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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자유로운 언론

기사승인 2011.11.11  09: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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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민 /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 서해문집 | 1999)


    평화뉴스의 부탁을 받고 언론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12년 전 스치듯 읽었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빛바랜 책이지만 지금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그 책의 내용이 지금 우리 언론의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함없이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의 맨 뒷장에는 내게 선물을 준 지인의 이름과 함께 1999년 11월 23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그 지인은 내가 언론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선물로 주노라고 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나의 인생 행로가 달라졌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 지수희 옮김 I 서해문집 | 1999)
    이 책은 '사실주의 문학의 위대한 선구자'로 불리는 19세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당대 저널리즘을 독설로 풍자한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시대와 공간이 1800년대 중반의 프랑스라는 점만 빼고는 지금의 대한민국 얘기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200년 가까운 시간 차이, 선ㆍ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이냐의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지금의 언론 현실을 보면 언론계 종사자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은 발자크가 소설 쓰기만으로 돈벌이가 안 되자 작은 신문사를 차렸다가 재미를 못 본 뒤 자기를 비판하는 저널리스트들을 염두에 두고 한풀이를 하기 위해 쓴 것이긴 하지만 그런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메시지는 지금 대한민국 언론에도 날카로운 비수로 꽂힌다.


    - "만약 지금 언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한다" -

    정치 저널리스트(1부), 비평가(2부)로 나뉘어진 이 책에서 발자크는 제1부의 첫 항목인 신문기자 편의 첫 단락부터 비수를 날린다.

    '사장, 주필, 사주 겸 편집장들은 항상 네 가지 직함과 네 가지 얼굴 중 하나를 내세워 자본가와 사업가, 투자가와 가까이 하고 있으며, 아무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모든 일에 관여한다'

    형식상 우리나라 언론은 신문(방송 포함 모든 언론)사 사장이 주필과 사주, 편집장을 겸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실제로는  역할이 뚜렷하게 분화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군소 신문사나 인터넷언론 등은 경영상 불가피하게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적지 않지만 소위 메이저라고 하는 큰 언론사들도 형식상 분리돼 있을 뿐 실제로는 실권자인 사주나 사장을 중심으로 편집 관련 고위 간부들까지 가세해 자사 이익을 위해 일심동체가 되다보니 누가 경영자고 누가 언론인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발자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대체로 신문사 사장은 자신에게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을 시기해 곁에 두려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아첨하는 능력없는 사람들과 신문을 싼값에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런 이유로 파리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신문은 항상 사라지게 돼 있다'

    이는 신문(언론)이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재능있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지혜를 짜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얘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아첨꾼들에 둘러싸인 사장이 군림하고 있는 언론사가 적지 않음에도, 사라지기는 커녕 질기고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으니 이같은 미스터리가 또 있을까 싶다.

    이런 미스터리는 그러나 발자크가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언급한 신문 구독자(언론 소비자)의 행태를 살펴보면 쉽사리 풀릴 법하다.

    '구독자들은 자신이 보는 신문이 저지르는 행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신문이 항상 증오의 대상을 바꾸고, 말도 안되는 이론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도 다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문을 읽고 정기 구독까지 한다는 사실은 자기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집착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으며, 도저히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발자크가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 파리의 신문들이란 게 요즘으로 말하면 특정 정당의 홍보지였다는 점에서 지금의 언론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겠지만 발자크의 주장은, 권력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논조가 왔다 갔다하는 요즘의 신문, 방송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꿰뚫는 그의 혜안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발자크는 그리 길지 않은 이 책에서 신문기자, 정치인 겸 기자, 풍자 작가, 공허한 관념론자(대중 선동 작가), 장관 집착형 정치 저널리스트, 단 한 권의 책을 평생 우려먹는 작가, 번역 작가, 소신있는 저술가 등의 작은 제목으로 당시 언론 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특성과 기질을 풍자와 독설로 풀어나가고 있다.

    대목 대목 무릎을 치게 만드는 그의 열변 가운데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이제 파리 신문의 사설에는 의회 연설문의 상투적인 표현법처럼 틀에 박힌 문장들만이 있을 뿐이다.어느 누구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우파 신문이든 좌파 신문이든 마찬가지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언론도 언론의 자유라는 말에 부응할 만큼 자유롭지가 못하다. 말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고,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건도 있다. 파스칼이 그토록 비난했던 예수회도 언론보다는 덜 위선적이었다. 요즘의 언론은 그저 힘없고 고립된 사람들을 향해서만 자유롭게 말하고 있다.'

 
 





[책 속의 길] 43
김용민 / 연합뉴스 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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