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노숙인의 힘겨운 겨울나기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 입력 2012.01.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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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의 밤..."아프고 춥고 일감 없는, 지금이 제일 힘든 때"

 

인적 드문 대구역 뒷골목. 저녁 7시부터 무료 급식을 먹기 위해 노숙인들이 모였다. 가져온 신문지나 돗자리를 깔고 앉아 급식을 기다린다. 눈을 마주치지도,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

저녁 8시 30분 배식이 시작됐다. 한파가 다시 찾아온 10일 저녁도 노숙인들은 '한 끼'를 위해 줄을 섰다. 이날 저녁에는 170여명이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지난 해 11월-12월 평균 220여명 보다 50여명 줄었다.  김무근 칠성 자율 봉사대 대장은 "평균 200명이 찾는다"며 "사람 수가 줄었다고 경기가 나아지거나 그 사람들이 집으로 간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저녁 8시쯤 대구역 뒷편 광장에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저녁 8시쯤 대구역 뒷편 광장에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광장 곳곳에는 눈이 남아 있었다. 역과 백화점 뒤로 생기는 그림자 때문이었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얼어있는 눈뭉치. 이곳에서 노숙인들은 먹고, 자고 있었다.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분홍색 목도리를 동여맨 할머니는 "나도 잘 몰라. 저 할머니가 오자고 해서 왔어. 만날 밥 주지. 니도 내일 온나"라며 다정히 말했다. 할머니는 "주변 쪽방에서 3일째 온다"고 얘기했다.

자원 봉사자 이옥희(59, 비산동)씨는"겨울이 되면 쪽방촌 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겨울 난방비용과 방세로 평균 20만원을 내면 식사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녁 8시쯤 대구역 뒷편 광장에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저녁 8시쯤 대구역 뒷편 광장에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이어 김무근씨는 "(노숙인들 중)장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많다"며 "아프고, 겨울이고, 일용직도 못 구하는 지금이 제일 힘들 때"라고 얘기했다. 1998년 5월부터 무료 급식소를 운영해 온 김무근씨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많이 겪었다"며 "그동안 내가 치운 시신만 1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저녁 8시 25분. 앞줄에 선 사람은 배식 시간이 다가오자 "밥 놓고 제사 지내나. 언제 밥줘?"라며 봉사자에게 농담을 걸었다. 이 날 봉사단체 '낙동로타리'의 봉사자는 "저 사람은 개근상 받아야 돼"라며 "서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안다"고 친근함을 표현했다.  

 

큰 밥솥과 국솥이 들어오자 봉사자들은 분홍색 앞치마를 입고 배식을 시작했다. 흰 그릇에 밥을 퍼 담고, 배추김치를 올려주고, 쇠고기뭇국을 부으면 한 끼가 완성됐다. 배식은 빠르게 진행됐다. 사람들은 그릇을 들고 광장에 서서, 벽에 기대서, 지하철 입구에 쪼그려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모두 그릇에 얼굴을 묻은 채 씹지도 않고 국과 밥을 들이켰다. 광장 주변에 후루룩하는 소리와 콧물을 훌쩍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5분'이면 그들의 저녁 식사는 끝났다.

'왜 이렇게 빨리 먹느냐'고 물어보자 "빨리 먹고 가야 피해를 안주지...내일 또 올낀데"라며 한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남은 음식을  음식 쓰레기통에 버렸고, 그 옆에 그릇을 쌓아 놨다. 곧 컨테이너박스 옆에 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자신이 흘린 음식물을 치웠다. 이것이 여기 규칙이라고 했다.

▲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한창 배식중인 봉사자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한창 배식중인 봉사자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국이 맛있다"며 한 그릇 더 먹는 사람도 있었는가 하면, "왜 이렇게 짜냐", "맛이 없다", "적다"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저녁 이들이 먹은 음식량은 밥 솥 4개 250인분이었다. 배식을 하던 봉사자들은 "오늘따라 밥이 왜 이렇게 잘 팔리냐"며 웃기도 했다.

"와이래 늦게 오노. 자슥아"봉사자 한명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청년을 향해 말했다. 배식이 20분 정도 지난 뒤 도착한 그는 "늦게까지 자제를 옮기다 늦었다"며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배식을 받았다. "처음 오는 사람은 줄 안서도 그냥 줘"라며 봉사자들이 얘기했다. 이어 "2번 이상 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라고 얘기했다.

▲  서서, 쪼그려 앉아서, 벽에 기대서 밥을 먹는 사람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  서서, 쪼그려 앉아서, 벽에 기대서 밥을 먹는 사람들(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9시가 되자 배식은 끝났고, 준비된 음식도 바닥이 났다. 노숙인들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각자의 길로 사라졌다. 지하철역 안으로, 대구역 안으로, 모텔 주변 골목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잠잘 준비를 했다. 롯데백화점 지하철역 입구. 가지고 있던 돗자리를 이불삼아 자리를 마련하던 한 할아버지. "여기가 내 자리다. 11시면 히터 꺼서 좀 춥다. 그래도 나가라곤 안했다"며 "한 달째 여기서 잔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얘기하던 중 국방색 옷을 입은 남자가 옆자리에 신문지를 폈다. 그는 돌아누워 바로 잠을 청했다.

지하철역에서 잠잘 준비를 하는 노숙인(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지하철역에서 잠잘 준비를 하는 노숙인(2012.1.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낡은 점퍼와 털모자,  끝이 닳은 코르덴 바지, 물빠진 코트, 동여맨 목도리. 사람들의차림새도 연령도 다양했다. 20대 청년에서 70대 노인까지. 한편,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김무근씨는 "몇 년 전까지 있었는데, 새끼 딸린 친구들은(노숙인) 먹고 살려고 노력하더라"며 "자립해서 인사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흐뭇하게 말했다. 덧붙여 김씨는 "뜨끈한 밥 한술 먹고, 내일은 힘내서 일하고, 자립하는 것"이 봉사의 이유라고 얘기했다.

대구시에서 지원하는 무료급식센터 46개중 노숙인을 지원하는 곳은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시 복지과는 "모두 노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정책적으로 노숙인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곳은 없다"고 답했다. 대구역에 있는 '노숙인무료급식센터'를 비롯한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는 개인이나 봉사단체가 제정지원을 하거나 일반시민들의 성금을 통해 운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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