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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크레인에서 띄운 김진숙의 편지

기사승인 2011.08.18  12: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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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환노위 위원들에게..."합동장례식 참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지난 1월부터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청문회(8.18)를 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에게 자필 편지를 띄웠다.

김진숙 위원은 이 편지에서 "왜 막대한 흑자가 난 기업에서 그 흑자를 만들어낸 노동자들만 고통 받아야 하는지 꼭 밝혀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또, "경영진들은 경영실패의 책임은커녕 주식배당금에 현금배당에 연봉까지 인상시킨 기업에서 왜 노동자들만 거듭되는 정리해고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반드시 밝혀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특히, 지난 2003년 650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85호 크레인에서 농성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당시 김주익 지회장과, 김 지회장이 숨진 뒤 5일 만에 목숨을 끊은 곽재규 조합원의 합동장례식을 소개하며 "한 사람의 시신은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또 한 사람의 시신은 도크 바닥에서 끌어올리는 기가 막힌 합동 장례식을 치렀습니다"라며 "그 비극이 한진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2003년 합동장례식을 치렀던 그 참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김 위원은 '희망버스'가 처음 오던 날을 떠올리며 "그 전까지는 어떤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야당국회의원 서너분이 다녀가신 정도였습니다. 고립된 채 절망했고 그때마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라고 당시의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두 달째 전기가 끊어진 깜깜절벽 크레인위에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이 글을 씁니다"라고 편지를 시작해 "우리 조합원들 일하게 해주십시오. 9개월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거리를 헤매는 우리 조합원들 가정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환노위 국회의원님들께 간절히 호소합니다"라고 맺었다.

 
 
▲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2011.8.6) / 사진. 김동은

김 위원이 8월 15일 자필로 쓴 이 편지는 민주노총을 거쳐 정동영 의원실에 건네졌고 17일 환노위 위원들에게도 전달됐다. 국회 환노위는 18일 오전부터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를 열고 있다. 조 회장은 의원들의 숱한 질의에도 아직까지 '해고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은 사측의 400여명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2011년 1월 6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타워크레인에 올라 18일 현재 225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정동영 의원의 트윗에 실린 김 위원이 쓴 편지 전문이다.


두 달째 전기가 끊어진 깜깜절벽 크레인위에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이 글을 씁니다.

일요일날 자정이 다된 시간, 8차선 도로 건너편 인도에는 30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오늘밤도 모기에 뜯기며 노숙을 하겠지요. 저들 중에는 이 크레인 중간 지점에 올라와 있는 해고 노동자의 아이들과 부인들도 있습니다.

이 염천더위에 가마솥처럼 달궈진 크레인위에서 가족들의 생존을 지키겠다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비가 오면 물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가장을 지켜보는 마음이 어떨까요.

저분들 중에는 서울에서 오셔서 주말을 길에서 보낸 분도 계시고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대전에서 오셔서 노숙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제가 모르는 분들입니다. 사람이 있다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오신 분들입니다.

저분들을 보면서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저분들만큼의 애틋함이 있었다면 저분들만큼의 측은지심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정리해고가 막무가내로 자행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희망버스가 처음 오던 날이 제가 크레인에 오른 지 157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떤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야당 국회의원 서너분이 다녀가신 정도였습니다. 고립된 채 절망했고 그때마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희망버스가 3차까지 이어지자 비로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내 국회청문회까지 열리게 됐습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쌍용차에선 정리해고 이후 15명이 죽었고, 한진중공업에서도 2003년 두 사람이 생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3년도에도 650명의 대규모 구조정이 있었고 거기 반발한 노조가 2년을 싸웠습니다. 당시 김주익 지회장이 이 85호 크레인에 129일을 매달려 있었습니다. 회사는 물론 언론도, 정치권도 그의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냉대속에 129일 만에 밥을 매달아 올렸던 밧줄에 목을 맸습니다. 지회장의 시신은 2주가 넘도록 이 크레인을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사측의 어떤 조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5일 만에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또다시 목숨을 끊고 나서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한사람의 시신은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또 한사람의 시신은 도크바닥에서 끌어 올리는 기가 막힌 합동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스물 한 살 청춘시절에 같은 공장에서 만나 거의 매일 얼굴 보며 같은 꿈을 꿨던 사람들입니다. 여름이면 온몸에 땀띠가 돋고 땀으로 안전화가 질퍽거리는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도 그 사람들이 있어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질풍노도 같은 시절을 옛말삼아 얘기하며 좀 달라진 세상에서 같이 늙어갈 수 있을거라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두 사람을 한꺼번에 땅에 묻고 돌아온 날 밤, 보일러를 올리기 위해 무심코 스위치에 손을 대다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묻은 손으로 저만 살겠다고 보일러를 켜는가. 차가운 땅바닥에 20년지기 두 사람들 묻고 저만 따뜻하게 살겠다고 보일러를 켜는 나도 인간인가. 그 후로 8년 동안 단 한번도 보일러를 켜지 못했고 크레인에 올라오기 전날 밤 처음으로 따뜻한 방에서 잤습니다.

2010년, 회사는 다시 432명의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조합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구조조정 중단에 노사합의 했습니다. 그리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400명의 정리해고를 다시 통보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규직들은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하청노동자들은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이 공장에서 3000명 가까이 일자릴 잃었습니다.

왜 막대한 흑자가 난 기업에서 그 흑자를 만들어낸 노동자들만 고통 받아야 하는지 꼭 밝혀주십시오. 경영진들은 경영실패의 책임은커녕 주식배당금에 현금배당에 연봉까지 인상시킨 기업에서 왜 노동자들만 거듭되는 정리해고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반드시 밝혀주십시오.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의하더라도 조합원들의 노조사무실 출입이 허용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역들을 동원해 출입을 막는 회사에 대해서도 밝혀주십시오.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저항하여 외쳤던 구호가 '해고는 살인이다'였습니다. 그 비극이 한진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2003년 합동 장례식을 치렀던 그 참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우리는 일하고 싶다."

해고된 조합원들이 공장안에 있을 때 누군가 크레인 밑에 써놓고 간 구호입니다. 우리 조합원들 일하게 해주십시오. 9개월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거리를 헤매는 우리 조합원들 가정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환노위 국회 의원님들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광복절 66주년 85호크레인
222일차 새벽을 맞으며 김진숙 올림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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