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8월 18일(2009년) 오후 1시 43분에 서거 했다. 삼가 명복을 빈다. 그의 죽음을 두고 국내그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TV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죽음 소식을 접하면서 “진작 죽지, 왜 이제 죽냐” “벌써 죽노?(더 고생하다 죽지...)”와 같은 빈정거림 일색이었다. 이런 미움은 도대체 어디서
내 전공인 문학이야기로 시작해서 좀 그렇다. 하지만 이야기를 펼쳐보자. 문학비평에 보면 ‘신비평’(New Critism)이라는 게 있다.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해서 1960년대 초반까지 세계문학 비평계의 일단을 담당했다. 한국문단에서도 1960년대 백철이라는 비평가가 소개하면서 한국문학에서도 부분적으로 활용된 비평이론이다. 간단하게
대구 민주?개혁세력을 위한 고언 *장면-1 지난 6월 14일(일요일) 저녁 7시경부터 대구 신천둔치에서 소위 대구지역 민주개혁인사 50여 명이 모여 막걸리 잔치를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국이 하수상하니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자고 누군가가 생각을 냈고, 많은 분들이 암암리에 동의해서 이 모임이 이뤄진 것 같았다. 나도 모임
지난 설 때의 일이다. 매번 설 때면 과음과 과식으로 며칠 씩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술이든 음식이든 적게 먹고 편안한 설 명절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고향을 향했다. 실제로 몇 해 전에는 설 끝에 먹은 게 탈이 나서 새벽에 119에 실려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밤새 토하고 링거를 맞고 나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병원 응급실 문을
"우리나라 군인이 월남가면 월남의 꽁까이(아가씨)나 국민들이 환영할 것 같지. 안 그래 우리나라 군인이 지나가면 월남사람들은 뒤에서 개XX! 하면서 침을 뱉는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사르뜨르 같은 知性이 '월남전을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고 일갈했다는 사실도 점차 알게 되었다.“짜낸 치약을 다시 튜브 안으로 다시 밀어 넣으려는 시도이나 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부르스 커밍스)는 고언...
대구 출신의 작가 현진건이 쓴 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1921년 이라는 잡지에 발표된 소설인데,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이 허구한 날 술이 취해 새벽에 귀가하니까 부인이 화를 낸다. 그러자 주인공이 “이 사회라는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라고 강변하고, 부인이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고 탄식하면서 소설이 끝난다. 식민지 시대 일본
1.지난 70, 80년대 대구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시내 한 복판과 각 대학 앞에 있던 소위 ‘사회과학 서???기억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일동 옛 매일신문사 맞은편에 있던 신우서적, 옛 시립도서관 골목에 있던 마가서점, 대명동 계명대 앞 청산글방, 영남대 앞 남도서점, 경북대 앞 일청담 서점 등이 얼핏 기억에 떠오르고 시기적으로는 조금 뒤이기는
인간은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會者定離 生者必滅은 불교적인 용어이다. 무릇 인간관계라는 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다. 이 헤어짐에는 말 그대로 옷깃을 스치는 정도의 가벼운 헤어짐도 있고, 한 사람의 영혼을 흔들 정도로 심각한 헤어짐도 있을 수 있다. 이 헤어짐과 소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불가에서는 이미 ‘제행무상
장면-1. 수성구 어느 식당 지난 6월 초 저녁 8시경,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대구 수성구 KBS방송국 앞에 있는 한 국숫집에 들렀다. 손님은 나이가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어머니들만이 모여 앉아 제법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그 분들이 이야기가 귀에 들렸다. 아마 모두가 계원인 듯
일화 한가지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요즘은 대구사회에 그런 게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는 일종의 지식인 커뮤니티 같은 게 있었다. 주로 영남대 문과대 몇몇 교수들을 중심으로 타 대학의 일종의 진보적인 교수, 재야운동가, 문화인들의 모임이었다. 뚜렷한 명칭을 달고 조직적인 어떤 일을 구체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추를 지나 입동, 소설을 거쳤으니 이제 바야흐로 겨울의 초입이다. 거리의 나뭇가지마다 잎들을 다 떨구고 앙상하게 서 있는 모양새가 더욱 그런 생각을 들게한다. 가을은 수확과 풍요의 계절이지만 겨울은 모든 물상을 제자리에 돌려주는 차라리 순환과 죽음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물상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끔찍하고
2005년 7월 25일 낮 12시쯤, 나는 평양시내에 있는 고려호텔 1층 로비에 앉아 있었다. 지난 20일부터 5박6일 일정의 ‘민족작가대회’가 끝나는 날이다. 민족작가대회는 남과 북 일본, 미국 거주 문인 150여명이 분단 이후, 정확하게 1945년 12월 13일 이후 처음으로 만난 대회였다. 그래서 이날 점심은 특별히 유명하다는 평양 단고기(개고기)를
세간에서 어느 정도 유명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들은 말 가운데 장관 해 본 사람이 “장관 그거 한 번 할 만하더라, 단 국회의원만 없다면 이라고 하자, 국회의원이 받아서 국회의원 정말 한 번 할 만하더라 단지 기자만 없다면” 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말인 즉 우스개 소리지만 이 말 속에는 오늘날 우리 세태의 일면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촌철살인이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정말 염치를 상실한 시대가 됐구나하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아니 염치라는 게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을 나만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경북 의성 단촌면이다. 동네 앞 거랑(강과 개울의 중간 정도를 나타내는 내(川)의 사투리) 하나만 건너면 안동이다. 의성이고
평소 문단에서 좋아하던 한 선배 시인이 지난해 현대문학상이라는 상을 받았다. 수상자 본인도 상을 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 역시 누가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높게 평가하거나 수상자를 평소와는 다르게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다. 되레 그 상이 수상자에게 적절한 상인가를 평가해 정치적인 저의를 욕하거나 특히 무슨 상이든 상을 많이 받은 사람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서 월드컵도로 쪽으로 빠지지 않고 좌회전 해 신천지아파트 황금동으로 이어지는 길에 야트막한 고개가 있다. 원래는 고개가 아니라 제법 높이가 있는 야산이었는데 지산범물지구로 연결되는 왕복 6차선을 내면서 산의 중간을 뭉턱 잘라 작은 고개 수준의 경사가 있는 신작로로 변해버린 길이다. 나는 오전 11시쯤 볼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서 이 길
2004년 한 해도 저물어 간다. 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일로 바쁘고, 또 게으름 피우느라 제쳐두었던 밀린 문학관련 원고 쓰느라 오랜만에 평화뉴스에 글 올린다.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우리사회가 겪은 몇 가지 일들, 가령 수능 부정 사건, 국회의원 간첩 암약설, 밀양 여학생 성추행사건, 대구 5세 어린이 굶어죽은 사건 등을 지켜보면서
친구들과 대화 중 지켜야할 예의 중의 하나는 말하는 사람 자신만이 잘 아는 전공분야의 이야기는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공은 말 그대로 자신이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아는 것도 많고 정보도 충분하기 때문에 남보다 풍부하게 화제를 이끌 수 있기는 하지만 자칫 상대방을 썰렁하게 만들어 대화의 단절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
대구에 있는 한 라디오 방송사에서 생방송 시사프로 진행을 맡은 지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겨우 문학 책 몇 권 읽은 것밖에 없어 세상을 이해하는 폭도 좁고 안목도 얕은 내가 많은 불특정 다수 청취자를 모시고 있는 시사프로 진행을 맡는 것은 과욕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방송국의 출연 요청을 굳이 거절하지 못한 것은 나에게는 비교적 낯선 영역이지만 한 번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위헌으로 판정한 지 근 일주일 정도 지났다. 그 동안 헌재의 위헌판결이 갖는 타당성과 부적절성에 대해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헌법학자들 뿐 아니라 정치인, 언론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가히 입 있는 자들은 한 마디씩 다 한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만큼 이 사안이 중대한 것이라는 반증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