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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비수

기사승인 2011.10.21  10: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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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호성 / 『기억과 상식』(김진국 | 한티재 | 2011.10)


 평화뉴스에 <시·서·화가 있는 집-서류당>을 연재해온 김진국 님이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지난 10년 동안 한겨레와 영남일보, 평화뉴스를 비롯해 여려 매체들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엮은 비평칼럼집으로서 책 제목이 ‘기억과 상식’이다. 눈에 확 띄는, 머리에 오래 남지 않는, 밋밋한 제목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굳이 이런 제목을 달았는지 그 낌새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세상과 독자들에게 지난 10년의 일들을 ‘기억’하라고 외치고 싶고, 그 일들을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고 고쳐나가자는 주장하고 싶은 마음을 압축하여 ‘기억과 상식’이란 타이틀을 고집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 『기억과 상식』(김진국 | 한티재 | 2011.10)
 저자는 여러 방면의 문제에 대하여 메스를 들이대었다. 먼저 그의 신상을 털어 보자. 신경과 의사로서 대구적십자병원에 근무했고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공동대표를 지냈다. 지금은 경산의 작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 약력이 여러 방면의 문제에 메스를 댄 까닭을 말해주거니와,  요는 그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메스를 대는 방법이 기득 세력  내지 보수세력과는 ‘다르다’는 점이요 그들보다 ‘바르다’는 점이다.

사실 상식 선에서 보면 저자의 생각과 판단이 별반 남다르지 않고 유달리 바르다고 박수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상식 이하 혹은 상식 이상의 세상이고, 작금 권세를 잡고 있는 정치세력과 경제세력과 언론세력이 삼위일체가 되어 짝짜꿍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저자의 발언은 기득 세력 내지 보수세력과는 다르고 바르게 보일 뿐이다. 

 이 책은 제 1 부 ‘연민을 넘어,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제 2부 ‘과학기술과 환경, 생명, 윤리’, 제 3부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한 성찰’, 제 4부 ‘민주주의, 선거, 언론’ 등으로 엮어졌다. 이 중 제 1부와 제 4부에 대하여 주목해보자. 제 1 부에는 생활고에 허덕이다 죽어가는 어린 생명에 대한 연민, 늙고 병들어 거추장스런 존재가 된 노인들에 대한 연민, 아기 울음소리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농촌에 대한 연민이 스며있다. 저자는 문학소년 같은 감성으로 연민을 보이면서도 그냥 연민에 그쳐서는 안 되며 힘 있고 가진 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국가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관심을 쏟고 예산을 마련하고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사회에 속한 인간의 가치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인간은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기업하기 좋은 도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못 만들어 안달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노년은 개발과 성장의 장애물이요, 서둘러 한편으로 치워버려야 할 실용성 없는 폐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우선은 노인층에 대한 복지수준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인복지의 확충은 노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젊은 사람들과 그 다음의 미래세대까지의 복지를 위한 것이란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건강보험제도가 사회보험으로 공공부조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의 공평한 부과와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건강한 사람이 병약한 사람에게,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게 지원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그런데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당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이명박 후보의 월 건강보험료가 기껏 1만 6천 원대였다.>

<지금 창궐하고 있는 암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낸 병이다. 당연히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을 떠맡는 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 4부를 읽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소위 말하는 조중동 언론이 활개를 치는 나라에서, 하늘길과 뱃길이 막혀서인가 앞뒤 아래위 모두 꽉 막힌 도시요 한나라당 일색이 대구와 대구 사람들 속에서, 좀 다른 소리 혹은 좀 바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대구 언론의 풍토와 여론 속에서, 저자가 민주주의와 선거와 언론에 대해서 날리는 필설은 시원하다. 청량하다. 통쾌하다. 섬찍하다. 박수를 유도한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던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란 판결이 내려진 데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기획된  된 것은 온 나라가 서울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잘못된 관습 때문에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이 도저히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많은 국민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봉건신분제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저술된 ‘경국대전’까지 끌어들여 서울 중심의 관습이 함부로 고칠 수 없는 헌법과도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국민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이 되었다. 어떤 체제나 국가를 막론하고 영원불멸의 관습법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시민)의 저항권이다.>

저자가 힘 있는 사람들, 가진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메스는 비수처럼 시퍼렇다.

 
 
▲ 김진국
<끈 떨어진 정치인들에게는 강의나 하면서 부활의 기회를 갖도록 배려해주고, 유력 정치인들에게는 단 한 번 강의에 수 천 만원의 강의료를 지불하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믿는 대학의 총장님들이 이 나라의 대학들을 점점 그들만의 천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분들만의 천국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비용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우리나라 권문세도가들의 범법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관용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술 취한 국회위원이 공개된 자리에서 여기자의 젖가슴을 만지더라도, 술 위한 유명 농구감독이 휘하의 여자선수를 성노리개로 삼더라도 관용의 은전을 베푸는 것이 바로 이 나라의 법이다. 하물며 국가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재벌그룹 회장의 경우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어떨까를 보자.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을 비관과 절망의 심정이 겹친 자포자기에서 나온 선택이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패장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죄를 처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골라서 죄를 덮어씌우고, 그나마 그 죄에 대한 처벌 또한 법의 의한 처벌이 아니라 여론의 돌팔매질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을 짓이겨 놓는 검찰의 범죄적 수사방식에 대해 무기력한 피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운영위원인 저자가 보는 언론관은 정확하다. 그는 선량한 시민들이 언론에 휘둘리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언론개혁에 동창하라고 촉구한다.

<1987년부터 권력의 예속에서 풀려난 언론은 권력과 대등한 관계에서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한 것이 아니라, 선거가 거듭되면서 권력이 오히려 언론에 예속되었다고 할 만큼 언론의 힘이 점점 커져왔다. 쿠데타도 혁명도 더 이상 불가능한 듯한 지금의 정치 환경에서 선거는 물론 정책 수립 집행과정에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론이다. 여론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민일진대 언론의 가공과 포장 과정을 거친 뒤 시중에 유포되는 여론은 늘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숨 가쁘게 바뀌어가는 여론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확신과 신념이 흔들리게 되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대구사회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절망의 도시로 변해가는 데에는 지역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지역의 언론이 개혁되지 않는 한 대구의 유권자들은 앞으로도 힘들게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봐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정한 여론경쟁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을 사회의 공기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으로 총칼을 물리쳤듯이 여론의 주체인 국민들이 언론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할 일일 것이다.>


 저자는 여러 방면의 문제를 메스로 파 헤쳐 환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다음 절대 체념하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우리 함께 뭉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외친다. 선거를 통해 문제를 고쳐나가자고 웅변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 합리적인 회의주의다. 의심은 관심에서 출발하고, 관심은 곧 행동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의 사회에서 주권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최소치는 바로 투표이다. 이 세상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상식의 힘이요, 그런 상식의 연대일 것이라 믿는다.>

 메스를 든 칼럼리스트 혹은 시사평론가인 김진국 님이 대구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의 글이 대구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면 대구에 변화의 바람이 불 텐데 하는 희망과 그렇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갖는다. 평소 때맞춰 읽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한 몫에 읽으면서 박수를 거듭 거듭 보냈다.  그의 메스는 한국 사회의 환부를 도려는 비수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 아니다. ‘메스는 펜보다 강하다.’

 
 





[책 속의 길] 40
우호성 / 언론인. 전 경향신문 영남본부장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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