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박원순 VS 이명박, 민심을 대하는 두 가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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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의회 의결권, 민심에 반하거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한다면 재고해야"


 지난 9월 6일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불출마 의사를 밝힐 때 내 귀를 확 트이게 하는 말이 있었다. 안철수 교수는 수줍고 긴장된 표정으로 “어느 누구도 민심을 쉽게 얻을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삶의 경험에서 ‘사람은 오래 지내봐야 안다’는 기준을 세운 나로서도 안 교수의 이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민심을 쉽게 얻은 자는 민심을 쉽게 저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안 교수의 이 말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향한 민심의 지지에 대한 겸손이기도 하며 정치인들에 주는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안철수 교수에 대한 지지는 단순한 ‘팬덤문화’가 아니라 기성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인물을 열망하는 대중들의 요구가 안철수 교수에게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지율 50%를 넘어 고공행진을 하던 안 교수가 지지율 5%인 박원순의 진정성과 능력 미래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며 물러선 것은 승자독식의 비정한 한국사회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다. 대중들은 또 한 번 그의 ‘20분 대화’와 ‘쿨한 양보’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안철수-박원순 단일화를 ‘강남좌파의 야합쇼’라고 폄하하고 공격했다. 한나라당은 민심을 읽지 않거나 못하거나 재보궐선거에 눈이 멀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멋진 양보에 우리 정치권이 배워야 할 것이라는 논평을 낼 수는 없었을까?

<한겨레> 2011년 9월 7일자 1면
<한겨레> 2011년 9월 7일자 1면

 중국 사상가 순자(荀子)는 민심의 흐름을 재주복주(載舟覆舟)로 일컬었다.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엎기도 한다’는 고사성어다.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임금을 해칠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87년 대통령 직접선거제 재도입 이후 600만 표라는 최대의 표차이로 당선되었다.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BBK논란, 전과 19범 등의 도덕적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들은 그를 압도적 표차이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얼마 전 '나는 꼼수다'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말할 것처럼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도덕적 흠결을 몰라서가 아니라 ‘경제를 살려 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그런 민심이 이명박 후보에게 향한 것이다.

 집권 100일도 되지 않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광우병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한 대규모 촛불저항을 맞았다. 경제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이 ‘이명박 호’가 제대로 항해하기도 전에 뒤집어엎을 기세로 저항한 것이다. 성난 민심에 대통령은 모든 정책결정과 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리더쉽을 보이기는커녕 명박산성을 쌓고 촛불집회 자금을 조사하라며 고립을 자초했다. 그 이후로 민심은 MB를 서서히 떠났고 급기야 MB는 자신의 정권이 역대 가장 도덕적인 정권이라는 웃지 못 할 발언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장관인사 청문회에 불법 탈법을 일삼은 자들만 골라서 올라오는 것을 본 국민들이 비웃음 짓는 것을 알기나 한 것일까 심히 의문이다.

 안철수를 지지했던 민심은 그대로 박원순에게 옮겨갔고 결국 서울시장으로 당선시켰다. 출근 첫날부터 집무실로 가지 않고 민원실을 방문하며 격려한 것, 무상급식 첫 서명에 학부모들의 기쁜 소식에 들려오고, 서울시장에게 바란다는 포스트 잇 가득담긴 초호화(?) 집무실,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예산안 직접 브리핑 까지 ‘박원순 호’는 수능재주(水能載舟)해준 서울시민들의 순풍을 받아 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것을 박원순이 2주 만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 국회비준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다시 민심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SNS 등을 통해 한미FTA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여당이 강행처리를 조금씩 미루고 있는 것은 그나마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초강력 역풍을 맞을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한번 선출되었다고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회와 행정부에게 의결권한이 주어져 있지만 이것이 민심과 반하는 것이거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한다면 재고해야 한다. 미국과의 약속보다 우리 국민의 행복한 미래가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정부 여당이 지금처럼 계속한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역능재주(亦能覆舟) 당하지 않으란 법이 없다.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자리
그게바로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다........


 한글창제를 한 세종대왕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한 명대사다. 이 말이 민심을 섬겨야 할 청와대와 정치권에게 각인되기를 바란다. 민심은 다양하지만 어느 순간 큰 물주기를 이루고 그것이 하나로 만나 강물처럼 흐르게 되면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민심이 천심이다.





[오택진 칼럼] 1
오택진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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