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사람들의 고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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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틀어도 후덥지근..."전기세 걱정에 에어컨은 엄두도 못내"

 

28일 낮에 찾은 대구역 뒤편(북구 칠성동) 쪽방촌 골목 양옆에는 작은 쪽문과 여인숙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왔고, 하수구에서 올라온 쾌쾌한 냄새도 간간히 코를 찔렀다. 이날 대구지역 낮 최고기온은 섭씨 33.9도를 기록했다. 

북구 칠성동의 쪽방촌 골목. 양옆으로 쪽방과 여인숙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더운 공기가 골목에 가득찼고,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쾌쾌한 냄새도 간간이 코를 찔렀다 (2011.07.28)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북구 칠성동의 쪽방촌 골목. 양옆으로 쪽방과 여인숙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더운 공기가 골목에 가득찼고,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쾌쾌한 냄새도 간간이 코를 찔렀다 (2011.07.28)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골목길 어귀에 있는 작은집 앞에서 누군가 긴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었다. 5평 남짓 되는 부엌 딸린 방 한 칸에서 아들과 단둘이 사는 황모(74.여.북구 칠성동)씨였다. 황씨는 "18년 전 사정이 있어 이집에 잠깐 들어왔다가 지금까지 살게 됐다"고 말했다.

반쯤 열린 황씨의 집 문틈 사이로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집에 잠시 들어가도 되겠냐는 질문에 황씨는 "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누워있어 보여줄 수 없다"며 골목길 그늘 아래로 팔을 이끌었다. 황씨는 매년 여름마다 곤욕을 치른다. 방안의 더운 열기가 쉽게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몸이 아픈 아들을 집에 놔두고 혼자 시원한 곳을 찾아 더위를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황씨는 "더위는 말도 못한다"며 "7년 전 공부하던 아들을 위해 큰돈을 들여 에어컨을 장만했지만, 전기세가 감당이 안 돼 몇 년째 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종일 선풍기와 벽에 붙은 환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열기가 방안에서 빠져나가지 않는다"며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거나 바닥에 물이라도 뿌리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척추협착증(좁아진 척추관이 신경을 눌러 골반 아래부터 허벅지, 종아리까지 통증을 일으키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데다 무릎과 어깨도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황씨는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두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있다. "더워도 어쩌겠어. 바닥에 물이라도 뿌리면서 참고 지내야지" 

대구 북구 칠성동 쪽방촌. 황모(74.여)씨가 집 옆 골목에 긴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다 (2011.07.28)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 북구 칠성동 쪽방촌. 황모(74.여)씨가 집 옆 골목에 긴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다 (2011.07.28)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비슷한 시간, 근처 여인숙 1층 쪽방에서 최모(40.북구 칠성동)씨가 휴대용버너에 양은냄비를 얹어 밥을 짓고 있었다. 한 평 남짓한 최씨의 방에는 작은 TV 한 대와 선풍기, 옷걸이, 쌀통, 얇은 이불이 전부였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혼자 이곳에 살고 있는 최씨는 "오늘은 날이 더워 일하러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던 최씨의 팔은 공사일을 하며 생긴 상처와 흉터로 가득했다. 최씨는 "일하다보면 긁히고 찢어지는 게 다반사"라며 "이 정도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마늘을 찧어 상처에 붙이면 금세 낫는다"고 말했다.

선풍기가 쉴 틈 없이 돌고 있었지만 최씨의 방은 후덥지근했다. 어렸을 적 고아원에서 자라 가족이 없는 최씨는 4년 전 이곳 여인숙에 들어왔다고 했다. 최씨는 "방안이 조금 덥긴 하지만 딱히 갈 곳도 없어 집이 제일 편하고 좋다"며 "가끔 공사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팔공산 수태골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북구 칠성동 한 여인숙 마당에서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최모(40.일용직)씨가 물을 마시고 있다 (2011.07.28)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북구 칠성동 한 여인숙 마당에서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최모(40.일용직)씨가 물을 마시고 있다 (2011.07.28)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처럼 쪽방촌 사람들은 선풍기 한대에 의지한 채 무더운 여름을 힘겹게 나고 있었다. 대구쪽방상담소 장민철 사무국장은 "여름이 되면 무엇보다 '더위' 때문에 가장 힘들어 한다"며 "보통 낮에는 신천 다리 밑이나 공원 그늘에서 더위를 피한다"고 말했다. 이어 "쪽방촌 사람들의 경우 '여름휴가'는 엄두도 못낸다"며 "쪽방촌 사람들과 함께 오는 8월 3일에 1박2일 일정으로 군위군 계곡으로 '수련회'를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에는 현재 중구 대신동과 성내동, 서구 비산동과 원대동, 동구 신암동과 신천동, 북구 칠성동과 대현동 일대에 쪽방이 몰려 있으며, 쪽방상담소에서 파악한 전체 거주자는 대략 850여명이다. 대구쪽방상담소 장민철 사무국장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유사거주자까지 포함하면 대략 1,000명쯤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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