에 있었기 때문에 참가자 대부분도 그 쪽으로 모여있었을 겁니다.

시위 대열 앞 쪽에서는 경찰의 방화벽을 넘기 위해 벽돌과 모래주머니로 계단을 만들고 있었고, 또 양쪽 통로에는 길을 만들기 위해 경찰과 행사 참가자가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물대포와 최류액은 계단을 만드는 팀, 양측 통로 몸싸움을 벌이는 곳으로 집중 분사되었습니다. 그 속에 대구경북에서 참가한 많은 분들도 꽤 있었을 겁니다.

# 2. 역사의 퍼즐 맞추기

7월 9일부터 10일 그리고 그 이후에도 2차 희망버스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성 언론 보도 분석, SNS를 통해 수없이 소통되었던 내용, 취재에 동참했던 기자들의 후일담,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아프리카 TV 등 당시 현장을 생중계했던 영상, 희망버스 행사에 직접 참가하진 못했지만 현장을 보면서 작성한 논평 등등.

주최측 추산 1만 여명(경찰 추산 7000명)이 1박 2일 동안 함께 했던 그 공간은 다양한 형태로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누군가 몇 명에 의해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정말 부지런한 누군가가 있다면 이날의 기록들을 모두 모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기록했던 다양한 현장들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모은 다면 중요한 역사 기록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퍼즐의 한 조각 정도는 저도 보태고자 합니다. 1박 2일 딱 30분, 정말 잠깐 졸았지만, 현장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보고 들었던 (물론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르는)내용 중 몇가지는 꼭 기록했으면 합니다.

# 3. 희망버스를 빛나게 했던 ‘해동병원’

희망버스에 참가한 1만여명의 시민들이 가장 감사했던 곳은 아마 한진중공업 앞 교차로에 있었던 해동병원이었습니다.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가장 불편한 점은 생리현상이겠죠. 캄캄한 밤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닫은 상태에서, 화장실 문제는 큰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최류액 범벅이 된 몸을 씻어내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기도 했었는데요.

@mindgood님이 올려준 해동병원 사진
@mindgood님이 올려준 해동병원 사진

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이 병원이었습니다. 병원의 1~3층까지 화장실이 희망버스 참가자에게 개방되었던 것이죠. 빗물을 두둑 흘리며 입구에 도착하면, 관리 아저씨들은 복도의 물을 연신 닦아 내며 ‘비옷은 벗고 들어와주세요, 환자들이 미끌어질 위험이 있습니다’고 설명해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수천명이 들락거리는 화장실이라 점차 지저분해졌지만 병원관계자분들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힘들었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조금은 깔끔하게 화장실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경찰의 최류액이 쏟아졌던 시기, 병원 화장실은 거의 6.25 피난민 촌을 상상할 만큼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친구들이 주로 시위 대열 앞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익숙하지’않은 이 파란 액체에 무척 괴로워했고, 병원 복도 의자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짓는 그들을 보니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저도 머리에 최류액을 직접 맞은 터라, 얼른 머리가락에 물만 적시고 나오던 차에 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날 참석했던 많은 분들은 해동병원의 친절에 ‘해동병원 관계자가 민주화운동관계자다, 과거 독립운동가 자손이다’라는 말들이 돌고 있었습니다.(확인되지 않는 ~카더라 통신) 그런데 위키트리(wikitree)에서 해동병원을 둘러싼 의혹(?)을 해소해주었습니다.

이 병원은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 소재한 '해동병원'(이사장 조평래 박사, 34년생)인데요. 당시 이 병원의 이사인 조 박사의 부인인 병원 이사가 참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라는 특별한 주문이 있었다고 병원 관계자와 통화결과 확인됐습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조평래 이사장은 지금도 취미가 진료이고 오로지 아픈 분들 치료하는 것 이외에 큰 관심이 없다. 지금은 연세가 있어 오래 전부터 진료해오시던 분들을 중심으로 진료하신다. 희망버스 관련해서는 한진중공업 바로 옆에 우리 병원이 있어 큰 일이 발생했는데 모른 척 할 수 없지 않는가. 이사장님 사모님께서 특별한 배려를 주문하셨다. 실제로 많은 분들에게 화장실과 물 등을 제공했고, 일요일날의 경우 경찰들이 도시락이 상했는지 배탈환자가 많아 이들에게도 진료 편의를 제공했다.” 위키트리(wikitree) 7월 11일

해동병원 1층 환자 대기실은 휠체어장애인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었고, 구석구석 의자에는 많은 분들에게 잠자리를, 그리고 핸드폰 충전까지도 가능했습니다. 물론 소식통에 의하면 병원 관계자들이 정말 조용하고 정중하게 “환자들을 위해 조금만 조용해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트위터 등을 통해 24시간 만화방, 카센터 앞에 개방된 수도 등등 알게 모르게 아름아름 도와주신 봉래동 상가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도 꽤나 많이 공유되고 있네요.

# 4. 거리 곳곳 쓰레기, 혼자 청소하며 동참 호소했던 시민


1만여명이 함께 했던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앞 교차로 곳곳. 거리마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넘쳐났습니다. 그 많은 인원이 하나의 공간에서 쏟아내는 쓰레기는 걱정거리였습니다. 토요일 아침 출근길 부산시민들이나, 교차로 근처 상인들의 쓴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경찰 방화벽 앞쪽 쓰레기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 중 몇 명이 그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있었던 것이죠. 9일 오전 10시경부터 진행된 문화행사에서 그 주인공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충청도에서 왔다는 그녀는 “경찰이 쓰레기 문제로 희망버스 참가자를 매도하고 있다. 아침에 상가에 출근한 부산 시민들이 주변 쓰레기로 매우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인데, 경찰측에서는 시위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면서 “제가 보기엔 상가 주민이 항의하는 건물은 시위대가 머물렀던 곳이 아닌데도 경찰은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상가 주민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지인들과 쓰레기를 치우게 되었다, 우리의 뜻과 의지가 다른 문제로 왜곡되서는 안된다”고 말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희망버스 대구’ 깃발 주변을 봤습니다. 역시...., 몇몇 선배들과 함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 5. 푸짐한 먹거리, 주변 상가 '대박 웃음'

1박 2일 행사동안 먹거리 만큼은 푸짐했습니다. 전라도팀들은 묵밥 뿐만 아니라 전을 현장에서 즉석 구워서 밤샘한 참가자들의 주린 배속을 채워주었고, 국밥, 주먹밥, 수박, 아이스크림 등 도대체 누가 제공한 것인지도 모르는 다양한 먹거리 들이 끊임없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물론 주변 상가에서는 “이렇게 장사가 잘되다니, 진짜 오랜만이다”라며 대박 웃음을 지었고, ‘침체된(^^“)’ 부산 동래지역 경제를 살렸다는 점에서 서로가 뿌듯해했습니다.

# 6. 아쉬운 문제, 평가는 ‘~ing'

희망버스를 준비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카페
희망버스를 준비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카페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희망버스 참가자가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까지 4차선 도로를 행진할 때 최소한 한 차선 정도는 차가 운행될 수 있도록 조정해줬으면. (사실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선 시민들의 항의는 꽤나 컸습니다.). 정당, 민주노총 등등의 깃발을 내리고 희망버스 참가자라는 깃발로 통일하자(대구는 깃발 하나만 만들었습니다), 방화벽 앞쪽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골목 곳곳에서는 술판을 벌인 일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반성 등.

물론 이런 반성과 개선과제는 감춰지지 않습니다. 희망버스를 준비했던 ‘비정규직없는 세상’카페를 통해 공개되고, 토론되고, 해명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숨을 조금 고르고 언론을 돌아봤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외부세력 개입’ 등 운운하며 희망버스 참가자에게 곱잖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50여개의 언론사중 이날 상황을 보도한 곳은 10여개도 안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조선일보> 2011년 7월 11일자 12면(사회)
<조선일보> 2011년 7월 11일자 12면(사회)

# 7. 현장에 함께 했던 <매일신문>, 하지만…

대구에서는 지역의 매일신문 기자가 2분 참석했습니다. 황수영, 백경열 기자는 대구에서 출발할 희망버스 3호차(저도 3호차였습니다)에서 함께하고, 그 뜨거웠던 최류액 등 시위현장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했던 1박 2일은 11일 <매일신문> 4면 ‘대구 시민 150명도 ’한진중 노조 응원‘ 부산행’을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매일신문> 2011년 7월 11일자 4면(사회)
<매일신문> 2011년 7월 11일자 4면(사회)

하지만 같은 날 <매일신문> 사설 <한진중공업 앞 시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진중공업의 노사 합의 문제과정이 동등한 입장에서 도달했는가며 제시한 사례는 고개가 끄덕이긴 하지만 , 그 전제 즉 ‘노사 합의가 된 상황에서 제3자가 그것이 잘못됐다며 파기하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은 맞다’라는 점은 사실관계가 다른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2011년 7월 11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1년 7월 11일자 사설


지난 29일 한진중공업 노사협의 무효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노동위원장)은 “6월 27일 노사가 맺은 합의가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금속노조 규약에 따르면 모든 단체교섭권과 협약권은 금속노조위원장에게만 있다"며 "산별노조인 한진중공업 노조는 금속노조의 내부기구에 불과하고 합의서를 작성한 지회장은 그런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번 합의는 단체협약상 아무런 효력이 없음으로 지난 2007년 한진중공업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이 아직 유효하다"며 "사측은 당시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지난 2007년 3월 14일 맺은 한진중공업 노사 단체협약에는 '현 수준의 적정 인력을 유지하며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특히 해외 공장 운영으로 인해 국내공장 조합원의 고용불안이 발생치 않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즉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2년이지만 이후 이를 갱신할 만한 단체협약이 없을 경우 이전 협약이 지속적으로 유효하다. 한진중공업 또한 2007년 이후 다른 단체협상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단체협약이 유효하다는 게 권 변호사의 주장입니다.

대부분 보수언론이 ‘한진중공업 노사가 합의했는데, 왜 3자가 개입하느냐?’라는 프레임으로 희망버스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데요. <매일신문> 사설도 맥락은 다르지만, 일단 ‘노사합의는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법률적으로 해석상 논란이 되는 지점에 ‘합의가 되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142]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