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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지식인들을 위하여

기사승인 2011.07.22  1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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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현 / 미셀 비녹,『지식인의 세기: 20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역사』


비오는 어느 봄날 영남대학교 도서관을 지나가다가 경북대학교출판부와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저작을 염가로 판매하는 곳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다. 여러 책들을 쭉 둘러보다 비녹의 『지식인의 세기』 1/2권을 보는 순간 ‘이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두께로 보아서 아무리 싸도 권당 만원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맙게도 삼만원(1권)/이만 오천원(2권)이나 되는 두터운 책을 각각 오천원에 팔았다. 믿어지지 않았다! 가방에 책이 많아 무거웠지만 만원으로 두 권의 책을 구입한 후 가방에 쑤셔 넣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책을 읽었다.

그날부터 마치 열병과 같은 독서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거침없이 빠져 들어갔다. 이 책은 지식인의 세기인 20세기를 3부로 나눈다. 역자의 말과 같이 이 책은 3막으로 된 연극과 같다. 1막의 주인공은 모리스 바레스이고, 2막의 주인공은 앙드레 지드이며, 3막의 주인공은 장-폴 사르트르이다. 이 책은 지식인의 탄생을 알리는 드레퓌스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르트르의 죽음과 미셸 푸코의 등장으로 끝이 나며, ‘지식인의 시대는 끝났는가?’라고 물으면서 기나긴 이야기를 성찰한다.

   
▲ 『지식인의 세기: 20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역사』미셀 비녹 지음, 우무상 역, 경북대학교 출판부, 2008.

책에는 다양한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면서 놀라운 용기를 발휘한 에밀 졸라, 어려운 생활고 가운데서도 잡지를 창작하며 생을 불살랐던 실천적인 지식인 페기, 동성애를 커밍아웃하는 ‘악마같은’(?) 용기를 보여주었고, 사회주의를 지지하여 소련에 다녀온 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밝힌 앙드레 지드, 파시즘의 유혹에 빠지고 만 피에르 드리외 라 로셀, 철학자였지만 자신의 이상 때문에 르노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하며 노동자들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시몬느 베이유,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행동하는 지식인 앙드레 말로, 레지탕스 운동에 가담하는 작가들. 작가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사르트르. 작가이면서 언론인이었던 알베르 카뮈, 『제2의 성』을 쓰면서 여성운동을 시작했던 보봐르... 

소설보다 더 소설같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지식인들의 삶과 명성, 그리고 질투와 애환을 보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원래 나는 전기물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매년 헤겔의 전기를 반복해서 읽으며, 다른 철학자들의 전기나 대담집을 읽는 것을 즐기지만 이번의 독서는 더욱 특별한 체험이 되었다. 번역자의 말처럼 지식인들의 사생활까지 세밀하게 담고 있는 이 책은 정말로 “흥미로운 소설”에 다름없었다. 수백명의 이름이 거론되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지식인들의 삶과 활동에 마냥 압도당하고 말았다. 지성과 용기 그리고 열정과 헌신이 결합할 때 어떠한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깊이 배웠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비녹은 ‘지식인의 시대는 끝났는가?’라고 묻는다. 이는 책의 저자가 20세기의 지식인의 역사를 상세하게 연구한 끝에 내리게 된 역사적 성찰의 결론부분을 담고 있다. 비녹은 사르트르가 내린 지식인의 정의를 일단 받아들인다.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원초적으로 지식인 전체는 지성의 영역에 속하는 활동(순수과학, 응용과학, 의학, 문학)을 통해 약간의 명성을 얻은 사람들, 그리고 그 명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어떤 총체적이며 단호한 개념(그것이 막연한 것이든 아니면 분명한 것이든 간에, 모럴리스트적인 것이든 아니면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이든 간에)의 사회와 기성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비녹은 쥘리앵 뱅다가 『문사들의 배반』에서 제시한 지식인 개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뱅다는 지식인을 무사무욕한 정신의 소유자로 그렸는데 이는 자식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지식인의 힘과 명성은 모순적이며 순환적인 관계를 가진다. 지식인이 발휘하는 힘은 명성 때문에 발생하지만, 지식인이 인간의 대의를 위해 그 힘을 사용하면 명성이 또한 강화된다. 지식인은 이러한 순환관계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모순과 순환관계를 망각할 때 지식인은 특권계급이 되거나 제도화된다.

비녹은 물질적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정신적 저항권력이나 지적인 저항권력은 특정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의해서 구현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그는 이러한 권력은 어떤 <익명의 힘>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비녹의 마지막 귀결지점은 <익명의 지식인들>, 그리고 <만인>이다.

<풍자문 작가들의 외침이나 성명서 작성자들의 선언보다 더 폭넓게, 더 깊이, 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익명의 지식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 특히 교육자로서의 활동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활동이야말로 민주사회에서 비판적인 동시에 유기적인 참된 저항권력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 같다. 시민의식을 가지는 것, 개인이나 집단으로서 자신이 다른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것, 더불어 살아가려는 의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 간단히 말해서 지금은 불완전하지만 앞으로 완전해 질 수 있는 우리 사화의 각종 윤리적 토대는 단지 몇 몇 사람들에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만인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이 책은 지식인들의 역사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지식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제시해주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지식인의 탄생에서부터 지식인의 종말을 거쳐 자신의 힘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명성에서 비롯되었고 인간의 대의를 사용해야 한다는 충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익명의 지식인들의 일상적인 활동의 가치를 밝히면서 글을 맺고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그 감상으로 ‘한국에는 직업적인 교수들만 있으며 지식인은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조선시대에는 선비와 같은 지식인 전통이 존재했으며,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자신의 삶을 걸고 한국 사회의 문제에 참여한 지식인들이 존속해 왔었다. 그리고 지금도 삶을 불태우며 자신의 명성을 인간의 대의를 위해서 사용하는 유명한 지식인과 일상적인 교육에 전념하는 익명의 지식인들이 있다. 오히려 이들을 조사하고 알리며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책을 읽고 내가 얻은 것을 소개하고 공유하고 싶다. 나는 공부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내게 있어 공부와 교육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것이다. 이 책은 공부하고 그 공부한 것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로 하여금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책을 곁에 두고 반복적으로 읽고자 한다. 책 속에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삶의 길에 관해 큰 도움을 받았기에 이 책을 기꺼이 여러 선생님들, 대학생들, 그리고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책 속의 길] 27
김재현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초빙교수. 신학박사.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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