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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이 희망이다

기사승인 2011.08.10  14: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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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은 / "김진숙, 크레인 위에서 날려보낸 꽃씨의 싹을 틔우며..."


보수 언론은 '희망버스'라는 이름이 너무나 못마땅한 모양이다. 8월 5일자 조선일보는 '좌파세력에게 배울 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악당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라는 고약한(?) 전제하에 시위대를 태운 버스를 '희망버스'라고 이름 붙인 '좌파'의 '감각'에 탄복을 금치 못한다고 했다. 그들은 '희망버스'를 '절망버스', '시위버스'라며 폄훼했지만 더 많은 시민들이 '깔깔깔' 웃으며 3차 ‘희망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불순세력'이 결코 아니었다. 35미터 크레인에 올라간 한 '생명'이 내 딸 같고, 내 누이 같아 나선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주말 '1박2일'의 시간을 기꺼이 쏟아 부으며 부산행 '희망버스'에 몸을 실은 것일까? 아마도 부당한 '정리해고'가 계속되고, '비정규직'이 900만 명을 넘긴 오늘의 '절망'속에서 진정한 '희망'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85호 크레인' 위에 '소금꽃 노동자' 김진숙이 있다.

 
 
▲ 학생들이 85호 크레인을 향해 '텔레파시'를 보내자 그녀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어 주었습니다. 크레인 철판 위에서도 '소금꽃'은 결코 시들지 않았습니다. 213일 동안이나...(2011,8, 6 농성 213일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 사진. 김동은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 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 오릅니다'

바닷바람이 칼같이 매섭던 지난 1월 시작된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이 8월 10일, 오늘로 217일을 맞았다. 그녀는 '불판'같이 달아오른 한낮의 크레인 위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200일 이상 제대로 먹지 못해 쇠약해진 몸으로 무더위와 싸우고 있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직사광선을 오래 받으면 수분과 전해질이 소실되어 나타나는 '일사병'이나, '체온 조절 중추가 기능을 잃어 발생하는 '열사병' 의 발병 가능성이 커진다. 무력감, 현기증, 심한 두통 등의 증상이 동반되다가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일사병'이나 '열사병'이 의심되면 빨리 서늘한 곳으로 이동하고, 물이나 이온 음료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증상이 심해져 의식까지 혼미해지면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보는 우리 사는 세상은 어떤 보습일까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2011.8.6 농성 213일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 사진. 김동은

그러나 오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회사 측은 전기마저 끊었다.  아시아 인권 위원회가 우려를 표명한대로 김진숙 지도위원은 먹고, 마시고, 아픈 곳을 치료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 겨울 '고공 농성'을 시작할 땐 눈길을 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보수언론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러나 '고공농성'이 100일, 200일을 넘어가자 '부당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그녀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계절이 두 번 바뀌어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희망버스'가 전국에서 부산으로 향하자 그녀의 목숨 건 '투쟁'은 외신을 타고 여러 나라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 '희망휴가'를 내고 '희망버스'에 올라 부산까지 달려온 사람들이 내린 곳은 '해운대'가 아니라 부산역 아스팔트였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소금꽃'을 만날 수 있어서...(7.30 3차 희망버스 환영 문화 한마당, 부산역 앞) / 사진. 김동은

그런데 나는 왜 그 외침을 처음부터 듣지 못하고 '희망버스'가 출발하고 나서야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보수언론의 외면 때문일까? 결코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의 문제였다. 매일매일 들려오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에 관한 소식에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둔감해져 있었다. 대한민국이 잘 살려면 재벌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한(?) '정리해고'가 꼭 필요하다는 그들의 논리에 생각 없이 끌려갔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이런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이 나를 3차 '희망버스'로 이끌었다.

 
 
▲ 김진숙 저 | 후마니타스 펴냄 | 2007년
3차 '희망버스' 출발을 앞두고 노동자 김진숙을 알고 싶어 '소금꽃 나무'라는 책을 펼쳤다. 어느 페이지에서는 각막에 눈물이 맺혀 한참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녀는 어린나이에 와이셔츠 공장 직공, 아이스크림 장사, 우유배달원, 시내버스 차장 등 산전수전을 겪었다. 그러다가 단지 ‘일당이 좀 세서’ 용접을 배운 그녀는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처녀 용접공'이 되었다.


'한진 중공업 다닐 때,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죽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 꽃이 피어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 나무' 같곤 했습니다.'

조선소의 '소금꽃 나무'에는 매년 황금이 주렁주렁 열렸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 할 수 없음을 그녀는 늘 서러워했다. 그래서 '어용노조'와 싸우게 되었고, 5년 만에 해고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20년을 노동 운동가로 살아왔다. 지난 2002년에는 650명 대량 해고에 맞서 함께 싸우던 동료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 목을 맸다. 궁지에 몰린 회사 측은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받아들였지만 유독 그녀 이름만 빠져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자기가 복직된 것 이상으로 기뻐했다. 이처럼 김진숙은 타인의 고통을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복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들의 부당한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크레인에 올라있다.

 
 
▲ 네 명의 '85호 크레인 사수대'가 '소금꽃'을 지키고 있습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지키고 있어 별명이 '사천왕'이 랍니다. 제법 잘 어울립니다.(2011,8, 6 농성 213일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 사진. 김동은

언제부턴가 창밖으로 보이는 공사장의 크레인을 쳐다봐도, 천정에서 내려오는 에어컨 바람을 쐬어도, 퇴근 후 '등목'으로 땀을 씻어내도 왠지 미안하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므로 '희망버스'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를 '하차' 시키라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다.

나는 '희망버스'에 동참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거창한 '이념'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오른 한 생명의 억울한 사연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들어주면 살아서 내려오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동승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하면서 주주들에게는 거액을 배당하고, 회장의 연봉은 대폭 인상한 그들에게 '부당하다'라고 외치고 싶어 동승했다.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누어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동승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 "크레인 위의 아빠께. 내가 일자리 구해줄 테니 그일 그만하면 안되요? 그래야지 운동회, 학예회도 보잖아요" 엄마와 딸아이는 이번 가을 운동회에 아빠랑 함께 갈수 있겠지요?...(7.30, 3차 희망버스 환영 문화 한마당, 한진 해고자 가족 모녀) / 사진. 김동은
   
국회의 출석 요구에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나보란 듯이 외유를 다니다 며칠 전 비밀리에 돌아왔다. 한진 중공업이 위치한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내가 만나자고 해도 조회장이 답이 없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더 큰 '재벌' 출신인 정몽준 의원이 '국회는 염라대왕이 아니므로 겁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라며 청문회에 나오라고 조회장에게 훈수했지만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조 회장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코 국회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이미 '재벌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그가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귀를 열어 크레인 위에서 들려오는 가냘픈 한 노동자의 목숨 건 외침을 들을 수 있을까?

 
 
▲ 대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소금꽃'을 찾아 왔습니다. 그냥 보고 싶어서, 잠시라도 곁에 있어주고 싶어서 왔답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습니다.(2011,8, 6 농성 213일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 사진. 김동은

멀리 부산 앞바다 '85호 크레인' 위에서 시작된 작은 외침은 이미 전국을 뒤 흔드는 큰 메아리가 되었다. '정리해고' 문제의 해결 없이는 '희망버스'를 막기 힘들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불순 세력의 개입'이라는 지겨운 공안 색안경을 또 꺼내들고 '희망을 기획'한 송경동 시인 체포에 나섰다.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희망버스'에 동승한 승객들이 우리사회의 진정한 '희망'에 대해 각성한 수많은 개개인임을 그들이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언론재벌 '조선일보'는 지난 주 갑자기 '이젠 자본주의 4.0 이다'라는 제목 하에 '한계에 부딪힌 한강의 기적, 다같이 행복한 성장으로 가야'라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나름 비정규직의 문제를 심층 취재한 흔적은 보이지만 그들의 깊은 속뜻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발 빠른 대응임은 확실해 보인다.

 
 
▲ 문화제를 보다 잠이 든 딸아이, 꿈에서는 보고 싶은 아빠를 만나고 있을까요? (7.30 3차 희망버스 환영 문화 한마당, 부산역) / 사진. 김동은

앞으로 이어질 4차, 5차 '희망버스'를 또 다시 '전경버스' 차벽으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또 '희망버스'에 동승한 시민들을 영도대교 앞에서 '어버이 연합'의 '목검'으로 끌어 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절망'을 넘어 '희망'을 찾아 나선 사람들은 차벽으로 막힌 영도대교 위로 '오작교'를 놓아 김진숙을 만날 것이다. 부산 앞바다에 '돌다리'를 놓아 김진숙을 반드시 살려 낼 것이다.

 
 
▲ 손을 흔들 때는 견뎠던 여학생들이 '소금꽃'이 두 손으로 러브를 그리자 그만 돌아서 눈물을 흘립니다. 소금꽃을 향해 '하트' 답장을 보내지도 못한 채...(2011,8, 6 농성 213일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 사진. 김동은

이제 많은 사람들은 김진숙이 흘리는 눈물이 머지않아 나의 눈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김진숙은 오래 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 된 한사람의 노동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가 200일 넘도록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날려 보낸 '소금꽃 나무'의 '꽃씨'가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저는 주익씨가 못해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216일 전에 크레인 위에서 보낸 편지다. 이제는 그들이 답을 할 차례다.

 
 





[기고] 글.사진 / 김동은
의사. 이비인후과 전문의.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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