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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에서 길을 찾자

기사승인 2011.12.23  0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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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식 / 『중용, 인간의 맛』 (김용옥 저 |통나무 | 2011.09)


 도올이 12년 만에 자사의 중용을 해석한 “중용, 인간의 맛”을 들고 EBS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던 날, 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다. 그는 ‘인류 지혜의 古典조차 강의 못하게 하는 사회, 이 땅의 깨인 사람들아! 모두 투표장으로 가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있었다.

 
 
▲ <경향신문> 2011년 10월 27일자 12면(사회)

 EBS에서 36강을 강의하기로 했는데, 느닷없이 방송중단 통보를 받은 것에 격분했던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팬(?)을 확보한 대중적 지식인인 그의 시위는 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방송했을까 궁금해서 바로 책을 주문하고, 방송 사이트로 지난 강의를 들어 보았다. 중용의 의미를 알기 쉽게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격정적 몸짓을 섞어가며 강의하는 모습 외에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내용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책에서 그는 직설 화법으로 단호하게 현 정권을 비판했다.  
“현재의 대북한 정책은 중(中)과 화(和)의 원칙을 위배하는 중용의 정치를 실종한 것이다.”,“4대강정비사업이나 운하사업은 극소수의 특정 리더십에 의한, 대중의 의견과 전문가의 판단을 무시하는 막가파적인 강행, 이런 것을 중용은 “무기탄(無忌憚)의 정치”라고 규정한다.“.”공자는 합리적인 예(禮)에 근본하지 아니하는 자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회를 “앙(殃)”, “재앙의 사회”라고 불렀다.“ 특히 그는 나꼼수에 출연하여 “단군 이래 이런 지도자는 없었다. 전 국토가 파헤쳤다, 연산군도 이렇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초강수로 대통령을 비판했다. 속 시원한 말이긴 했지만 권력 앞에 알아서 기는 소인배(?)들이 이런 도올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였을 것이다. 
 
 결국 그의 투쟁(?)으로 방송강의는 재개되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애청자이자 독자가 되었다.

 중용(中庸)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작품이다. 자사는 공자처럼 젊은 시절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많은 체험을 쌓았고, 고난을 겪었다. 말년에 노나라에 돌아와 큰 스승으로 대접을 받았는데, 자사의 제자 계열에서 맹자가 나왔다. 최근 고분묘에서 많은 죽간 자료가 발간되어 그의 실존성이 더욱 인정을 받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중용이 맹자, 순자, 장자, 묵자, 여씨춘추 등의 서적에서 논의된 주제들을 추상하여 성립되었다고 보았으나, 오히려 중용이 먼저 성립되고, 그것에서 맹자, 순자 등 자사의 제자들의 책이 나왔다는 것이 정설로 되었다. 이는 중국의 선진 문명을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중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중용, 인간의 맛』(김용옥 저 |통나무 | 2011.09)
 도올은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철학 지식으로 중용을 재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동양 철학의 우수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을 북돋우고,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세계사적 흐름에서 우리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지금 세계는 미국에서 중국, 즉 서구문명에서 동양문명으로의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자본주의에 포섭된 중국이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되면 세계가 불행해 진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한국이 남북화해와 교류를 통하여 인류문명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중국문명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지 못하면, 존립조차 어려운 한비자의 한(韓)나라와 같은, 매우 초라한 소국이 되고 말 것이다.” 고 하며,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중용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고 확신한다.”고 하여 한국민이 중용에 진지하게 접근해 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도올은 자신은 진보도, 보수도, 자유주의자도, 평등주의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중용주의자도 아닐뿐 더러, 단지 중용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고 한다. 중용은 중간(中間)이나 중도(中道)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도우파’니 ‘중도좌파’니 떠드는 것은 여론에 따라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정치 모리배 들이나 하는 짓이다.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라면 비겁하고, 줏대 없고, 눈치만 살피는 소인배에 불과하다.

중용은 극좌와 극우까지를 함께 포섭한다. 남한과 북한을 포섭하고, 중국과 미국을 포섭한다. 재벌과 중소기업을 포섭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섭한다. 남과 여를 포섭하고,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포섭한다. 개인과 조직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이웃을 살피지 못하는 각박한 삶을 해방시키려면 중용을 실천해야 한다. 분출하는 시민의 욕구를 담기 위해서도 이런 중용의 정치 그릇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서구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실체와 현상을 분리시켜, 신과 인간을 단절시키고, 육체와 정신을 단절시키고, 자연과 인간을 단절시키고, 인간과 인간을 단절시켰다. 우리 사회 갈등의 근저에는 철저하게 이원론적 사고가 작동하고 있다. 심지어 화해도 어느 한 쪽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을 때 가능하고, 봉사도 부족한 쪽이 손을 내밀어야 이루어진다. 부자와 강대국의 축적과 침략이 정당화되고, 빈자와 약소국은 무능력의 대가라 손가락질 한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실체와 현상은 하나라는 데서 출발한다. 동양은 인간을 긍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어떤 종교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인간, 자연, 신이 통합되며, 지속을 추구함으로 현실적이다.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의 부정형을 한층 명료화하여 자사는 “시저기이불원 역물시어인(施藷己以不願 亦勿施於人)”이라 했다.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 보아서 원치 아니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동양식 황금률이다. 예수의 황금률이라고 인용되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이것의 긍정문인 “기소욕 시어인(己所慾 施於人)”이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먼저 베풀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사랑의 윤리처럼 들리지만 인류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쳐온 대표적인 사례이다. 왜냐하면 내가 원한다고 상대방이 반드시 그것을 원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서구와 미국의 제국주의 형태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의 불행은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원한다고 일방적으로 해 주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봉사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내가 원한다고 무조건 요란스럽게 베푸는 것은 자기 만족을 위해 이웃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연인관계를 지속시키는 좋은 방법도 먼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상대방이 꼭 좋아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도 무조건 나를 사랑하라니, 내가 당신을 긍휼이 여겨 먹을 것을 주니, 당신은 무조건 고맙게 받기나 하라니, 이보다 더한 고통, 모멸이 어디 있는가?

 안회는 공자가 매우 사랑한 제자였다. 공자 보다 30세 연하인 안회는 공자가 유랑생활을 하던 14년 동안 단 한 시도 공자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실로 수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공자가 자리를 잡아 편안한 생활만 남아있던 때에, 안회는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버렸다. 공자는 안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 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는 구나.”하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중용에서 공자는 안회의 사람됨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안회는 항상 중용을 택하여 하나의 선이라도 깨닫게 되면 그것을 진심으로 고뇌하면서 가슴에 품어 잃어버리는 법이 없었고, 또한 안회는 중용을 실천함에 있어 반드시 3개월을 채우지만 나는 1개월도 가지 못한다.”고 했다. 평생을 함께 한 제자를 한 순간에 내치거나,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싶으면 바로 용도폐기하거나, 연구 결과를 빼앗거나, 똑똑한 제자는 더 이상 크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견제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제자를 방패막이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공자의 애절한 제자 사랑은 깊이 새길 만하다.

 한편 중용은 부부지도(夫婦之道)를 우주 생성원리의 근본으로 본다. 생명의 근원이 부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만약 부부에 의한 생명생산이 한 세기만 중단된다면 인류 역사는 종말을 고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군자지도(君子之道)는 부부에서 조단(造端)하는 것이니, 그것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하늘과 땅에 꽉 들어차 빛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부부가 불협화음이 전혀 없이 평생을 지속하는 것은 성인도 못하는 일이다. 오히려 부부관계의 무리한 지속이 중용적 가치의 가장 심각한 시험처라고 중용은 말한다. 그리고 명백히 중용에서 부부는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벌써 중용은 남성과 동일하게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중용의 부부예찬은 세계 문명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미국에서도 1920년이 되어서야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성에 대한 중용의 관점은 실로 진보적이고 놀라운 것이다.

 졸고를 집필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정부가 고민 끝에 북한 주민에게 위로의 뜻을 밝히고, 답례 차원에서의 방북 조문만 허가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중국과 미국의 조문외교에 눈치만 살피고 있다 한다.

 아, 이 중요한 시기에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및 북한까지 포섭하여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중용을 실천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등고자비 행원자이(登高自卑 行源自邇), 높은 곳을 오르려면  낮은 데로부터 하고, 먼 곳을 가려면 가까운 데로부터 하라)”고 했다. 높고, 길게 보고 대륙을 호령했던 선조들의 통 큰 중용의 정치는 어디로 실종했는가?  

 
 





[책 속의 길] 49
문창식 / 간디문화센터 대표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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