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실종과 고단한 국민의 삶현실은 혼란스럽고 삶은 너무 고단하다. 봄이 왔는데도 일상에 화사함이 돌지 않는 듯하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적잖은 사람들이 빚으로 쓸 돈이 말라버리고 고물가로 삶은 팍팍해진데다 연일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강대강 대치 뉴스가 창궐하고 있어 일상의 불안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형국이다. 윤석열정부 들어 정치가 완전히 실종되고 법과 원칙을 앞세워 행정부가 특정 직역(직군)이나 대상과 돌아가며 쟁투를 벌이는 듯하다. 행정부가 광범위한 사법-공권력의 기관으로 돌변한 모양새이다. 권력이 사납고 험하니 국민의 삶이
대한민국은 자국(自國) 노동자의 생계를 짓밟지 말라- 일본계 니토덴코그룹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사태를 목도하며(일본계 다국적기업 니토덴코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두 명의 노동자가 또다시 공장 옥상으로 올랐다. 2023년 1월 8일 박정혜, 소현숙 두 노동자가 옥상에 오른 지 한 달 십일이 되었다. LCD(액정표시장치) 핵심부품인
‘극장권력’의 위험과 알권리의 자의적 통제- 배우 이선균의 죽음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을 지켜보며김문주20여 년 동안 연기이력을 쌓아온 한 명의 개성적인 배우를 우리는 잃었다. 이선균의 죽음은 한 사람의 인권(人權)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수준과 사법 시스템의 폭력적 작태를 재삼 생생하게 전시해주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1991년 11월에 창간된 창간사의 첫 문장이다. 여전히 사회과학적 사유와 상상력이 뜨거웠던 당대 상황에서 편집인 김종철 선생은 이렇게 회의적인 물음으로 창간사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미약하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士)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의 계획인즉 오직 서울의 십리 안에
김문주1930년대 후반에 본격화되는 문학인들의 일본협력은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사의 크레바스(crevasse)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민족 부일(附日)행위는 좌우를 막론하고 문단에 편만했으며, 그러한 점에서 일제강점말기 정신사로서 한국문학사는 빈한(貧寒)하고 매우 옹색하다. 우리 문학사가 이육사와 윤동주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사람 모두
교사들의 죽음으로 인해 교육 현장의 응급 상황이 알려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현실이야 모르는바 아니고 그 원인이 우리의 입시교육에서 기원한 것 또한 익히 알고 있지만 입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한 초등학교의 교실현장이 이렇게 심하게 멍들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초등학생 아동을 둔 학부모와 교사(가족)들은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대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우리 공동체가 매우 험악해졌다. 개인들 간에도 분쟁이 넘쳐나고 집단 간에도 몹시 사납다.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요사이 한국사회의 관계 양상은 피로사회 그 자체를 현시(顯示)하고 있어 뉴스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오는 듯하다. 물론 매체의 발전을 이유로 꼽을 수도 있을 테고, 사람들의 본