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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폭력'에 시달렸다면, 당신은?

기사승인 2011.07.15  1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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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식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 민음사 | 2008)


이른 아침 아파트 대문을 툭치는 소리가 나서 열어보면 신문이라는 놈이 떡하니 누워있다. 같은 시간, TV 리모컨의 파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거실을 벗어나 컴퓨터를 켠 뒤 인터넷을 클릭하면 메인 화면에는 여지없이 뉴스가 차지하고 있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스마트 폰에서 이런저런 뉴스를 보여준다. 차를 타고 거리로 나간다. 우리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건물 옥상 전광판은 뉴스라는 상품을 진열하듯 보여준다.

그야말로 뉴스 천국이다. 그런데 이 뉴스라는 녀석에게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을까? 우리는 이 녀석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신뢰할 수 없는 뉴스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됐다면?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 하인리히 뵐(소설가) 저| 김연수 역 | 민음사 | 2008.05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인 기자를 살해한다. 아주 극단적인 처방이기는 하지만 뉴스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한번쯤 입어본 사람이라면 이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일요일 오후,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27세의 이혼녀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경찰을 찾아가 자신이 총으로 기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그 모습은 너무 당당하게 소설 속에서 그려진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가사 관리사로 일을 하는 카타리나 블룸은 왜 기자를 살해했을까? 소설은 카타리나 블룸이 기자를 살해하기 전 5일 동안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축제가 있던 수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 날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치고, 괴텐이 어디 있냐고 추궁한다.


사실 괴텐은 은행 강도 용의자로 경찰과 언론에 쫓기고 있던 인물이었다. 소설 속 신문인 '차이퉁'지는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카타리나 블룸에 대한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작성하고, 이후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한다. 그저 평범했던 한 여인은 범죄자의 정부(情婦)이고, 남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는 속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심지어 그녀는 소위 '빨갱이'로 까지 만들어지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 같은 신문의 보도로 숨지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무참히 짓밟은 신문사 기자를 권총으로 살해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언론사에 종사했던 과거 필자의 모습도 함께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폭력(언론)이 실재 폭력의 발생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도 불편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자들도 비슷한 불편함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재미는 소설 속 신문인 '차이퉁'에서 기사를 표현하는 방법이나 취재원을 통한 사실의 왜곡 등은 지금의 것들과 별반 차이나지 않는다. 소설과 지금의 현실이 37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고, 독일과 한국이라는 공간적 차이도 있는데 각각이 보여주는 언론의 행태가 너무 비슷하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시공간을 떠나서 언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은 항상 우리와 가깝게 실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 싫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기막힐 정도로 기이하게 벌어진다. 범죄자들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 카타리나 블룸도 범죄자를 잠깐이지만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범죄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참 받아들이기 싫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들은 그런 사실을 왜곡한다. 신문들은 범죄 그 자체를 좋아한다. 그것을 위해 불필요한 모든 것들은 조작해 버리는 것이다. 조작하지 않고 사실을 밝히더라도 그것은 어느새 거짓말로 보이게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과 진실을 훼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문이다.

보이지 않는 언론의 폭력, 그 폭력은 우리 눈에 극명하게 드러나는 '살인'이라는 폭력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 하인리히 뵐은 소설의 부제를 이렇게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다음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카타리나 블룸이 기자를 살해하는 과정을 털어놓고 이야기 하는 대목이다. 끔찍한 살해현장이지만 보는 이들은 통쾌하다. 아니 '조금 더 잔인하게 살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조금은 이상한 생각을 갖게 만든다. 

[내가 기자들의 술집에 갔었던 것은 그저 그를 한번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인간이 어떻게 생겼고, 행동거지는 어떠하며, 말하고 마시고 춤추는 모습은 어떤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 삶을 파괴한 바로 그 인간 말입니다. (중략)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때 난 즉각 알아보았어요. 그자가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정말 추잡한 놈이라는 걸요. 게다가 귀여운 구석까지 있더군요. 사람들이 귀엽다고 할 만한 모습이요. 자, 당신도 사진들을 본 적이 있지요.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이 귀여운 블룸양, 이제 우리 둘이 뭐하지?'라고요. 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거실로 물러나며 피했지요. 그는 나를 따라 들어와서는 말했어요. '왜 날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지? 나의 귀여운 블룸 양, 일단 우리 섹스나 한탕 하는 게 어떨까?' 그사이에 내 손은 핸드백에 가 있었고 그는 내 옷에 스칠 정도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난 생각했어요. '어디 한탕 해 보시지, 이판사판이니까.'라고요. 그러고는 권총을 빼 들고 그 자리에서 그를 향해 쏘았습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정확히 몇 발인지 모르겠습니다.]

   





[책 속의 길] 26
최용식 / 전 대구일보 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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