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영혼, 참다운 삶을 향한 열정과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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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곤 /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저 | 김경온 역 | 두레 | 2005)


몇 달 전 이었다.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냥요. 좋은 세상은 안 올 것 같아서요’ 다소 막연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 말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통합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전망이 불투명했다. 나는 길을 묻는 이에게 전처럼 자신있게(?) “이렇게 하는게 최선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느 쪽도 흔쾌히 따를 수 없는 길을 만들어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후배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답을 보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씨뿌리고 나무를 키우는 이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문명 비평가이자 자연 생태주의자인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가 20년에 걸쳐 다듬고 다듬어 완성한 작품이다.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표된 이래, 문학 작품으로, 환경 생태와 정신교육자료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히고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아도 우리의 삶과 현실을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를 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세나 태도의 문제로 다가왔다.
 
장 지오노 저|김경온 역|두레|2005
장 지오노 저|김경온 역|두레|2005
작품의 배경은 1910년 프랑스 남부 오트 프로방스 지방의 산악지대 황무지다. 화자는- 지오노 자신이기도 한- 야생 라벤더 외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 도보 여행 중 우연히 한 양치기를 만난다. 그는 거의 말이 없었지만, 자신에 차 있고 확고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황무지에 홀로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또한 너도밤나무 묘목을 기르고, 습기찬 골짜기에 자작나무를 심는다.

화자가 그로부터 5년 뒤 그를 찾았을 때 놀라운 변화를 목격한다. 부피에는 전쟁(1차세계대전)에도 흔들림없이 나무를 심고 가꾼다. 황무지는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개울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 기적같은 결과에도 관심없이 단순하게 자신의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할 뿐이다.

“그동안 나는 그가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열정이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절망과 싸워야 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인격을 가진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홀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해나갈 때 우리는 많은 시련을 겪게되고 그것에 절망하기도 하고, 철저하게 고독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고독은 절망을 넘어서는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일상을 사색하고 관찰하는 것, 자신의 길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물음을 통해 자아를 담금질 하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이럴 때 고독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향한 열정이 될 것이다.

“평화롭고 규칙적인 일, 고산지대의 살아 있는 공기, 소박한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이 노인에게 놀라우리만큼 훌륭한 건강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하느님이 보내준 일꾼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일상은 참다운 삶과는 거리가 멀다. 약육강식의 시장논리에 내 몰린 채 경쟁과 효율의 전쟁터를 누빈다. 온갖 공해와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려 몸은 점점 병들어 간다. 간소한 생활, 영혼의 고양을 위한 삶, 자연의 생명력과 호흡하는 삶의 방식이 주는 내면의 평화는 어떻게 해야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멋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부피에는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해 간다. 화자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1945년, 그의 나이 여든일곱살일때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마을은 난폭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희망이 없는 삶에 지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러나 부피에의 고결한 인격과 끈질긴 노력, 열정은 기적을 일궈내고 있었다. 숲은 자연의 복원과 함께 마을에 젊음과 활력, 밝은 웃음과 건강을 가져다 주었다. 행복과 희망이 찾아온 마을로 변해 있었다. ‘희망을 심고 행복을 가꾼 사람’은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가 살아온 고결한 삶을 보통 사람들이 실천하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인생전체를 매순간 부피에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신념, 명예·권력·부에 얽매이지 않는 삶,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하기란 불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는 많은 부분을 현실과 타협하고 변명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인간의 영혼 속에 이기심과 욕망만이 가득차 있는 건 아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인간의 마음 속에는 표면에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많은 이상적인 의욕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희망, 가치있는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키려 분투하고 있는 이 시대의 ‘부피에’가 도처에 있음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그들의 노력이 많은 난관에 부딪혀 있음을 본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탁월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프레데릭 바크의 말을 빌려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작품은 헌신적으로 자기를 바쳐 일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무를 심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주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자신의 노력이 헐벗은 대지와 그 위에 살아갈 사람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대지가 천천히 변해 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큰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책 속의 길] 48
이춘곤 / 자영업.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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