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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했던 '시대의 슬픈 자화상'

기사승인 2011.09.16  1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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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승렬 /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지음 |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0)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처음 이 책의 첫 장을 넘긴 10년 전, 2000년대 초반 때도 그랬다. 가슴 한편이 시리고 아렸다. 경제성장의 뒤안길로 가차 없이 내몰린 사람들의 처절함과 그 처절함을 떨쳐버리기 위한 빈민촌 서민들의 발버둥, 하지만 아무리 발부둥쳐 봐도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

책은 아이들을 통해 바라본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읽는 내내 가슴 먹먹했던 느낌을 준 이 책, 김중미 작가의 아동문학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다. 10년 전 '평범하고 가난한 이웃들에서 감동적인 소재를 찾아낸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TV의 힘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된 경박한 작품' 등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하지만 많은 독자가 소설이 주는 메시지에 호응했고, 아직도 (제목과 내용이)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이 책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10년 만에 책을 다시 꺼내들고 책장을 넘기며 속독으로 줄거리를 상기했다. 잠시 잊고 지낸 쌍둥이 자매 '숙자', '숙희'와 형제인 '동수, '동준이' 등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들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술주정꾼 아버지 때문에 친정에 갔던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처참하게 목숨을 잃는 숙자네, 어머니가 가출한 뒤 아버지마저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간 동수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명환이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숙자, 숙희 쌍둥이 자매와 동수, 동준 형제, 아이들을 돌봐주는 '영호 삼촌', '김명희 선생님' 등을 중심으로 가난한 달동네의 구석구석을 착실하게 그렸다.

 
 
▲ 김중미 저| 송진헌 그림| 창비
'괭이부리말'은 빈민가인 인천 만석동 달동네의 별칭이다. IMF 환란 당시 먹고 살 길이 없어 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난 부모들, 재개발로 집을 잃은 사람들, 경제성장의 뒤안길로 밀린 사람들 등 힘 없고 소외된 이 시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은 괭이부리말에 집약돼 아이들의 눈으로 묘사되고 있다.

만약 이 소설이 어른을 소재로 해 써졌다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괭이부리말은 '노력하지 않은 기성세대와 무능력한 어른들이 만들어 낸 공간' 쯤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의 중심에 아직 나약하고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갈 힘없는 아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성장일변도의 한국사회가 낳은 기형적 공간인 괭이부리말의 부조리는 더욱 사실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빈곤과 성장지상주의가 낳은 병폐, 사회 양극화, 가정해체 등 한국사회가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도 소설 곳곳에 담겨 있다.

「동수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자주 집을 비웠다. 어쩌다 한 번씩은 돈을 가지고 들어오기도 하고, 라면이나 빵을 들고 오기도 했다. 동준이가 집에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때는 그 때 뿐이었다. 대개는 학교에서 먹는 점심 급식이 하루 끼니의 전부였다. 여름방학 때는 무료급식을 하는 교회에 가서 점심만 먹었다」-P.30

「숙자는 선생님한테, 사실은 부채춤 출 때 입을 한복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운동회 때 올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펴 들면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서 일기를 쓸 수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P.52


이 같은 표현을 통해 작가 김중미는 가정해체의 원인을 빈곤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접근했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들, 부모가 떠나자 가출을 하고 일탈을 저지르고 더욱 더 외로움에 치를 떠는 아이들...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이 낳은 한국사회의 병폐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소설은 또 박봉의 도시 노동자 양산에 대해서 일침을 가한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쌀값을 내려 고정하고 올리지 못하게 하는 정책들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의 값싼 노동자로 전락하게 만든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장르는 아동문학이다. 하지만 사실 동화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무겁고 암울한 측면이 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 본의 아니게 희망을 박탈당한 '마음이 가난한 아이들'의 눈에 그려진 사회는 지긋지긋하고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공간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가슴에 희망을 품고 '봄날'을 꿈꾼다. 그 아이들이 꿈꾸는 봄날은 평범하다 못해 너무나 소박하다. 꼬박꼬박 월급 받는 기술자가 되는 것, 좋은 엄마, 아빠가 되는 것,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 등이 아이들이 바라는 봄날이다. 암울한 묘사 속에서도 아이들이 꿈꾸는 봄날을 통해 책의 감동은 피어난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문득 한 NGO가 결식아동을 위해 진행하는 캠페인의 문구가 생각났다.
'미안하다, 얘들아. 오늘은 밥 먹었니'.

2011년,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IMF 환란 이후 10여년이 흘렀다. 그러나 돈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또 다른 숙자와 동준이는 2011년 한국사회를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한 인물이 떠올랐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이라 힐난하며 실시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까지 실시, 제 덫에 걸려 결국 직(職)을 잃은 인물. 책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고 그를 떠올리자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를 비롯해 기성세대 모두는 저 캠페인 문구처럼 여전히 밥 먹지 못하고 경제성장의 어두운 이면 속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기성세대 가운데 사회 주류층에 속하는 일부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모르는 한국사회'라는 이름을 가진 어리석은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이같은 어른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꿈은 피지도 못하는 건 아닌지...'

작가 김중미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대한민국 어른들의 이 같은 자기반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책 속의 길] 35
남승렬 / 대구일보 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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