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부성애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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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강 / 『허삼관매혈기』(위화 저 | 최용만 역 | 푸른숲 | 2007)


 한 며칠, 하루 한 끼의 식사로 버틴 적이 있었다. 오빠들과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 중학교 1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시골에서 상경해 반 지하 자취방에서 오빠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딸의 위치란 아니 여자의 위치란 집안의 남자들이 바깥일을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정도였다. 물론 집안마다의 차이는 조금씩 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양념딸을 그렇듯 보내야했던 부모님은 늘 안쓰러워 하시면서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셨고 나 또한 운명이라 받아들였다. 

시골에서 아버지와 전파사를 하시는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오셔서 쌀과 밑반찬과 간단한 부식거리를 마련해 놓으셨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던 오빠들의 먹성은 30kg의 쌀이 늘 모자랄 정도로 좋았다. 반찬은 물론이고 한 상자씩 사놓는 라면은 거의 이 주일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한 갈망은 참 컸다. 당시 난 30kg을 겨우 넘는 몸무게에 얼굴에는 늘 마른버짐이 펴 있어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아주 볼품없는 여학생이었다. 기성복 교복치마를 몇 번 접어입어도 허리가 휘휘 돌아가 버렸던 작고 깡마른 나는 아침 조회시간이면 빈혈기로 어질어질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생활고가 다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하던 헌혈에서 나는 늘 제외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건강기록부에 영양실조라고 등재돼 있고 피를 뽑기에는 몸무게가 턱없이 모자랐기에 이때만큼은 헌혈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물론 피를 뽑고 난 친구들이 헌혈 후에 먹는 단팥빵과 우유에 군침이 돌기도 했지만 말이다. 자취생의 생활고로 어지럼증을 늘 달고 다녔던 학창시절, 한번은 둘째오빠의 친구들이 대거 자취방으로 몰려와 부엌에 있는 먹을거리를 거의 싹쓸이했다. 엄마가 오시려면 열흘쯤 있어야 되는데 쌀 조금과 라면 서너 개 정도만 남겨졌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우리들은 아침은 그냥 일찍 학교에 가고 점심은 각자 알아서 해결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제 양보다 많은 물을 넣고 라면을 끓여서 밥을 말아 먹었다. 오빠들은 그래도 남자다보니 학교 가서 이리저리 조금씩 보급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말수도 적고 소극적이어서 만만하게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던 나는 하루 종일 굶고 점심때는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거나 빵을 사먹던 옆 짝꿍이 조금 잘라주는 빵조각을 먹거나 했다.

 서설이 좀 길었다. 허삼관을 자꾸만 허심관으로 읽히는 것에 스스로 우습고 놀라며 본 「허삼관매혈기」는 읽는 내내 배고픔과 어지럼증으로 몽롱해있던 학창시절의 자취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30년 쯤 된 내 ‘빈혈의 시기’가 허삼관과 아내, 그 아이들이 겪었던 그것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에서다. 
 
▲위화 저 | 최용만 역 | 푸른숲 
▲위화 저 | 최용만 역 | 푸른숲 

 「허삼관매혈기」는 ‘성 안에 있는 생사(生絲)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 허삼관이 처음 판 피값으로 ‘꽈베기 서시’라는 별명을 가진 허옥란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한 가장의 이야기다. 중국의 공산화와 문화대혁명, 모택동의 집권시절이 허삼관과 가정사의 배경으로 배치됐으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성과 대화를 통해 비극적일 수 있는 일들이 이상하리만치 희극적으로 다가온다.

 첫 아들 ‘일락’이 알고 보니 아내 허옥란의 처녀시절 애인이었던 ‘하소용’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허삼관. 둘째 아들 이락보다 셋째 아들 삼락보다 훨씬 애틋해했던 첫 아들이 실은 다른 이의 자식이라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는 허삼관의 행동은 그 충격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실소가 나올 만큼 철부지 같다.

그에 대응하는 허옥란 또한 자식의 입장은 전혀 안중에 없고 때론 어미로서의 모성이 있나 싶을 만큼 철없이 행동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정작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느끼는 일락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이 친아버지에게 가라는 식으로 가슴 아프게 한다. 

 하지만 일락이 동생들의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같은 동네 아이에게 중상을 입히자 피해자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두 번째 매혈을 하는 허삼관에게서 인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시절 잠시 연정을 품었던 생사공장 동료 임분방과 정을 통하고 그녀에게 줄 뼈와 콩, 녹두 등을 사느라 또 다시 피를 파는 모습. 오랜 가뭄으로 허기진 자식들을 위해 피를 파는 모습은 허삼관이 소심하면서도 진한 인간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생으로 몰린 자신의 처 허옥란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에서도 나타난다. 자식들에게 부도덕한 어미를 비판하게 하지만 이윽고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한 자신의 이야기를 실토하며 결국 자신도 똑같이 부도덕한 사람이니 어미를 미워하면 안된다는 허삼관의 결론은 아버지로서 보여준 현명한 반전이다.

 이후 허해진 몸을 이끌고 농촌의 생산대에 가는 일락과 이락의 생산대장을 위해 연거푸 두 번씩이나 매혈에 나서는 허삼관의 부성애는 간염으로 사경을 헤매는 일락과 추운 날씨에 형을 업고 오느라 폐렴에 걸린 이락을 위해 매혈을 하고, 상하이의 큰 병원으로 옮겨간 일락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목숨을 건 매혈여행에 나서는데서 절정을 이룬다. 가정을 이루던 초반에는 다소 철없던 허삼관이 가족을 위해 자신의 피를 뽑을수록 진한 부성애를 갖게 된 것이다. 붉은 피가 몸 밖으로 흘러나갈 때마다 그의 부성애는 점점 더 커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자식들이 크고 피를 팔지 않아도 생활이 어렵지 않게 됐을 때, 순전히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려 했으나 나이가 많아 피를 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슬픔을 느끼는 허삼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연민이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평생을 생명의 힘이 되는 피를 팔며 가족을 돌봐온 허삼관이 가족을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할 일을 다한 후에 느꼈을 인생무상에 대한 연민이다. 온통 자본의 무게감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들이 휘청거리며 매혈하듯이 집안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도 허삼관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허삼관매혈기」는 이웃나라 중국의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다소 우리와는 동 떨어진 정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난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시대적 상황이나 처한 현실이 비극적인데도 경쾌하게 읽을 수 있도록 희극적 연출과 묘사로 인해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지은이 위화는 서문에서 글쓰기와 독서를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려는 뜨거운 욕망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허삼관매혈기」는 내게도 기억의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어지럼증에 시달리던 학창시절, 가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소 모자랐어도 거르지 않고 생활비를 보내주셨던 아버지. 평생을 변변한 여행도 못하시고 늘 전파사 한  켠에서 전자제품 수리를 하시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니 그 원망의 순간이 죄스럽다. 자식들이 생활고에 가급적 시달리지 않도록 나의 아버지도 허삼관이 매혈하듯 누에고치처럼 자신의 한 생에서 노동의 실을 뽑아내셨을 것이다. 당신의 것을 다 뽑아내시고 세상을 뜨신 아버지가 그립다.

 

 
 

 

 

[책 속의 길] 39
권미강 / 수필가
인터넷방송 라디오인(http://www.radioin.kr/) '시시한 여자'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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