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처럼 역병이 돌았다. 아니 역병처럼 괴담이 돌았다. 아니다. 역병과 괴담이 따로, 아니 함께 돌았다. 이도 아니다. 명백한 실제의 상황을 괴담으로, 단지 역병으로만 치환하는 거대한 철벽이 돌았다. 어떤 진실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는, 어떤 진실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는 권력과 돈, 피로 칠갑한 입 씻는 막무가내가 돌았다. 이토록 무지막지한, 무지막지한
몰락의 에티카 한적한 시골 야산 구석이 ‘개판’이 됐다. 마을과는 한참 떨어진 이곳에 어느 날 움막이 들어서더니 사내는 철망을 치고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유기견을 잡아다 오는지 개는 금방 불어났다. 저들끼리 교미하면서 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개우리는 좀 더 커져서 산을 파고들었다.개 짖어대는 소리는 정말 장
역사학자 한홍구는 “한국 현대사는 죽음조차 죽여버린 잔인한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80년대 민족민주운동의 원천은 분명 광주였다. 처절하게 패배한 싸움인 광주가 왜 한국의 민주화운동사에서 독보적인 규정력을 갖는 것일까? 그 답은 죽음에 있다. 광주를 통해 죽음이 우리 곁에 온 것”이라고 했다.죽음은 더 오래 전
숨을 쉬기가 어려워요.폐에서 물 좀, 물 좀, 빼주세요.숨 막혀서 못 견디겠어요.도와줘요, 제발.폐 속에는 물이 아니라 피가 흥건해요.깊은 바다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익사하고 싶지 않아요.숨만 제대로 쉴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요.영영 눈을 감아도 좋아요.숨만 차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텐데.마루에 기대앉아 쉴 수 있을 텐데. - 나희덕 시
불황, 내수 침체, 실적 부진…. ‘씁쓸한’ 말들이 귀에 못이 박힌다. 벽두에 잠시나마 부풀었던 ‘밀레니엄’ 10여 년 만에 시대의 상징은 우울하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니고 환란 이후 길게 이어지는 ‘위기’ 타령의 끝은 어딘지…. 호황이라는 말보다 이런 말들이 훨
가린 진실과 ‘뮌헨의 창녀’188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한 인쇄소에서 경리직원으로 일하던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1870-1940)는 처음부터 학자가 될 팔자는 아니었다. 마흔두 살에 3권(우리말 번역판은 4권)을 펴내 세계적인 풍속사 연구가・문명사가・미
그해 여름이 갔다. 가을도 갔다. 다시 겨울과 봄이 지났지만 댐물은 여전히 싯누랬다. 태풍이 쓸고 간 지 아홉 달이 됐는데도 물빛은 불길한 전조처럼 탁하고 무거웠다. 태풍에 큰물 황톳물이야 거의 해마다 나는 일이지만 왜 달이, 해가 바뀌도록 황톳물이 가라앉지 않는지 전문가들도 일치된 원인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댐으로 흘러드는 계곡물은 태풍 며칠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