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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10월 항쟁, 문학적 성과로 결실 맺어야"

기사승인 2011.10.11  14: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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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항쟁 65주년 추모제] "근현대사의 큰 획, '10월'의 역사 제자리 찾아야"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김석범의 '화산도' 같은 문학적 성과가 없다는 것이 '10월항쟁'의 문학적 한계이자 주어진 과제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은 10월 10일 저녁, 대구 강연에서 이같이 말하며 '10월항쟁'에 대한 문학적 연구와 조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염무웅 선생은 "10월항쟁과 제주4.3항쟁, 광주민주항쟁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들은 문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특별법 제정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비롯해 '4.3항쟁'이 국가적으로 부각되고, 명예회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학'이 기폭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의 '10월항쟁 65주년 강연'이 대구YMCA 대강당에서 열렸다 (2011.10.1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10월항쟁 65주년 추모제 및 염무웅 선생 강연회'가 10일 저녁 대구YMCA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와 강연에는 '10월항쟁' 유가족과 한국전쟁 희생자 유가족, 대구경북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작가, 시민을 비롯한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저녁 6시 30분부터 3시간가량 진행됐다.

염무웅 선생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일어난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보도연맹' 사건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그러나 두 사건만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보다는 시각을 넓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총체적인 민족사로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10월항쟁의 경우 최근 학술적 연구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테두리 안에 묶여 근본적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했다"며 "해방 이후 민족운동의 가장 큰 역할을 했던 '10월항쟁'이 후속 항쟁에 비해 지역적 사건으로 축소되고 알려지지 못한 점은 반성하고 따져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여순은 '태백산맥', 4.3은 '순이 삼촌'...대구 '10월항쟁'은?

염무웅 선생은 '제주4.3항쟁'과 '광주민주항쟁'을 비롯한 항쟁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10월항쟁'에 대한 문학적 성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염무웅 선생은 "지난 1978년 '창작과 비평' 편집인을 맡고 있었을 당시 현기영 작가가 '순이 삼촌'이라는 소설을 투고했었다"며 "그 원고를 읽고 굉장한 감동과 흥분을 겪은 한편, '이렇게 감동 깊은 굉장한 작품을 발표할 수 있을까'하고 겁도 났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제주4.3항쟁을 무대로 한 소설 '순이 삼촌'은 예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형상화가 잘 된 작품"이라며 "작품이 발표된 뒤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제주도는 신혼여행지와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었을 뿐"이라며 "이 작품을 통해 젊은 독자들이 '비극의 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10월항쟁' 희생자 유족이 고인들의 넋을 기리며 제단에 술잔을 올리고 있다 (2011.10.1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특히 "여순사건의 경우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라는 작품이 있었고, '4.3항쟁'은 '순이 삼촌'과 김석범 시인의 '화산도', 광주민중항쟁은 김남주 시인의 '학살 1,2'와 김대중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있었다"며 "그러나 '10월항쟁'의 경우 임화 시인이 결성한 '조선문학가동맹'이 지난 1947년 월간지 '문학' 3월 특집호에 시와 소설, 논문을 실어 조명한 뒤 1989년 문학평론가 임헌영씨가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해방 이후 무장투쟁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라는 글을 싣기 까지 40여년 동안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염무웅 선생은 끝으로 "이 같은 문학적 성과가 없다는 것이 '10월항쟁'의 한계이자 주어진 과제"라며 "지역 작가들이 깊은 역사의식을 갖고 '10월항쟁'을 정밀하게 연구한 뒤 태백산맥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문학으로 결실을 맺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염무웅 선생의 강연에 앞서 '10월항쟁 65주년 추모제'가 열렸으며, ▶헌화 및 분향, ▶고유제, ▶추도사, ▶사진으로 보는 10월 그날, ▶시 낭송 순으로 진행됐다.

"학살자 미화에 가슴 아프고 먹먹", "MB정부 최소한 도리와 책임을"

10월항쟁유족회 채영희 회장은 "백만이 넘는 우리 아버지들을 학살한 범죄자이자 부정선거로 장기집권하다 4.19혁명을 통해 심판을 받고 끌려 내려와 망명길에 오른 사람을 세월이 조금 지났다고 해서 '건국의 아버지'니, 동상이니 하며 매스컴에서 미화시키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정말 아프고 먹먹하다"며 "시대를 고발하고 민중의 아픔을 같이 하며 당당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들을 어둠 속에서 건져낼 역사 제자리 찾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나라기강이 똑바로 섰다면 평화로운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어야 할 희생자들의 유골은 전국 골짜기, 폐광마다 널브러져 있다"며 "반성하지 못한 과거는 되풀이 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모두 힘을 모아 근현대사의 큰 획인 '10월항쟁'의 블랙박스를 해독해 나가자"고 말했다.

 
 
▲ (왼쪽부터) 10월항쟁유족회 채영희 회장, 한국전쟁유족회 상임대표 김종현 의장, 한국전쟁유족회 김광호 상임대표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한국전쟁유족회 상임대표 김종현 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그 어느 곳보다 강한 저항을 했던 대구는 서서히 국가공권력으로부터 잔인한 탄압과 말 못할 고통의 피해를 당했고, 결국 가족도 동지도 모두 잃고 다시는 오지 못할 동토의 땅으로 떨어져야만 했다"며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의 도리와 책임을 다해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달래줘 이 땅에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구의 두 얼굴...'10월항쟁'과 '10월유신', 또 다른 비극이요 아픔과 슬픔"

한국전쟁유족회 김광호 상임대표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두 얼굴 '야누스의 10월'을 대구에 심었다"며 "하나는 사람답게 살아보려는 올 곧은 민중의 외침인 '10월항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세월이 흘러 이러한 외침을 야수의 괴성으로 짓누르려 한 '10월유신'이었으니 공교롭게도 두 역사의 주인공이 피를 나눈 한 형제였음은 우리의 또 다른 비극이요 아픔이며 슬픔"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록 무지렁뱅이였지만 불의에 맞서 싸웠던 내 부모.형제의 고귀한 선혈을 헛되게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며 "과거의 잘못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지난 아픔을 털어내고 진일보된 사회로의 발전을 위해 열정을 모아 혼신의 힘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역 작가 고희림 시인과 박서현 시인이 '10월항쟁 65주년 희생자 추모제 및 염무웅 선생 강연회'에서 고희림 시인이 쓴 시 '인간의 문제'를 낭송하고 있다 (2011.10.1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유가족 대표들의 추도사와 '10월항쟁' 사진과 영상 상영에 이어 지역 작가인 고희림 시인과 박서연 시인의 시 낭송도 있었다. 고희림 시인이 직접 '10월항쟁'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기록한 자료를 토대로 지은 시 '인간의 문제'를 두 시인이 낭송하자 추모제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참가자들은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유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시 낭송을 듣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1946년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항의하며 일어난 '10월항쟁'은 10월 1일 대구 도심에서 시작해 12월 중순까지 경남과 전남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대규모 민중항쟁으로, 그 동안 '10월 사건' 또는 '10월 폭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230여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되는 이 항쟁은 6.25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이어져 수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 이날 '10월항쟁 65주년 추모제 및 염무웅 선생 강연'에는 '10월항쟁' 희생자 유가족과 한국전쟁 희생자 유가족,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작가, 시민을 비롯한 150여명이 참석했다 (2011.10.1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9월 8일과 2010년 3월 30일 각각 '대구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과 '대구 10월사건'에 대해 잇따라 '진실규명'을 결정해 발표했으며, 민간인 60여명이 적법 절차 없이 희생된 사실을 확인하고 국가에 책임이 있다며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을 권고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대구교도소 수감자를 비롯한 보도연맹 가입자 2,500여명이 가창골, 경산 코발트광산, 팔공산, 화원 일대를 비롯한 대구 인근 20여 곳에서 학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110만여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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